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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조문 다녀오던 날 - 송민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
2024년 04월 30일(화) 22:00
초록이 좋아서 산행을 떠나는 5월이다. 벌써 15년 전, 그날도 5월 23일 아침나절이었다. 키 큰 흰철쭉이 흐드러지게 핀 지리산 반야봉 등반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병원 입원’이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했다. 인터넷을 보고 아내가 보내온 메시지였다.

눈을 의심했다. 아직도 그 육성이 귀에 생생한 전직 대통령의 자살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1년 3개월 전까지 국가원수의 자리에 있던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다.

전직 대통령이 자살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정치 현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퇴임 이후 도덕적으로 파렴치한 사람으로 내몰려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음을 택하였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저미어 왔다. 전임자에게 예우는 못 해줄망정 모질고 야만적인 공격을 해댄다는 게 과연 문명한 사회에서 가능한 일일까.

직접 가서 조문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 다음 날 새벽 6시 여수에서 아내와 함께 봉하마을로 향했다. 초·중·고교 입학과 입대 시기가 같은 동갑내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 평소에도 친근감을 느끼던 터였다. “더 많은 죄를 지은 사람도 사는 데 왜 죽어?”라고 말하던 이웃집 할머니 말이 계속 귓전에 맴돌았다.

김해시 진영읍 진영공설운동장에 차를 세워 두고 봉하마을로 가는 셔틀버스에 오르게 되었다. 마을 들머리에 내려서 분향소까지 1km 남짓. 걸어가는 길은 추모객의 인파로 꽉 메우고 있었다. 도로 양쪽에는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대통령입니다” “당신이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등 추모의 글귀들이 고인에 대한 애통함과 그리움을 전하고 있었다. 봉하마을 어디에선가 노 전 대통령이 밀짚모자를 쓰고 자전거에 손녀를 태우고 금방이라도 손을 흔들며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동안 노 전 대통령은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희망이었다. 가난했던 학창 시절을 꿋꿋이 이겨내며 학벌 없고 배경 없는 보통 사람도 떳떳이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 사람이 아니던가. 그는 많은 전직 대통령 중에서 유일하게 귀향하여 몸소 생태공원을 조성하고 자연 영농을 실천했던 사람이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봉하마을에 도착하자 신문과 방송 차량이 뒤엉켜 취재 열기로 가득했다. 기사를 송고하는 취재진과 요인들이 출입하는 문 앞에서 카메라 앵글을 맞추어 놓고 기다리는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방송사마다 모두 로고를 감추고 취재 중이었다. 뙤약볕 아래서도 꾸역꾸역 모여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상주였고 추모객이었다.

분향소 곳곳에 나부끼는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글귀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분향소 앞에는 국화꽃을 들고 수많은 인파가 길게 늘어서 차례를 기다리는 조문객들의 표정이 슬픔에 겨워 엄숙했다.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있을 법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낯익은 우리의 이웃인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기다림 끝에 분향소에 안치된 대통령의 환하게 웃는 영정사진을 대하고 보니 눈물이 울컥 솟았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사람대접받을 수 있는 세상, 국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자서전 ‘운명’에서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아홉 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어느 것 하나 대통령 책임 아닌 것이 없었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고 했다. ‘대통령의 책임’이 거론될 때마다 회자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말로 염치를 아는 이 시대 마지막 한국 정치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