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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39 〉 지리산 단풍길
구례 토지면 직전마을 ∼삼홍소
2011년 11월 14일(월) 00:00
울긋불긋한 단풍이 산자락과 깊숙한 골짜기 곳곳에 내려앉았다. 빨갛게 타오른 단풍을 즐기려는 등산복 차림의 사람 단풍까지 더해지면서 화려하다. 단풍으로 둘러싸인 지리산 피아골 직전 마을 전경. /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지리산에 색잔치가 벌어졌다. ‘제 35회 지리산 피아골 단풍제(10월29일∼30일)’때만 해도 막 물들기 시작했던 단풍이 일주일만에 빨갛게 타올랐다. 수천가지 나무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을 빚어내면서 산자락과 계곡물, 골짜기 깊숙하게 내려앉았고 낙엽은 수북이 쌓였다. 어떤 나무는 피보다 붉은 진홍빛으로, 어떤 나무는 파스텔처럼 은은하다.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 단풍까지 더해지면 화려함을 넘어 현란하다.

구례군 토지면 연곡사에서 직전마을을 거쳐 삼홍소까지 이르는 길은 이맘때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단풍 명소로, ‘지리산 10경’중 하나다. 산을 오르지 않더라도 가족들과 천천히 주변 경취를 즐기며 걸을 수 있는 ‘딱 좋은 단풍놀이’ 구간이기도 하다. 전체 7.6㎞를 걷는데 4시간이면 넉넉하고 설명이 그리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도 잘 알려진 길이다.

신라 진흥왕(5년)때 지어졌다가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사라진 것을 현대에 와 새로 지었다. 국내 최고 부도인 동부도를 비롯한 국보 2점, 보물 4점이 보존돼 있다. 지금 이맘때 연곡사 주변 단풍은 아직 마르지 않은 낙엽과 계곡보다 더 발그레 물들어 그냥 지나치기에 아까울 정도로 붉은 색이다.

직전마을은 피(稷·기장)를 많이 재배해 옛이름이 피밭골이다. 피아골이란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참 호젓했던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최근에는 이곳저곳에서 펜션을 짓는 공사까지 이뤄지면서 무척 어수선하고, 단풍철 등산객들의 북적거림, 이들이 몰고 올라오는 차량에서 내뿜는 매연도 연곡사∼직전마을까지는 감수해야 한다.

호젓한 단풍 감상은 직전마을을 지나 ‘단풍이 핏빛처럼 붉은 골짜기’라는 피아골 원시림에 들어서면서부터다. 대부분 활엽수로, 가을이면 신갈나무, 서어나무, 산초나무, 단풍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등 다양한 활엽수에 울긋불긋한 물이 배어들면서 산이 온통 핏빛이다.

오죽했으면 수많은 문인들의 시와 글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됐을까. 물론, 작가 조정래가 소설 태백산맥에서 ‘먼 옛날부터 그 골짜기에서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그렇게 피어나는 것’,‘피아골에 든 누가/ 아픔 없이 단풍을 보는가/ 가을이 아니어도 물 드는 피아골’(강영환) 등이라고 기록한 것처럼 임진왜란, 대한제국 말기, 광복 이후 여순사건, 한국 전쟁때 숱한 주민들이 피 흘리며 숨져간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도 피아골 단풍이 유독 붉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직전마을부터 30분이 걸리는 표고 막터를 거쳐 삼홍소까지 2.5㎞는 1시간 30분이 걸린다. 표고막에서 삼홍소까지 구간은 피아골에서도 가장 단풍이 화려하고 붉은 곳으로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가을에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천공이 나를 위해 산 빛을 꾸몄으니/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남명 조식)라는 유명한 시구도 여기에서 나왔다.

지금 이맘때는 산이 붉어서 산홍(山紅), 붉은 산그림자가 물에 비쳐 수홍(水紅), 단풍 관광객들의 얼굴마저 붉다며 인홍(人紅)이라는 ‘삼홍(三紅)’의 화려함을 만끽할 수 있다. 이따금씩 바람에 씻겨 떨어지는 낙엽과 붉은 단풍, 언뜻 언뜻 드러나는 계곡빛은 눈을 즐겁게 하고 이름 모를 벌레 소리, 물소리는 신선하게 느껴진다.

직전마을부터 삼홍소 구간은 경사가 완만하고 잘 정비돼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다. ‘나뭇잎이 단풍들었어요’,‘피아골의 재미있는 버섯모양’ 등 해설판도 설치돼 가족들과 추억 남기기에도 좋다. 손이 시려 오래 담그고 있지 못할 정도로 찬 계곡 물 앞에서 층층이 붉게 탄 산자락과 바위를 덮은 나뭇잎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등산객들의 필수 코스다.



/김지을기자 dok2000@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