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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기 위해 깎는 것 - 정민 조선대 중국어문화학과 2년
2024년 05월 07일(화) 00:00
가장 완벽한 도형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정사각형을 누군가는 원형을 말하지만 각자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도형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완벽한 인간은 무엇일까? 완벽한 인간이란 육각형을 꽉 채울 수 있어야만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다방면으로 뛰어난 사람을 두고 ‘육각형 인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육각형의 꼭짓점에 각각의 기준을 세워놓고 그 육각형을 꽉 채울 수만 있다면 누구든지 ‘완벽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갈수록 이 잣대가 가혹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완벽하다고 정의된 이 도형에 자신을 가둬둔 채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기 시작했다. 육각형의 완만한 울타리가 아닌 자꾸만 삐뚤빼뚤 해지는 자신의 울타리에 당근 없는 채찍질로 스스로를 모질게 대하기 시작했다.

원래 육각형 인간이라는 말은 결혼정보회사에서 사용했던 말이라고 한다. 외모, 집안, 직업, 자산, 학력, 성격을 기준으로 자신과 비슷한 조건의 상대를 찾기 위함이었다. 이 육각형은 퍼지고 퍼져 연예인을 거치고, 현재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사용되고 있다.

육각형의 꼭짓점에 세워진 기준들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임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모두가 선망하는 완벽의 기준이 될 수 있었다. 또 몇몇 기준들은 절대 바꿀 수 없는 것들이기에 육각형 인간이 되고자 하는 갈망을 키웠겠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내가 되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자신을 모질게 대하며 육각형 인간이 되고자 살아가는 것은 감히 틀렸다 단언한다.

늘 시작은 단순하다. 아마 처음 대중적으로 다가온 의미는 큰 무리 없이 내 몫을 곧잘 해내는 그런 사람을 가리켰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 육각형은 커지고 커져 완벽함보다는 사회적 가치의 기준표가 돼버렸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가치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평상시 자신의 가치를 명확히 정의할 마땅한 기준이 떠오르지 않기에 육각형이라는 통상적인 울타리에 자신을 가둬버린 것이다. 누가 정한 기준인지도 모른 채 그에 맞지 않는 자신을 채우려 또다시 자신을 깎아내는 데 여념이 없다.

부족해 보이는 스스로를 아껴준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나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훨씬 많이 안다. 또한, 그러한 단점을 쉬이 나의 일부분으로 포용해 주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늘 생각한다. 완벽한 나를 아끼는 일은 너무나도 쉽다. 이미 잘난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는가. 그런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아는 때야말로 진정 스스로 아끼는 법을 아는 때일 것이다.

물론 적당히 남과 비교하며 평균을 맞추는 법 또한 알아야 한다. 평균이라는 것은 나의 발전 방향을 알려주는 지표가 되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남과 비교하는 것에 치우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무미건조하게 살아간다면 진실된 성장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메마른 땅에서 건강한 새싹이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결국 사회 속에서 여러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기에 나의 사회적 가치와 비춰짐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스스로를 깎아 가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차피 고민하고 깎아 가야 하는 거라면 먼발치에서 바라봤을 때 나인지 너인지 모를 똑같은 육각형이 아닌 나만 할 수 있는 ‘나’라는 조각을 깎으며 살아가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