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과 함께하는 영화산책] 시카고
<17>1920년대 향락, 쾌락의 표상 시카고 배경
뮤지컬 히트로 재관심…브로드웨이 최장수 작품 원작
뮤지컬 히트로 재관심…브로드웨이 최장수 작품 원작
![]() 록시 하트는 기자회견장에서 질문 세례를 받는다. 변호인 빌리 플린은 그녀 대신 복화술로 조작된 사연을 풀어낸다. 이 장면에서 유명한 ‘We Both Reached The Gun’이 울려 퍼진다. |
“(어디 출신?) 미시시피 (부모님은?) 완전 부자. (어디 계셔?) 무덤 속에, 허나 새로운 기회 찾아와 난 수녀원에 갔었죠~”(‘We Both Reached The Gun’ 중에서)
복화술의 귀재 빌리 플린이 살인범 록시 하트를 변호하기 위해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시작한다. 기자들의 머리 위에 드리운 붉은 현 수십 가닥은 언론플레이가 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알레고리다.
하프시코드, 그 복잡하고 아름다운 내부를 투시한 것처럼 극화된 장면은 경탄을 자아낸다. 법정 공방마저 ‘쇼’에 불과하던 1920년대 미국 사회의 일면이지만 천태만상(千態萬象)이 깃들어 있다.
이튿날 신문에는 ‘미모의 재즈 킬러’라는 톱기사가 대서특필되고 록시는 무죄 방면된다. 시카고를 쥐락펴락한 ‘연극’이 성공한 셈.
어두운 시대적 배경에 춤과 노래가 쌓여 한 편의 풍자극을 만들었다. 2003년 개봉한 롭 마샬 감독의 뮤지컬 영화 ‘시카고’는 동명의 브로드웨이 최장수 뮤지컬을 모티브 삼았다.
주연 배우로 리차드 기어(빌리 플린 역), 르네 젤위거(록시 하트), 캐서린 제타 존스(벨마 켈리) 등이 출연했으며 현재 애플티비와 시리즈온, 넷플릭스(9월 14일까지) 등 OTT 플랫폼에서 상영 중.
최정원, 최재림 등이 주역을 맡은 동명의 뮤지컬도 오는 10월 11~12일(금요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2시, 6시 30분)에는 광주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다. 최근 흥행과 맞물려 영화 또한 다시 주목받는 상황, 동일 작품이 오랜 시간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예고도 없이 록시의 삶을 덮치는 비극과 연민은 그 이유 중 하나다. 그녀가 바람둥이 프레드 케이슬리를 살해한 뒤 쿡 카운티 교도소에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은 죄악이지만 빌리의 대사처럼 “Understandable”,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세상은 살인에 자본이라는 잣대를 들이 민다. 감옥에서 만난 다른 여성들도 사건의 인과를 제대로 고려받지 못한 채 수감됐다. 이들은 ‘Cell Block Tango’를 부르며 생소한 키워드로 살인 동기와 억울함을 증언하는데 ‘팝, 식스, 스퀴즈, 아냐, 시세로, 립시츠’가 바로 그것.
‘시세로’ 호텔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나 ‘여섯’ 애인을 둔 모르몬교 남자의 비화는 그리 중요치 않다. 록시가 개인적 비극을 여성사로 확대하는 모습은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여인들은 한 순간 어둠으로 곤두박질치는 고통을 겪었다. 이들 운명은 빛에서 어둠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해조(그라데이션)라기보다, 명암 대조가 극명한 테네브리즘처럼 갑작스러운 비극으로 추락했다. 그래서인지 비극적 군무는 더 아름답다.
원초적 자극과 육체미도 작품의 매력으로 꼽고 싶다. 오페라싱어들은 관능적 움직임으로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선사한다. 성적 리비도(충동)가 극에 달하는 곡은 빌리의 ‘Razzle Dazzle’, 인간 욕망을 몸의 언어인 서커스로 빗댄 작품이다.
록시와 그가 추앙하던 스타 벨마의 관계도 흥미롭다. 그녀는 벨마의 아성을 넘기 위해 언론 앞에서 자신이 그저 재즈와 캬바레, 술에 현혹된 ‘불나방’일 뿐이라고 말한다. 거짓임을 알지만 빅트롤라 축음기 앞에 쓰러진 가련한 자태는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살인을 저질렀으나 그게 죄가 되진 않는다”는 얄팍한 증언마저 믿어주고 싶을 만큼 록시는 찬란하다. 관객들은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도 걸린 것처럼 어느 순간 그녀의 ‘비상’을 응원할지 모른다.
극 중 기자들은 록시·벨마를 개심한 죄인으로 오판하게 한다. 범죄는 ‘현상학’이고 악은 ‘형이상학’일 뿐, 두 간극에서 오는 엑스터시는 ‘악행을 저지른 이가 반드시 악인은 아닐 것’이라는 위험한 에티카(윤리학)를 남긴다. 이들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 벨바와 뷸라도 팜므 파탈로 알려져 있다.
삽입된 곡들의 퀄리티만으로도 ‘시카고’는 이미 기념비적 작품이다.
록시의 남편 에이모스가 자신은 투명한 셀로판에 불과했다고 한탄하는 ‘미스터 셀로판’, 벨마가 록시에게 듀오 데뷔를 제안하는 ‘I Can‘t Do It Alone’ 등도 귀를 사로잡는다.
두 여인이 협연하는 ‘Hot Honey Rag’는 왜곡된 행복과 카타르시스가 응축된 피날레로 적절하다. ‘파티는 길게, 스커트는 짧게’라는 도발적 캐치 아래 둘은 쇠창살 밖으로 나온다.
무죄선고를 받으면서 맞이한 해피엔딩과 달리, 현실 속 벨바와 뷸라는 고소전에 휘말리거나 단명했다. 이런 수난사를 모르듯 극화된 장면 속에서 두 프리마돈나는 밝게 웃는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복화술의 귀재 빌리 플린이 살인범 록시 하트를 변호하기 위해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시작한다. 기자들의 머리 위에 드리운 붉은 현 수십 가닥은 언론플레이가 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알레고리다.
이튿날 신문에는 ‘미모의 재즈 킬러’라는 톱기사가 대서특필되고 록시는 무죄 방면된다. 시카고를 쥐락펴락한 ‘연극’이 성공한 셈.
![]() 벨마 켈리가 감옥에서 ‘Cell Block Tango’를 부르며 시세로 호텔에서의 살인 비화를 들려주고 있다. 그녀의 주장은 “놈은 백 번 죽어도 싸” |
최정원, 최재림 등이 주역을 맡은 동명의 뮤지컬도 오는 10월 11~12일(금요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2시, 6시 30분)에는 광주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앞두고 있다. 최근 흥행과 맞물려 영화 또한 다시 주목받는 상황, 동일 작품이 오랜 시간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변호사 빌리 플린은 그를 간절히 원하는 의뢰인 속에서 찬가 ‘All I Care About’를 노래한다. “실크 넥타이도 관심 없어, 루비 장식 단추도 새틴 각반도 관심 없어/ 내 관심은 오직 사랑” |
그러나 녹록지 않은 세상은 살인에 자본이라는 잣대를 들이 민다. 감옥에서 만난 다른 여성들도 사건의 인과를 제대로 고려받지 못한 채 수감됐다. 이들은 ‘Cell Block Tango’를 부르며 생소한 키워드로 살인 동기와 억울함을 증언하는데 ‘팝, 식스, 스퀴즈, 아냐, 시세로, 립시츠’가 바로 그것.
‘시세로’ 호텔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나 ‘여섯’ 애인을 둔 모르몬교 남자의 비화는 그리 중요치 않다. 록시가 개인적 비극을 여성사로 확대하는 모습은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여인들은 한 순간 어둠으로 곤두박질치는 고통을 겪었다. 이들 운명은 빛에서 어둠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해조(그라데이션)라기보다, 명암 대조가 극명한 테네브리즘처럼 갑작스러운 비극으로 추락했다. 그래서인지 비극적 군무는 더 아름답다.
![]() “누구나 다 아는 유명 스타/ 그들은 다 내 눈을 알아볼거야/(…)/ 누가 살인은 예술이 아니랬지?” 일약 스타덤에 오른 록시가 향후 ‘보드빌’ 활동을 꿈꾸며 주제곡 ‘Roxie’를 부르는 모습. 그녀는 에이모스와의 침대 속 비화부터 바람을 피게 된 경위 등을 설명하며 관능미를 뽐낸다. |
록시와 그가 추앙하던 스타 벨마의 관계도 흥미롭다. 그녀는 벨마의 아성을 넘기 위해 언론 앞에서 자신이 그저 재즈와 캬바레, 술에 현혹된 ‘불나방’일 뿐이라고 말한다. 거짓임을 알지만 빅트롤라 축음기 앞에 쓰러진 가련한 자태는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살인을 저질렀으나 그게 죄가 되진 않는다”는 얄팍한 증언마저 믿어주고 싶을 만큼 록시는 찬란하다. 관객들은 스톡홀름 신드롬이라도 걸린 것처럼 어느 순간 그녀의 ‘비상’을 응원할지 모른다.
극 중 기자들은 록시·벨마를 개심한 죄인으로 오판하게 한다. 범죄는 ‘현상학’이고 악은 ‘형이상학’일 뿐, 두 간극에서 오는 엑스터시는 ‘악행을 저지른 이가 반드시 악인은 아닐 것’이라는 위험한 에티카(윤리학)를 남긴다. 이들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 벨바와 뷸라도 팜므 파탈로 알려져 있다.
![]() 벨마 켈리가 펼치는 절망의 쇼, 모든 인기를 록시에게 독차지당하고 오히려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동생과 선보이던 2인무 ‘I Can‘t Do It Alone / I Can’t Do It Alone’를 홀로 부르는 장면. |
록시의 남편 에이모스가 자신은 투명한 셀로판에 불과했다고 한탄하는 ‘미스터 셀로판’, 벨마가 록시에게 듀오 데뷔를 제안하는 ‘I Can‘t Do It Alone’ 등도 귀를 사로잡는다.
두 여인이 협연하는 ‘Hot Honey Rag’는 왜곡된 행복과 카타르시스가 응축된 피날레로 적절하다. ‘파티는 길게, 스커트는 짧게’라는 도발적 캐치 아래 둘은 쇠창살 밖으로 나온다.
무죄선고를 받으면서 맞이한 해피엔딩과 달리, 현실 속 벨바와 뷸라는 고소전에 휘말리거나 단명했다. 이런 수난사를 모르듯 극화된 장면 속에서 두 프리마돈나는 밝게 웃는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