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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군(昏君) - 황성호 신부·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2022년 01월 21일(금) 07:00
혼군(昏君)은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으로 암군(暗君), 암주(暗主)라고도 한다. 혼(昏)이라는 글자는 어둡다, 저녁때, 해 질 무렵을 뜻하고 군(君)은 임금, 주권자, 세자를 의미한다. 가끔 우리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는 누구인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왜냐하면 한 국가, 한 조직이나 그룹을 이끌어가는 사람, 곧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 공동체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지도자들이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해 어리석게 다스려 왔는지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다. 경제가 얼마나 성장했고, 우리의 국민 총생산이 얼마나 올라갔는지에 대한 지표에 관심이 가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가 더 중요한 관심사이다.

혼군(昏君)을 생각하다 보면 ‘다스리다’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다스리다’는 사전적으로 “국가나 집안·사회 등의 일을 보살피고 그 구성원을 이끌어 나간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다스리다’의 의미는 누군가를 지배하여 절대적인 권력으로 남을 압도하려는 데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다스리다’의 의미에는 잘 보살핀다는 뜻도 있다. 구약성경 창세기 2장 15절에,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는 말씀이 있다. 예전 번역에서는 이 ‘돌보다’를 ‘다스리다’로 번역하였는데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해야 하기 때문에 ‘다스리다’에서 ‘돌보다’는 단어로 바뀌게 된 것이다. 결국 어떤 지도자의 ‘다스리다’의 의미는 돌보고 지키며 봉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떤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이며, 덕이 뛰어나고 어진 임금을 뜻하는 성군(聖君)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고, 이어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나라를 잘 다스릴 대통령을 우리의 손으로 뽑는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그런데 누가 혼군(昏君)이 아닌 성군(聖君)으로서 우리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지 잘 선택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다 알지만, 우리가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않고 고스란히 나에게 있다. 우리 지역의 지도자들을 뽑는 지방선거도 이와 같다고 본다.

그래서 혼군과 성군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떤 지도자가 우리를 돌보아 주고 지켜 주며 봉사하려고 하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달콤한 말 한마디에 현혹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어떤 정치적 이념과 사상으로 지도자를 뽑을 일이 아니다. 우리를 어떻게 돌보고, 어떤 것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며, 어떻게 봉사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실현하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혼군(昏君)에 대한 이야기는 지도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각자의 삶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드러나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마태오복음 11장 17절에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는 말씀이 있다. 그 시대에 냉대받고 외면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한 이들을 전혀 거들떠보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예수의 말씀이다. 끝없는 탐욕과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교만함에 어떤 반성도 없을 뿐더러, 완고함으로 가득하여 피도 눈물도 없는 냉대한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돌보고 지키며 봉사하는 것이 성군(聖君)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은 물론 내 이웃과 형제자매들에게 우리는 서로 돌보고 지켜주며 봉사해야 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가 서로를 위해 혼군(昏君)이 아닌 성군(聖君)의 덕목을 실천해야 한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한 이들을 만날 때마다,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나라에 이주 노동자로 온 이들이 차별받으며 인권을 무시당했을 때마다, 같은 말을 사용하면서도 선입견과 냉대로 우리 사회에 정착하는 데 힘겨워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어려움을 접할 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혼군(昏君)이 아닌 성군(聖君)의 삶이다. 돌보고 지켜 주며 봉사하는 것, 같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