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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 두 개-중 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2년 08월 05일(금) 01:00
부산에 갈 일이 있어 길을 나섰다. 늘 다니는 남해고속도로가 아니라 드라이브를 겸하여 남해, 거제 그리고 가거대교 방면으로 코스를 잡았다. 부산에서 돌아오는 길, 거제의 아름다운 해변과 한적한 어촌마을들을 지나가며, 해운대에서 부산 신항에 이르기까지의 구간 역시 예전엔 이러했을 거라 상상했다. 아주 오래된 과거로 갈 것까지도 없다. 부산이 고향인 내 기억 속 해운대에서 눈에 띄는 건물이라고 해 봐야 동백섬 옆에 있던 조선비치호텔이 전부였다. 그조차 오랫동안 해운대 백사장의 풍광을 망친 흉물로 부산시민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건물이다.

해운대의 숨막힐 듯한 스카이라인과 신항의 압도적인 스케일, 그리고 거인처럼 서있는 컨테이너 선착장의 타워크레인들을 보면 현실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 줄지어 선 타워크레인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등장하는 거인병을 연상하게 한다. 극중에서 거인병은 ‘마지막 7일’ 동안 지구를 불바다로 만들어 결국 지구를 멸망시킨 장본인들이다. 바다에서 보는 부산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꿈이었던 것만 같은 착각마저 살짝 든다.

거제도 어느 해안가의 주차장 구석에는 낡은 안내판 하나가 외롭게 서있다. 거기엔 작은 몽돌 두 개, 실제 편지 사진 그리고 편지의 내용을 풀어 설명한 글이 적혀 있다. 미국에 사는 손녀가 할머니의 고향인 거제에 놀러 왔다가 몽돌 해변이 너무 아름다워서 기념으로 몽돌 두 개를 가져갔다. 그러나 할머니로부터 모진 꾸중을 듣고 주워 갔던 몽돌 두 개를 편지에 담아 거제의 할머니 고향으로 되돌려 보냈다는 내용이다.

아마도 훈훈한 미담을 알리고 싶었거나, 아니면 나름 교훈을 주려고 굳이 안내판으로 만든 모양이다. 그러나 안내판은 빛이 바래 낡고 옹색했다. 차라리 몽돌을 가져가는 것은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행정 편의성 안내만 하는 것이 나았을 법하다. 왠지 가르치려 드는 고압적인 자세가 느껴지기도 하고, 오히려 얄팍한 상술로 비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낡아서 볼품없어지도록 방치하고 있는 건 또 무슨 심사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특이하게도 그 해변은 펜션이나 카페같은 건물들이 해변과 맞닿아 있었다. 대부분 해안도로 너머로 해변이 있는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저렇게까지 심하게 해변을 훼손하면서도 이런 안내문을 걸어 놓는 것 역시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해운대에서 가덕도까지의 해변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다. 망가졌다기 보다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압도적 스케일의 부산 신항과 웅장한 광안대교 그리고 해운대의 하늘을 찌르는 스카이라인을 보며 탄성을 자아냈을 것이다. 또한 동시에 한 소녀의 반성과 할머니의 가르침을 접하며 ‘그래 그래야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서로 치열하게 대립하는 두가지 가치관을 접하면서도 우리의 머리는 아무런 충돌 없이 자연스럽게 이들을 모두 수용한다.

이 모든 풍경을 나는 자동차로 이동하며 보았다. 현대 사회에서 살면서 공장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형태의 공장도 자연을 파괴한다. 당장 나를 편하고 빠르게 이동시켜준 자동차와 도로만 해도 그렇다. 매연은 말할 것도 없고 도로를 만들고 포장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자연 파괴이다. 나 역시 지금껏 살면서 이 지구상 어딘가의 해변을 파괴하는데 일조한 것이 확실하다. 내가 그러하듯 모든 인간은 자연 파괴에 책임이 있다. 인간 사회 자체가 자연의 파괴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부산 일대의 해변을 개발한 일군의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이들의 생존과 안락한 삶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오히려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손녀야 말로 인류의 생존과 발전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일 수 있다. 저 멀리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한국으로 겨우 몽돌 두 개를 돌려주기 위해 지출된 사회적 비용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미 지구는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태이다.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 같은 처지이다. 우선은 살려놓고 볼 일이다.

‘과연 현대 문명이 선사하는 편리함과 안락함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지구를 살릴 수 있을까?’ 부산항 일대의 모습과 거제의 한적한 해변 간의 괴리만큼 이 질문을 대하는 내 마음은 아득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