전체메뉴
“톡톡 아이디어로 상상을 현실에 옮겨요”
(14) 문화 기획자 김규랑
5·18 청소년축제·비엔날레 등 참여
재능 기부 … 남도 인물·5월 광주 관심
사람·공간이 화두, 광주 천변 매력적
2012년 04월 16일(월) 00:00
널따란 원목 책상에 둘러 앉은 아이들은 그림책을 보면서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책장 사이 사이를 뛰어다니며 그림책을 뽑아든 아이들은 신이 났다. 원목 책상 한가운데 자리한 자작나무는 이 공간의 포인트다. 문화기획자 김규랑(43·다겸아트컴퍼니 대표)씨를 인터뷰한 헌책방 ‘아낌없이 주는 나무’(광주시 북구 용봉동)의 풍경이다.

아름다운 가게가 운영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낡고 허름한 기존 헌책방의 개념을 깨트린 북카페 형식의 공간이다. 재능 기부로 이 공간을 디자인한 그녀는 헌책방 운영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

‘문화기획자’라는 명칭을 달았지만 그녀의 활동은 전방위적이다. 맡은 일에 따라 프로그래머, 프로젝트 매니저, 큐레이터 등 다양한 명함을 가졌었다.

그녀는 무대미술 작업 등을 하며 서울에서 활동하다 2004년 광주로 돌아왔다. 그녀의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건 지난 2004년 5·18 기념 행사 가운데 하나로 열린 청소년 축제 ‘레드 페스타’의 기획·연출을 맡으면서부터다.

“당시 5·18의 상징같은 곳이었던 금남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며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었죠. 그 넓은 공간을 프로그램에 맞게 디자인하고 연출하는게 힘들었지만 너무 행복했어요. 다함께 깨지고 부딪치면서 처음 진행했던 작업이라 더 기억에 남죠. 이 일을 6년간 했었는데 이 때 문화 쪽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죠.”

광주 대표 행사인 비엔날레와의 인연도 그녀에게는 큰 경험이었다. 2006년 광주 비엔날레 ‘140만의 불꽃’ 중 ‘빛카페 빛가든’ 총연출, 2008년 ‘스프링’ 프로젝트 매니저, 2009년 디자인 비엔날레 ‘어울림’ 협력 큐레이터로 활동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난 2009년 아시아공연예술제 때는 문화빌리지와 비닐하우스극장을 진행했고 전국무용제 프로그램 큐레이터를 거쳐 오는 6월 열리는 전국연극제에서도 큐레이터를 맡았다.

“제가 가장 매력을 느끼는 게 ‘공간’과 ‘사람’이예요. 여기에 콘텐츠와 아이디어가 결합되면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거죠. 비어 있는 미술관을 활용한 문화 빌리지도 당시 예술감독을 맡았던 최영화 교수님이 ‘문화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컨셉을 던져 주셨죠. 각각의 프로젝트에서 ‘키워드’를 받으면 그걸 가지고 다양한 네트워킹을 만들어가죠.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이 있어요. 그걸 기억하고 끄집어내 서로 매칭해주는 것, 예술가와 예술가들을 연결해주는 거죠. 참여하시는 분들도 참 재미있어 하세요.”

그녀는 가장 인상적인 프로젝트가 ‘굿모닝 양림’이라고 했다.

“남구청에서 기획한 처음 구상은 남구 지역의 역사·문화 인물을 조명해보자는 거였어요. 양림동은 원래부터 제가 참 좋아하는 공간이었어요. 사직공원의 숲과 바람소리, 낙엽은 늘 함께였던 것들이었죠. 디자인 비엔날레에 참여하면서 이장우 가옥의 매력에 푹 빠져 들었고, 호남신학대 카페 티브라운에도 자주 갔었죠. 그래서 양림동 전체를 활용하자는 생각이 들었고, 이벤트성 축제가 아니라, 양림동의 숨겨진 보물상자를 열어보이자 했죠. 일상속에서 늘 양림동을 담고 있었기에, 시간이 아주 촉박한 상황에서 양림동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지만 무척 행복하게 작업했어요. 양림동 행사가 모든 네트워크의 집합체였던 것 같아요.(웃음)”

‘공간’에 관심이 많은 그녀가 요즘 탐내는 곳은 지하철역과 광주천변이다. 삶속에 스며 있는 곳이고 삶이 녹아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광주천은 언제나 열려 있고 변화를 실험할 수 있는 곳이다. 정비작업을 해놓은 것으로 만족할 게 아니라 사시사철 문화가 흐르는 공간이 된다면 정말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국가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면서 아쉬웠던 건 프로젝트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고 만다는 점이었다.

“미술과 IT의 결합, 음악과 영상의 결합 등 관련 산업과의 연계가 되지 않고 그냥 단일 행사로만 끝나는 게 안타까워요. 많은 예산이 투입됐고, 기획자들도 유능한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을텐데 말이죠. 뜻은 같은데 각각 다른 분야에서 소통 없이 일하다 보니 체계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거죠.”

대형 프로젝트들을 맡았던 그녀는 요즘 소소한 기획들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남도 인물들의 콘텐츠화에 관심이 있다. 지역 인물들의 활동을 책으로, 음반으로, 전시로 보여주고 그가 살고 있는 집과, 자양분이 된 공간들을 엮어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기획한 소리꾼 윤진철의 전시회가 그 첫번째 행보였다.

5월이 다가오니 ‘광주’를 이야기하는 것에도 마음이 간다. 점점 사라져 가는 5·18 관련 예술품들. 광주 정신이 녹아 있는 걸게그림 등은 지금 어딘가의 창고에 방치돼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끄집어 내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고,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 또 5·18 인권상 수상 축하음악회를 ‘재즈 인 광주’라는 타이틀로 열어보고 싶기도 하다.

“저하고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어요. “즐겁게 하자!”. 다양한 생각을 가진 이들, 그것도 자기 존재감 강한 예술가들과 하는 작업인데 부딪칠 일도 많죠. 내가 즐겁지 않은데, 좋은 결과물이 나올까요?”

늘 양림동을 거닐었기에 양림동 프로젝트가 나왔듯, 그녀의 아이디어는 ‘생활’과 ‘체험’에서 태어난다. 지금 그녀가 빠져 있는 것은 차와 탱고, 플루트, 태극권과 문인화다. 그냥 좋아하고 책으로 접하는 게 아니라 다 몸으로 부대끼며 직접 경험한다. 그러니 탱고를 배우고 있는 그녀가 ‘탱고 페스티벌’을 꿈꾸는 건 자연스런 흐름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그녀의 머리 속에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굴러다니고 있는 듯했다. 이날 기자에게만 살짝 알려준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광주가 굉장히 ‘유쾌한 문화도시’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