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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에 즈음하여 - 명혜영 광주시민인문학 대표
2024년 05월 23일(목) 21:30
“지원 받을 땐 한국식, 봉양할 땐 미국식?... 아들만 보면 화가 난다”는 모 매체의 기사가 눈에 뛰었다. 내용인즉슨, ‘자식 성공’이 지상목표인 아내의 요구에 따라 평생 전세를 살며 아들 교육에 전폭적으로 투자해 미국유학까지 보냈다는 인터뷰. 그러나 아들은 귀국 후 결혼해 독립하더니 기대했던 한국식 효도는커녕 연락마저 뜸해 ‘이게 미국식?’하고 반문하며 자식에게 버림받은 느낌이 든다고 호소하는 아버지의 사연이었다.

기사를 정독하며 “아들만 보면 화가 난다”가 아니라, 이를테면 아들(역할)이 아니라 “OO이를 보면 화가 난다”로 말할 수는 없을까? 의문시해봤다. 이렇게 표현을 바꾸면 문제의 논점도 달라진다. 보편적 전통문화에서 구체적인 개인 OO이의 문제로.

이와 비슷한 사례로 세대차, 효도 운운하며 가족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어 기사화되는 일은 요즘 세태에 흔하다. 그렇다면 어느 지점에 불협화음의 불씨가 숨어있었던 것일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인문학적 관점에서 한 가지 진단결과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즉 현대 한국사회는 급격한 ‘개인화’의 영향으로 재편, 재구축되었으며 이는 아직도 진행 중에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에 기성세대가 적응, 편승해야 하는데 진행속도가 너무나도 급격한 나머지 여러 방면에서 세대차 즉,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있는 것.

식자들은 작금의 시대정신으로 기후위기, 격차사회, 페미니즘을 꼽는다. 필자는 여기에 ‘개인화’, 즉 개인주의를 더하고 싶다. 그리고 미리 언급해두자면 개인주의의 상대어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봉건주의라는 점에 유의해야겠다.

근대 서구의 18세기 즈음에 ‘개인’이 탄생했다. 서구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도 청년층에서는 이미 ‘개인화’가 정착되었다고 본다. 이에 따라 개인을 억압하는 전통은 부정되거나 재편되었고 회사동료, 친족, 가족 간의 인간관계 또한 그 형태가 변화 내지는 파편화되었다. 그럼에도 기성세대는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정서를 고집하며 ‘인간은 사회(공동체)적 동물이다’는 슬로건 아래 ‘라떼’와 ‘꼰대’를 재생산한다.

그렇다면 본래 ‘개인(individual, 個人)’이란 어떤 무엇인가? 인문학, 즉 인간학은 이를테면 ‘개인’에 대한 다각적인 해석의 결정체라 볼 수 있겠다. 서구 근대에 탄생한 ‘개인’은 오랜 시간 사회 속으로 뿌리내리며 근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문화를 생성해왔다. 한국사회에서도 최근 개인보호법, 개인회생 등등 여러 분야에서 ‘개인’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최근 청년층에서 회자되는 ‘개인의 취향’, 일명 ‘개취’ 또한 이러한 가치관을 반영한다. 즉 나의 인생은 나의 판단과 선택 하에 최대한 자율적으로 실현하는 게 행복이라는 가치관을 중요시한다.

이쯤해서 서구 ‘개인’의 학술적 특성을 언급해보자면 개인의 존엄성, 자율성 및 자기실현, 프라이버시(privacy), 자기통제 등 네 가지 항목으로 요약된다. 여기에서 작금에 가장 활발히 실현 중인 항목은 자율성 및 자기실현, 그리고 여기에다 자기자신에 대한 배려를 덕목으로 한 프라이버시이다.

철학자 이진우는 저서 ‘개인주의를 권하다’에서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은가? 남이 아닌 나를 위한 삶에 몰두하고 싶은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며 삶의 기준을 ‘나’로 세우라고 조언한다. 덧붙이자면 정부 정책의 기준점 또한 ‘개인’으로 바뀌어야 실제가 보인다.

한발 더 나아가 필자는 ‘개인의 존엄성’을 거론하며 “어떠한 편견도 없이 한 인간을 ‘개인’의 인격으로 대하지 못한다면, 상대적 강자로서의 당신은 백전백패!”라 감히 경고하고 싶다. 아이건, 노인이건, 여자건, 외국인 노동자이건, 직장 후배이건, 군대 후임이건, 나이어린 사람이건, 장애인이건, 성소수자이건. 사회가 명명한 약자적 명칭을 뚫고 들어가 인간 그 본모습과 만나라. 그 어떤 선입견도 없이, 오로지 하나의 개인으로 대하라. 그럴 수 있는가?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본래의 항목에 적합한 ‘개인을 도야하라’. 이는 ‘너와 나’ 상호적 미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