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내장산·백암산 정기 품은 곳 흙냄새 따라 한걸음 한걸음
<41>내장사~백양사 옛길
호젓한 산길 단풍과 함께 유유자적 한나절
왜란 역사 간직한 옛길엔 고찰의 가을 충만
2011년 11월 28일(월) 00:00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덕흥마을을 지나는 옛길은 호젓하다. 내장사∼백양사를 잇는 옛길은 도보여행객들의 발길을 이끌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어느새 내장산은 붉은 빛깔에서 갈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정읍시 내장동 동구리에서 바라본 내장산 줄기는 거대한 장벽을 연상시킨다. 탐방로 초입에 선 몇 그루의 단풍나무만이 가을의 훈장 같은 선명한 단풍잎을 여전히 과시하고 있다.

◇단풍명소를 잇는 옛길= 우리나라에서 단풍명소로 내장사와 백양사를 꼽는다. 두 절은 내장산과 백암산이라는 커다란 산을 사이에 두고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호남정맥 산줄기를 따라 갈 수도 있지만, 마을과 마을을 잇는 농로로 좀더 쉽게 갈 수도 있다. 오래전부터 인근 마을사람들은 산길 대신 마을길을 이용해 두 절을 오갔다. 하지만 교통수단의 발달로 차츰 발길이 끊어지며 옛길은 묵혀지고 잊혀졌다.

이번 도보 길은 내장사와 백양사를 잇는 옛길이다.

정읍시 내장동 내장사에서 출발해 1㎞ 거리의 동구리 기점을 거쳐 내장산마루를 넘는 유군치(留軍峙)∼순창군 복흥면 화양리∼ 봉덕리 덕흥마을∼ 순창에서 백양사로 넘어가는 고갯길인 곡두재(曲道峙) 구간이다. 크게 3차례 고개를 넘어야 하지만 마을과 마을을 잇는 평지 길로 걷기에 수월하다. 거리는 10.4㎞로 2시간 30분∼4시간여가 소요된다. 단풍이 한창인 때에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속에 산기슭을 거슬러 오른다. 멸종위기 식물원을 지나자마자 급한 경사를 이룬 산길을 오르는 탓에 금세 숨이 가빠온다.

유군치는 임진왜란 당시 순창에 진을 치고 공격해오는 왜군을 승병장 희묵대사가 이곳에서 머무르며 유인해 크게 물리친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유군치에서 10여분 내려서면 ‘대통령 공원’이라는 이름의 농원에 들어서게 된다.

17년전 봄날 감나무·고로쇠나무를 심다 고단해 깜빡 잠에 빠진 주인장은 장군봉 산신령 꿈을 꾸었다. 이후 자식들이 큰 인물(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색적인 상호를 정했다는 설명이다.

김근호(68) 대표는 “수십 년 전만 해도 가을철이면 수백 명의 청춘남녀들이 가벼운 차림으로 도보여행을 하던 낭만적인 길이었다”며 “당시에는 하루에 음료수만 9상자(24개들이)나 팔 정도로 오가는 인파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주민 박종철(75)씨 역시 “내장사로 불공드리러 다닐 때 유군치를 넘곤 했다”며 “옛날에는 좁은 길이었는데 지금은 길이 훤히 나버렸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유군치 대신 ‘누갱이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농원입구에 내장사 2㎞·백양사 6㎞ 표지판이 놓여있다.

◇‘내장산 둘레길’ 개발로 지역활성화= 농원을 빠져나와 오른편으로 길을 잡은 후 화양 관광농원과 화양마을 구간은 ‘화양로’라는 이름의 아스팔트 길이다. 화양 마을회관과 양림제를 지나 콘크리트 포장길을 벗어난 후 호젓한 우측 흙길로 20여분 걸으면 허름한 제각에 닿는다.

이따금 길가에 선 감나무 까치 밥을 먹는 어치를 볼 수 있다. 다시 제각 삼거리에서 오른편 산으로 방향을 잡아 간벌하는 소나무숲 사이로 난 황토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덕리들에 내려서게 된다. 길목에서 배추수확을 하던 주민들에게 고개이름을 물었으나 외지에서 와서 잘 모른다는 반응이다. 백양사방향에서 걸어온다면 도화마을 출발점에서 우측으로 300여m 떨어진 개울 건너 파란색 지붕의 창고 뒤편으로 길이 이어진다. 길 초입에 자리한 소나무에 붉은 색 끈이 매어져 있어 쉽게 눈에 띈다.

창고를 지나 수확이 끝난 들판을 가로질러 덕흥마을 뒤편으로 들어서면 오미자를 재배하는 밭들이 많다. 덕흥마을에서 곡두재까지는 마을앞 농로를 따라 접근할 수도 있고, 마을 뒤편을 지난 호남정맥 노선을 따라 갈 수도 있다.

백양사에서 순창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인 곡두재는 한때 버스가 다닐 정도로 넓은 도로로 사용됐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곡두재에서 백양사 구간은 통행이 제한되고 있다. 백양사에서 천진암까지는 생태탐방이 허용되지만, 나머지 천진암∼곡두재 구간은 2007년 3월부터 2017년 2월까지 10년간 ‘동식물 보호 및 훼손방지’를 위해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고려시대 기록인 ‘백암사 정토사 사적’에 따르면 각진국사(1270∼1335)는 “청룡 곡두의 주맥이 (백암산) 아래에서 분파하니 삼남이 스스로 그 형상을 주인 삼으면 만민을 보호할 것이고, 맥을 끊어 큰길을 내면 자연히 만민이 피해를 입는다…”고 예언했다고 한다.

내장사∼백양사 옛길은 크게 손대지 않고도 많은 도보객들의 발길을 끌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옛길은 내장산과 백암산을 우회해 장성·정읍·순창 등 3개 시·군 지역을 지난다. 앞으로 장성군과 정읍시, 순창군이 손을 잡고 군데군데 이정표를 세우고 ‘명품 둘레길’로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전북취재본부=박기섭·이동희기자 parkks@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