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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오디세이 美路] 천년 담양, 생태와 인문학으로 디자인하다
오백살 나무들의 숨결 속으로 걷자 ‘관방제림’
대숲 위로 푸른 하늘, 대숲 사이로 황톳길 ‘죽녹원’
힙한 공연·전시 보면서 문화산책 ‘해동문화예술촌’
탈 코로나, 생명의 기운을 가슴 한가득 ‘용마루길’
2022년 05월 23일(월) 18:15
이이남 아트센터에 전시돼 있는 미디어아트 작품 ‘신 묵죽도’.
담양군은 담양 명명(命名) 1000년을 맞은 지난 2018년 ‘천년 담양’을 선포하고 인문·역사·환경의 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천년 담양, 생태와 인문학으로 디자인하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미래 천년을 위한 힘찬 걸음을 내딛고 있다. ‘대숲 맑은 생태도시’와 ‘문화관광 도시’로 탈바꿈하는 오월의 담양은 생동한다.

◇사계절 색다른 ‘치유의 숲’… 관방제림=“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영문학자이자 수필가인 피천득(1910~2007)은 ‘오월’에서 5월을 맑고 산뜻한 청년의 얼굴로 묘사한다. 녹음(綠陰)이 짙어가는 생동의 계절과 풋풋한 스무 살 젊음은 닮은꼴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18일 0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 일상을 되찾았다. 757일, 2년1개월 만이다. 따가운 햇살과 산들바람, 눈에 꽉 들어차는 초록 빛깔마저 새롭게 다가온다.

관방제림(官防堤林·천연기념물 제366호)은 해마다 발생하는 담양읍 수해를 막기 위해 관에서 주도해 만든 숲이다. 1648년(조선 인조 26년)에 성이성 부사가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었고, 이어 200여 년 후인 1854년(철종 5년)에 황종림 부사가 기존 제방을 늘려 쌓고 숲을 다시 정비했다고 전해온다. 과거 관방제에 700여 그루 나무가 심어졌으나 현재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벚나무, 은단풍나무 등 15종 낙엽성 활엽수 32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관방제림 고목들마다 번호표를 달고 있는데 상징적인 ‘제1번 나무’는 음나무(엄나무)이다. 표지판에 따르면 본래 높이 14m, 가슴높이 둘레 3.9m의 거목이었으나 지난 2013년 7월 3일 비바람에 쓰러져 같은 해 11월 후계목을 심었다. 나무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듯 번호표에 눈길을 주며 관방제림 숲길을 따라 싸목싸목 걷는다. 마지막 ‘제 177번 나무’는 V자 모양을 한 팽나무이다.

숲길은 ‘담양 메타세쿼이아 랜드’(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 이어진다. 지난 2015년에 ‘남도 산림문화자산’과 ‘국가 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됐다. 죽녹원~관방제림~메타세쿼이아길은 ‘힐링 로드’이다. 천천히 흙길을 걸으며 고목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코로나 19’로 인해 답답한 마음이 절로 치유되는 듯하다.

◇푸르고 푸른 초록의 향연(饗宴)… 죽녹원=“맨발로 걸으면 참 좋겠다!” 죽녹원에 들어서면 곧게 하늘로 죽죽 뻗은 대나무 숲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숲 사이로 난 황토길을 걷던 누군가가 감탄사처럼 말했다.

죽녹원 내부는 ‘운수대통길’(420m)을 비롯해 ‘사랑이 변치 않는 길’(570m), ‘철학자의 길’(440m), ‘선비의 길’(360m) 등 8개의 코스로 구성돼 있다. 대숲 길을 걷다 걸음을 멈춰본다. 1990년대 말, 이동통신사 TV 광고 카피였던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가 자연스레 오버랩 된다.

죽녹원내 자리한 ‘이이남 아트센터’(생태전시관)에서는 또 다른 대나무를 만날 수 있다. ‘신(新) 묵죽도’(4분)와 ‘병풍 묵죽도’(10분 30초)는 미디어 아트로 대나무를 표현했다. 5대의 대형 모니터를 세로로 연결한 ‘박연폭포’(7분55초) 작품은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의 폭포수와 함께 둥근 보름달이 낙하하는 장관이 연출된다.

전국 대나무 면적의 34.3%를 차지하는 담양에서 대나무밭은 주민들의 생활과 밀착된 농업유산이라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담양 대나무밭’은 ‘국가중요농업유산’(2014년)과 ‘세계 중요농업유산’(2020년)으로 각각 지정됐다.또 담양군 대전면 영산강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태목리 대나무 군락’은 경관가치와 생태적·민속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20년 11월에 대나무 군락지로는 처음으로 천연기념물(제 560호)로 지정됐다. 담양 대숲에서 ‘또 다른 세상’과 ‘천년 담양’의 생활사를 만난다.

예술로 문화를 빚은 담양 ‘해동문화예술촌’ 오색동.
◇막걸리 대신 문화예술을 빚는… ‘해동 문화예술촌’=(재)담양문화재단 해동문화예술촌은 막걸리 대신 문화예술을 빚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먼저 들른 ‘아카이브관’에서 해동주조장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1950년대 말 고(故) 조인훈 초대 대표가 ‘선궁 소주’를 인수해 해동 주조장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1966년 국세청 주관 전국 주류품평회에서 입상하는 등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소주와 맥주 소비량이 늘면서 해동 주조장을 비롯한 전국 막걸리 주조장은 경영난을 겪게 됐고 2010년 4월 폐업했다. 이후 한동안 방치됐다가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하는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며 전환점을 맞았다. 리모델링을 거쳐 과거 막걸리를 빚던 주조장(양조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2019년 6월 ‘해동문화예술촌’으로 문을 열었다.

‘해동문화예술촌’은 개관 이후 참신한 문화공연과 전시를 기획해 선보이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인 25일 담양군 무정면 체육공원에서 ‘메타버스’의 첫 번째 공연으로 퓨전국악 공연 ‘구각노리와 함께하는 새로운 국악과 한시’를 개최한다. ‘메타버스’는 면소재지 네 곳(무정면, 대덕면, 창평면, 봉산면)을 직접 찾아가 군민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앞서 지난 14일에는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현대무용가 홍신자의 오마주 공연이 열렸다.

또한 지난 3월 시작한 ‘앙코르 해동’ 3번째 공연으로 오는 28일 오후 5시 싱어송라이터 ‘하림의 낮고 따뜻한 음표’가 펼쳐진다. 아레아 갤러리에서는 노순택, 조정태, 하태범 작가가 참여한 ‘폭력에 관한 성찰’(~8월 28일)이 열리고 있다.

오랜만에 해동문화예술촌을 찾은 이라면 옛 담양읍교회 예배당 건물을 리모델링한 ‘오색동’에 눈길이 닿을 것이다. 인문 프로그램(카페필로) 강연장과 공연장으로 활용되는 새로운 공간이다. 내부에 들어서면 세로로 길쭉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줄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쪽 벽면에는 ‘천년 담양’ 문장(紋章)이, 맞은 편 벽변에는 ‘담양 천년 선언문’이 새겨져 있다. 2018년 1월 1일 새로운 천년의 첫날, 담양 군민들은 ‘지속가능한 생태도시의 가치와 인문정신’이라는 새 이정표를 세웠다. 담양은 미래 천년을 향한 힘찬 걸음을 내딛고 있다.

담양호 수변을 따라 걷는 ‘용마루길’ 입구 목교와 인공 폭포.
◇윤슬과 초록빛 만끽하는 수변 둘레길… 담양호 ‘용마루길’=이보다 좋을 수 없다. 이제 ‘코로나 19’와 함께 부대낀 지 3년이 돼가며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유행)이 엔데믹(감염병 주기적 유행·풍토병)으로 바뀌고 ‘사회적 거리두기’ 역시 종료됐다. 그동안 찌들어 있었던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담양호 수변길인 ‘용마루 길’은 목교를 건너 시작된다. 과녁바위산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단 산허리 암벽을 타고 인공 폭포가 흘러내린다. 가까운 거리에서 폭포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별도로 마련돼 있다. ‘용마루 길’ 총길이는 3.9㎞. 나무데크가 2.2㎞, 흙 산책길이 1.7㎞ 이다. 목교에서 출발해 옛마을 터까지 걸어서 왕복하려면 2시간여가 소요된다. 데크 길은 유모차를 끌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완만하고 두 사람이 나란하게 걸어갈 수 있는 폭이다. 도보 객들의 편의를 위해 데크길 중간 중간 쉼터 7개소가 마련돼 있다.

초여름같은 날씨에 ‘용마루 길’을 걷는 느낌은 관방제림이나 죽녹원과 또 다르다. 같은 신록이지만 오른편에 물, 왼편에 산자락을 끼고 걸으면서 탁 트인 담양호의 절경을 두 눈으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데크 나무들부터 멀리 추월산자락까지 눈길 닿는 곳마다 짙은 초록의 물결을 이룬다. 뭇생명들의 소리 없는 ‘파도타기’ 응원이다.

담양호에서는 웨이크 보드와 관광용 보트 등 다양한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다. 하늘빛깔이 고스란히 투영된 잔잔한 호수 위를 쾌속 질주하는 보트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시원스럽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담양=노영찬 기자 nyc@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