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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 광주 고려인 ‘대한민국 국민’ 됐다
박노순 선생 손녀 박림마 등 5명 국적 얻어 ‘자력 취득 첫 사례’
광주 7000명 중 한국 국적 취득 10여 명…정부 해결책 모색을
2022년 08월 15일(월) 20:00
우가이 예고르(오른쪽 두번째)군을 비롯한 고려인 가족들이 최근 한국 국적을 받고 지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예고르군 가족 제공>
광주 고려인마을에 거주하는 독립운동가 후손 가족이 법무부로부터 한국 국적을 받아 ‘한국인’이 됐다. 광주 고려인 중에서 국제 결혼이 아니라 자력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첫 사례다.

법무부는 지난 11일 독립운동가 박노순 선생의 후손으로 밝혀진 고손자 우가이 예고르(8)군 등 5명에게 한국 국적을 부여했다고 15일 밝혔다. 예고르군 외에도 고손녀 최 빅토리아(여·22)씨, 우가이 안젤리카(여·16)씨, 증손녀 우가이 타이아나(여·42)씨, 손녀 박림마(여·64)씨가 한국인이 됐다.

이들은 모두 카자흐스탄 국적을 갖고 있었으며, 지난 2020년 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기존의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 한국 국적을 함께 보유할 수 있어 복수 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

함경남도 덕원군 출신인 박노순 선생은 1918년 노령 하바로프스크에서 적위군에 참가했으며 1919~1922년 연해주 ‘다반부대’ 소속으로 항일 빨치산 활동을 했다. 이후 일제 경찰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지난 2008년 박노순 선생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이들은 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한 7000여명 고려인 중 유일하게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는 가족이다. 고려인마을 관계자에 따르면 고려인들은 독립운동가 선조의 계보를 증명하기 어려운 무명 열사의 후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려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취업이 자유롭고 체류 기간에 제한이 없어져 큰 도움이 된다.

고려인들은 방문취업(H-2)과 재외동포(F-4) 비자를 받는 경우가 많다. 방문취업 비자의 경우 출입국관리법으로 정한 단순노무 분야에서만 취업할 수 있고, 재외동포 비자는 단순 노무, 유흥업 등에 종사할 수 없는 등 제한이 있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경우에는 방문동거(F-1) 비자를 받는데, 이 경우 출입국관리법에서 정한 업종 외 취업이 전면 불가능하다. 이들 모두 3년여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어려움도 안고 있다.

당장 취업이 어려워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는 이는 많지만 실제로 취득에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한국인과 국제결혼을 하거나 한국 국적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시험 난도가 높아 합격자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광주 고려인마을 신조야 대표에 따르면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는 10여명 남짓이며, 이 중 국적시험을 통과한 경우는 없다.

독립유공자 후손이 자력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는 소식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국에 피란 온 ‘국적 없는 고려인동포’들 사이에서도 한국 국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5일 현재 고려인마을에는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광주로 입국한 이후 총 420여 명의 고려인 동포들이 거주 중이며, 이 중 60여명은 ‘무국적자’다.

이들은 1937년 옛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해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터전을 잡고 농사일을 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카자흐스탄 등 국가에서는 국적 회복 신청을 받았으나 많은 고려인들이 시골에 살았던 탓에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여권조차 없는 무국적자들은 임시(G-1) 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왔으며, 취업 제한은 물론 6개월마다 한 번씩 비자를 갱신해야 한다.

이들은 정부에 한국 국적이나 재외동포 비자를 제공해 줄 것을 꾸준히 요청해 왔으나, 뚜렷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가 지금까지 3차례 광주 고려인마을을 찾아 무국적자들의 애로사항을 들었으나 별다른 해답을 찾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조야 대표는 “고려인마을에서 자력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가족이 나와 기쁘다. 다른 고려인들에게도 희망이 될 것”이라면서도 “한편으로 무국적자들에겐 꿈 같은 일이다. 한국 국적은 커녕 변변한 일자리조차 얻기 힘들어 갈수록 위험한 직업에 내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갈 곳 잃은 동포들을 위해 정부에서 체계적인 지원을 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