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유일 한국어 책방 ‘책거리’ 운영 영광 출신 김승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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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유일 한국어 책방 ‘책거리’ 운영 영광 출신 김승복 대표
일본에 한국 문학 알리기 18년
이왕 하는 거 멋지게, 즐겁게, 기분좋게
‘김승복 매직’ 오늘도 통하겠죠
광고회사 다니다 출판사 쿠온 창업
첫 번역 작품은 한강 ‘채식주의자’
직접 출간·저작권 중계 270여종
‘살인자의 기억법’ 등 日 번역 대상
2025년 08월 19일(화) 20:30
한강 작가가 ‘책거리’ 10주년을 기념해 작성한 손글씨 메시지. <책거리 제공>
최근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를 펴낸 김승복 ‘책거리’ 대표. <책거리 제공>
일본 도쿄 진보초 고서점 거리는 헌책방 120여개가 몰려 있는 유서 깊은 장소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메카'에 지난 2015년 7월 7일 문을 연 '책거리'는 도쿄의 유일한 한국어 책방이다. 주인장인 영광 출신 김승복 대표는 2007년부터 한국 관련 출판사 쿠온(cuon)도 운영하고 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번역해 펴낸 곳이 그의 출판사다. 김 대표가 얼마 전 에세이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출판사 달)를 출간했다. '일본의 한국 문학 전령사'로 18년 째 일하고 있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지난 6월 일본 독자들을 이끌고 광주시 동구의 인문축제 프로그램 '소년이 온다' 문학기행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가 궁금해져 인터뷰를 요청하는 메일을 띄웠다. 마침 김 대표는 한국에 들어와 있었고,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 ‘소년이 온다’ 등 한국문학 출간

“지난 2017년에도 일본 독자들과 광주를 찾은 적이 있어요. ‘소년이 온다’를 막 출간하고 책방 ‘숨’에서 행사를 진행했는데 당시 한승원 작가님을 만났죠. 또 안종철 선생을 모시고 ‘소년이 온다’의 배경인 5·18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요. 이번 광주 방문에는 오사카의 유유키 교수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분들도 함께 했어요. 유유키 교수와 매주 일요일 밤에 함께 한국 문학을 읽는데 ‘소년이 온다’를 읽으셨던 분들이라 광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영광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현대시를 전공한 그는 1991년 유학을 떠나 일본대학 예술학부 문예과를 졸업했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중 좋아하는 한국문학을 ‘제대로’ 알리고 싶은 생각에 출판사를 설립했고 책방 오픈까지 이어졌다. 지금까지 쿠온이 펴낸 책은 120여종, 저작권 중계를 통해 발간된 책은 150여종에 달한다.

김 대표는 한강 작가와 인연이 많다. 출판사 설립 후 첫 책이 ‘새로운 한국 문학’ 시리즈로 출간한 ‘채식주의자’였다. ‘한시’ 시리즈의 첫 책도 한강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였다. 노벨상 수상 후 두문불출하고 있는 한 작가는 서점 10주년을 맞아 “책거리의 지난 10년을 응원합니다. 앞으로도 10년, 그 이후로도 반짝일 서점의 시간들을 응원합니다”라는 손글씨 메시지를 건네며 축하해 주었다.

“한국 출장 왔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소년이 온다’를 읽었어요. 계속 울 수 밖에 없었죠. 옆좌석의 아저씨가 괜찮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이 책은 꼭 내가 펴내야 겠다고 생각했죠. 그의 소설이 쉽게 읽히는 건 아니지만, 큰 세계관을 그리면서도 그처럼 아름다운 시적인 문체를 쓴다는 것이 놀라워요. 정말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할 수밖에 없는 문체죠.”

쿠온이 펴낸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과 김소연의 ‘한글자 사전’은 일본 번역대상을 수상했고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 친구’,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도 사랑을 받았다. 2021년 일본 서점대상을 수상한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 정세랑의 ‘절연’, ‘나는 내 인생을 살기로 했다’, ‘우아하고 유쾌한 여자축구’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긴긴밤’ 등은 판권을 중계했다.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 20권을 완역한 일은 잊을 수 없다. 창업 초기 슬럼프에 빠졌을 때 ‘토지’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고 힘을 얻은 그는 최고의 번역가와 발간 작업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고, 10년만인 지난해 9월 대역사를 마무리했다. 그는 올 봄 ‘토지’를 꾸준히 읽어온 일본 독자들과 통영 박경리 작가의 무덤을 찾아 책을 올리고 다함께 ‘아리랑’을 불렀다.

◇ 진보초의 유일한 한국 서점 ‘책거리

한국책 3500여권과 일본어 책 500권을 소장하고 있다는 ‘책거리’는 작가와의 대화, 독서모임 등 한국이나 책과 관련된 이벤트를 매년 100회 가까이 개최한다. 광주와 통영 방문처럼 ‘문학으로 떠나는 한국 여행’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는 소설가 김석범,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 유명 여배우 고이즈미 교코 등 서점이 맺어준 인연을 귀하게 여긴다.

“고이즈미씨는 요미무리 신문에 서평을 쓸 정도로 책에 관심이 많은 연예인이에요. 2021년 자신의 책 관련 팟케스트 촬영을 위해 서점을 찾아와 ‘아몬드’ 중 한 대목(143쪽)을 낭송했는데 저도 좋아하는 부분이어서 놀랐어요. 이후 그가 주최한 시부야 책방페스티벌에 참여했고, 지난 7월에는 우리 서점 10주년 행사도 함께 했어요. 마침 그녀의 1인 회사도 올해가 10주년이어서 함께 꾸민 이벤트였죠. 10년간 서로가 지나온 문학과 영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번역돼 화제가 된 북한 소설가 백남룡의 ‘벗’을 출간한 경험은 단순히 ‘한국 책’을 알리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조선족과 북한까지 아우르는, ‘한글로 쓰인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확장됐다. 현재 쿠온은 소설에 비해 수요가 적은 시집 출간에 힘을 쏟고 있다. 지금까지 안도현 시선집, 김소연의 ‘수학자의 아침’ 등이 출간됐으며 올해 처음 시작한 ‘시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는 신미나 작가가 참여했다.

2019년 시작한 K-BOOK 페스티벌은 인기 프로그램이다. 이기호, 오은, 김초엽, 정세랑 작가 등이 다녀갔고 올해 행사는 한일 출판사, 전라도닷컴 등 지역 출판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오는11월22일~23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김 대표는 2011년 ‘K-BOOK진흥회’를 설립해 K-BOOK 독서 가이드 ‘체크 CHECK’ 발행, 번역 공모전과 한국어 번역스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나에게 좋은 책이란 읽고 나서 행동하는 책”이라고 말한다. 김 대표에게 이런 느낌을 갖게 해 준 책 중의 하나가 1급장애인이자, 변호사이자, 춤꾼인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었다.

“원영의 책 출간을 준비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많은 생각을 했어요. 아쉽게도 저희 서점이 장애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3층에 위치해 있는데 ‘더 많은 원영이들’이 찾아올 있도록 휠체어를 탄 이들도 편안하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을 이전하거나 접근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됐어요. 또 한국어를 모르는 더 많은 일본인에게 좋은 책을 읽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고요.”

고향 영광에서의 시간은 그가 새로운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었고, 문학을 사랑하는 씨앗을 뿌려주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영광 원전 건설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밀려들어온 ‘문명’의 혜택을 누렸고 중학교 1학년 때 종례시간마다 시를 읽어주던 안정애(안종철 선생의 여동생) 선생님을 통해 시와 문학을 접하게 됐다.

“책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어요. 초등학교 2학년 겨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책을 읽고 있었어요. 근데 꼭 이 책을 다 읽어야 할아버지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은 거에요. 정확한 책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허클베리 핀의 모험’ 뭐 이런 거였던 듯해요. 그래서 저만 놔두고 가족들이 먼저 할아버지 댁으로 갔던 기억이 나요. 지금도 친척들이 모이면 그 때 이야기를 해요. 너가 그 때 그렇게 책을 좋아하더니 지금 이런 일을 한다고.(웃음)”

김 대표는 서점 오픈 10주년을 지나며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날 생각을 하고 있다. 일단 오픈 때부터 ‘채식주의자’ 번역가 등 5명의 직원이 ‘요일 점장제’ 형식으로 운영됐던 책거리는 올 3월 1인 점장 체제가 됐다.

“1997년 IMF가 터져 귀국하지 못하고 취직했어요. 광고회사가 다이나믹하고 전략을 치밀하게 짜는 곳이라 출판사를 차리기 전 나름대로 전략을 짰습니다. 작가들, 독자들과 신뢰를 쌓아온 10년 간 계획한 일을 다 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만의 목소리를 갖게 돼 사람들에게 ‘즐겁게, 같이 합시다’라고 제안할 수 있게 됐어요. 앞으로 한사람 한사람에게 더 공들이고 집중하며 밀도있게 다가가는 방법을 궁리해 보려 해요. 제가 좋아하는 말이 ‘성숙’이에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는 의미죠.”

<><><><><>◇ K-BOOK 페스티벌 등 개최

그는 한국문학에 대한 변화를 확실히 느낀다고 했다. 독점적인 지위도 사라져 지금은 일본에서 가장 큰 서점 체인에도 한국어 코너가 마련돼 있고, 독자들도 국내 인터넷 서점을 통해 책을 직접 구매하기도 한다.

“한류라는 자장 안에서 문학에도 큰 관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졌고요. 문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다 보니 앞으로는 일본어로 번역된 책을 읽고 일본의 영화감독이나 연출가들이 영화나 연극으로 2차 가공하는 사례가 많아지길 바랍니다. ‘소년이 온다’도 좋은 텍스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난 2022년 악성종양이 발견돼 수술 후 3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아야한다. 이번 한국 방문도 검진을 위한 것이었고 겸사겸사 서울 등에서 북토크를 진행했다.

‘이왕 하는 거, 멋지게’, ‘이왕 하는 거, 즐겁게’, ‘이왕 하는 거, 기분좋게’는 일 할 때 김 대표가 새기는 말이다. 책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내가 하는 일은 결국 다 좋아서 하는 일이고 미쳐서 하는 일이다”라는 책 구절을 만났을 때다. 책을 읽고 인터뷰를 하며 김 대표를 ‘토네이도’라고 부른 정세랑 작가의 말처럼 “그를 만나면 그게 될 리가, 싶은 일이 ‘김승복 매직’을 거쳐 현실이 되고야 마는” 상황을 만난 것도 같았다.

광주에서의 북토크를 흔쾌히 받아들인 그를 언젠가 만날 수 있길. 더불어 진보초 ‘책거리’에서 한국 문학 이야기를 나눌 그날도 기대해 본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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