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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때마다 내놓는 땜질식 안전법안 ‘이제 그만’
건설기술진흥법 등 수 차례 개정에도 산업재해 예방 역할 미흡
건설안전특별법 등 산업현장 실태 제대로 반영, 입법 서둘러야
2022년 01월 24일(월) 23:00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 15일째를 맞는 25일 오전. 오전 구조대원들이 외벽이 무너져 내린 30층 이상 상층부 지점을 수색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건물 붕괴나 공사 중 사망 사고가 날 때마다 건설업체 처벌을 강화하거나 안전 조치를 의무화하는 법률이 통과됐음에도,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노동자 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대규모 인명피해를 낸 사고가 날 때마다 땜질식 법이 통과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실효성 높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건설 현장 안전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국회에 계류중인 법률에 대한 꼼꼼한 심의와 조속한 통과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거세다.

24일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국회입법조사처 등에 따르면 정부와 국회가 부실 공사를 막고 건설현장의 안전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수 차례 개정해온 법률은 크게 건설기술진흥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으로 나뉜다.

건설기술진흥법은 지난 1987년 건설기술관리법으로 제정된 뒤 노량진 수몰사고(2013년 7월), 서울 방화대교 구조물 붕괴사고(2013년 7월) 등이 잇따르면서 품질·안전·시공을 전문성 있는 전문 감리업체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정부와 국회는 이후에도 무려 감리의 전문성을 높이겠다며, 건설현장 안전성을 강화하겠다며 31차례나 법을 고쳤다.

하지만 건설 현장의 품질·안전·시공 관리가 제대로 이뤄진 건 아니었다. 잇따르는 부실감리를 막지는 못했다. 당장 최근 2년(2019년~2021년) 간 부실 감리 등으로 벌점을 부과 받은 감리 회사만 200여곳에 이르고 벌점을 부과받은 횟수도 600건에 육박한다. 감리의 독립적 감독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발주처의 눈치만 보는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서 현장에서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산업안전보건법도 비슷하다. 정부는 지난 2017년 ▲원청 책임 강화 ▲공공·대규모 공사의 안전관리 강화 등을 골자로 한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내놓았다. 특히 200억 원 이상의 공공발주 공사는 발주청·감리자·시공사의 사고 예방활동을 평가하고 공개하도록 했고 이같은 대책은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무려 28년 만에 확 바뀐 전부개정안이었다.

개정안에는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담았고,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 외에도 원청, 발주자(건설) 등에게도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책임을 부담토록 했다. 아울러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한 자에 대한 처벌을 실질적으로 강화토록 징역형에는 하한형을 도입하고 법인에 대해서는 벌금을 가중했다. 정부와 국회는 이후에도 산업안전보건법을 무려 12번 손질해 개선안을 내놓았다. 모두 산업현장의 안전 의식을 강화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건축법도 여러차례 바뀌었다. 정부는 지난 2020년 상주 감리가 있어야 하는 건축공사를 ‘5개 층, 바닥면적 합계 3000㎡ 이상’에서 ‘2개 층, 바닥면적 합계 2000㎡ 이상’으로 확대하고 전담 감리원 배치, 현장 관리인의 공사현장을 이탈을 막는 조치도 마련했다.

정부는 또 지난 2020년 4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를 계기로 ‘건설안전 혁신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감리자격 강화, 처벌 강화 등이 핵심이었다. 수십차례의 법안 손질에도 산업 현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건설기술진흥법이 개정된 2014년 486명이던 건설업 사망자는 493명(2015년)→554명(2016년)→579명(2017년)까지 늘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확 바뀐 2018년에도 570명의 노동자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2020년에도 광주시 동구 학동 철거건물이 붕괴되면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올해는 39층 초고층 아파트가 무너져 내리면서 현장에 있던 노동자 1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땜질식 법 개정이 아닌, 현장 안전 시스템 전반을 살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건설업계 반발 등으로 국회에 계류중인 현장 안전 강화를 위한 법안에 대한 꼼꼼한 수정도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20년 발주자·설계자·시공자·감리자 모두에게 안전의무를 부여해 사망사고가 발생 시 형사 책임을 묻는 건설안전특별법(김교흥 의원 대표 발의)만 놓고 보면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가 업무 분장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면서 입법 논의가 멈춰선 상태다.

불법하도급에 대한 처벌 수위 높이고 부당이익 몰수 ·추징하는 방안을 담은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김회재 의원 발의), 하도급 관련 불법행위 조사·단속 수행 공무원에 대한 사법경찰관리 직무 수행 권한을 주는 사법경찰직무법 개정안(이수진 의원 발의), 불법하도급 시 하수급업체, 발주자, 인허가권자까지 처벌토록 하고 건설공사 전부 하도급시 즉시 등록말소하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장경태 의원 발의) 등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논의를 거쳐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교흥 의원실 관계자는 “(건설안전특별법 처리와 관련) 건설업계에서 중대재해처벌법 통과로 두려움이 커지면서 건설안전특별법까지 통과될 경우 ‘모두 죽는다’는 목소리가 컸다”며 “올 1월 초 법안을 심사소위까지 올렸지만 통과 될 지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건설안전학회장인 안홍섭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땜질석 법 개정이 아니라 현장에 적합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안전한 건설현장 풍토를 만드는 건 결국 발주자에게 책임을 묻을 수 있는 건설안전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