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국민들 웃음 되찾도록 최선 다하겠다”
‘우크라이나 판 쉰들러’ 미국 사업가 아르멘 멜리키안씨 광주 강연
3년간 여성·아이·노인 등 300여명 이웃 나라로 탈출 도와
이태석재단과 전쟁 고아 위한 학교 추진…5·18묘역 참배
3년간 여성·아이·노인 등 300여명 이웃 나라로 탈출 도와
이태석재단과 전쟁 고아 위한 학교 추진…5·18묘역 참배
![]()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피란민들을 구출한 ‘우크라이나 판 쉰들러’ 미국인 사업가 아르멘 멜리키안 씨가 지난 7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
지난 2022년 미국인 사업가 아르멘 멜리키안 씨는 우크라이나에 머물던 중 러시아 침공으로 발발한 전쟁과 맞닥뜨렸다. 전쟁의 참상을 보고 차마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이, 여성, 노인 등을 차에 태워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폴란드 바르샤바까지 1500㎞를 직접 운전해 탈출시켰다. 3년간 그가 탈출시킨 사람은 300여명에 달한다. 탈출을 돕다 총격을 당하기도 했던 그는 지금도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고아들을 돕고 있다.
‘우크라이나 판 쉰들러’로 불리는 아르멘 멜리키안(45)씨가 7일 광주를 찾아 ‘전쟁의 참혹함에서 실천한 섬김의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태석재단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마련한 이날 강연에서 그는 전쟁 직후 상황과 탈출, 구호 활동, 전쟁 고아를 위한 학교 설립 과정을 들려줬다. 이날 행사에는 참전 중인 아버지의 생사를 몰라 애태우는 우크라이나 학생 이바나 볼바네츠(15)와 교사 올레나 루다씨도 동행했다.
멜리키안씨는 직접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며 전쟁의 참혹함을 전했다. 삶의 터전이 통째로 사라지고 시민들의 무덤으로 바뀐 마을, 자식의 무덤 앞에 서 있는 부모, 총격으로 이빨이 빠지고, 도망가다 다리가 부러지고 휘어져버린 아이들의 사진은 잔인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러시아 군인들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포로로 교환하기 위해 잡아가지만 저는 미국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아이들 구출이 가능했어요. 군인들에게 달러를 주면 아이와 함께 대피하는 걸 허용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대부분의 예산과 지원금을 전쟁에 쓰고 있어 고아들이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부모 없이 살아가야하는 힘든 상황에서 전쟁고아들이 먹고 자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특수학교가 필요합니다.”
멜리키안씨는 ‘남수단 슈바이처’로 불렸던 이태석 신부의 뜻을 계승하는 이태석재단의 도움으로 노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의약품과 식량 등 구호품을 지원하고 있다. 이태석 재단의 지원이 있어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그는 이태석재단 우크라이나 지부장을 맡아 전쟁 고아들을 위한 학교 설립에 힘쓰고 있다.
“전쟁의 참혹함이 눈 앞에 보이는데 어떻게 우크라이나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모든 외국인이 나쁘지는 않다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웃음을 찾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도울 것입니다.”
이날 멜리키안씨는 5·18 국립묘지를 들러 참배하고, 광주인성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만남을 가졌다. 그의 희생정신은 5·18 정신과 또 이태석 신부의 정신과도 닮아있다.
구진성 이태석 리더십아카데미 대표는 “이태석재단의 사업과 멜리키안씨가 하는 일이 일맥상통하다. 우리가 현장에 가서 보는 건 그 전쟁의 의미가 아니고, 전쟁에서 피해를 보고 있는 아이들과 노약자다. 그들에게 따뜻한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구출한 미국인 아르멘 멜리키안<맨 오른쪽>씨와 우크라이나에서 온 이바나 볼바네츠<맨 왼쪽>, 교사 올레나 루다씨. |
“러시아 군인들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포로로 교환하기 위해 잡아가지만 저는 미국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아이들 구출이 가능했어요. 군인들에게 달러를 주면 아이와 함께 대피하는 걸 허용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대부분의 예산과 지원금을 전쟁에 쓰고 있어 고아들이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부모 없이 살아가야하는 힘든 상황에서 전쟁고아들이 먹고 자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특수학교가 필요합니다.”
멜리키안씨는 ‘남수단 슈바이처’로 불렸던 이태석 신부의 뜻을 계승하는 이태석재단의 도움으로 노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의약품과 식량 등 구호품을 지원하고 있다. 이태석 재단의 지원이 있어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그는 이태석재단 우크라이나 지부장을 맡아 전쟁 고아들을 위한 학교 설립에 힘쓰고 있다.
“전쟁의 참혹함이 눈 앞에 보이는데 어떻게 우크라이나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모든 외국인이 나쁘지는 않다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웃음을 찾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도울 것입니다.”
이날 멜리키안씨는 5·18 국립묘지를 들러 참배하고, 광주인성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만남을 가졌다. 그의 희생정신은 5·18 정신과 또 이태석 신부의 정신과도 닮아있다.
구진성 이태석 리더십아카데미 대표는 “이태석재단의 사업과 멜리키안씨가 하는 일이 일맥상통하다. 우리가 현장에 가서 보는 건 그 전쟁의 의미가 아니고, 전쟁에서 피해를 보고 있는 아이들과 노약자다. 그들에게 따뜻한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