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숙 행복누리연구소 대표 “예순에 새 삶…‘디지털 노마드’ 성공사례 만들 것”
‘헐 머니가 온다’ 펴내
허약한 몸·순탄치 않았던 결혼생활…밤낮으로 공부 매진
강사로 억대 연봉 “광주·전남 청년들 인터넷 세상 공략을”
허약한 몸·순탄치 않았던 결혼생활…밤낮으로 공부 매진
강사로 억대 연봉 “광주·전남 청년들 인터넷 세상 공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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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60세에 강사 활동을 시작해 2년만에 연 300여회 강의, 억대 연봉을 달성한 안현숙(63) 행복누리연구소 대표가 최근 책 ‘헐 머니가 온다’를 펴냈다.
책에는 안 대표의 인생 굴곡과 강사로서 제2의 삶을 시작한 스토리, 좋은 강사가 되는 비결 등이 담겼다. 자전적 에세이와 자기계발서를 겸한 책이다.
안 대표는 광주 학강초, 조대여중, 광주여상, 광주여대를 졸업했으며 전 전남도립대 겸임교수, 기독교대안학교 교감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평생교육아카데미 수석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광주 출신인 안 대표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며, 몸도 약했다. 선천적으로 적혈구가 다른 사람보다 현저히 부족해 만성적인 빈혈에 시달리고 있다. 앉아만 있어도 어지럼증이 생기며, 병원에서는 평생 누워있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가정에서 엄마가 아픈 게 얼마나 괴로운 건지 잘 알죠. 그래서 더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제 자신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내일 죽어도 할 일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죠.”
결혼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남편은 앓는 안 대표와 매일같이 싸웠고, 하루에 2병 반씩 술을 마시는 등 피폐해졌다.
지난 2003년 안 대표는 미용기능장을 취득한 뒤 100여평 미용실을 열고, 전남도립대 교수로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멀리 이사를 가 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루아침에 홀로 남겨지고 만 것이다.
“삶의 의욕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교수도 그만두고, 가게도 닫았어요. 세상을 등질 생각도 했지만, 그 소식을 접할 아이 걱정에 죽을 수도 없었죠.”
아이에게서는 대학 등록금이나 입원비를 내 달라는 등 가끔씩 연락이 왔다. 이전에 벌었던 돈에서 떼어 송금을 해 주는 나날이 반복됐다. 지난 2017년께 아이가 거금이 드는 양악 수술을 앞두자, 텅 빈 잔고를 보고 안 대표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대로 돈을 소진해버리면, 전 아이에게 짐이 될 뿐이었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어요. 몸이 안 좋아 노동은 힘드니까, 떠드는 일과 책 읽고 쓰는 일이 어울렸죠. 2018년, 60세도 넘은 나이에 강사로서 다시 세상에 나섰습니다.”
안 대표는 밤낮으로 공부에 매진했다. 사회복지사, 한국어교원(2급), 인성심리상담사, 노후준비전문강사 등 자격증 공부에도 박차를 가했다. 안 대표에 따르면 그는 벌써 100여개가 넘는 자격증을 땄다. 회당 5만원을 받으며 시작한 강사 활동은 어느새 회당 수십만원으로 뛰고, 앙코르 요청은 물론 회사 전체 강의도 맡게 됐다.
“소통 강의와 인성교육 등을 주로 합니다. 지금은 행복누리연구소를 열고 강사 양성도 하고 있어요. 줌(zoom) 등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활용한 원격 강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돈 없어 서러웠던 지난 삶을 이겨내보자는 마음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어요.”
꿈도 생겼다. 원격 강연을 하는 강사들이 서울·경상·충청에 몰려 있는 현실을 극복하고 싶다는 것.
안 대표는 “우리 지역에서도 ‘디지털 노마드’(인터넷 세상에서 시공간 제약 없이 일을 하는 사람)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가 되고 싶다”며 “디지털 세계에 익숙한 광주·전남 청년들은 더 잘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책에는 안 대표의 인생 굴곡과 강사로서 제2의 삶을 시작한 스토리, 좋은 강사가 되는 비결 등이 담겼다. 자전적 에세이와 자기계발서를 겸한 책이다.
광주 출신인 안 대표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며, 몸도 약했다. 선천적으로 적혈구가 다른 사람보다 현저히 부족해 만성적인 빈혈에 시달리고 있다. 앉아만 있어도 어지럼증이 생기며, 병원에서는 평생 누워있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가정에서 엄마가 아픈 게 얼마나 괴로운 건지 잘 알죠. 그래서 더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제 자신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내일 죽어도 할 일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죠.”
지난 2003년 안 대표는 미용기능장을 취득한 뒤 100여평 미용실을 열고, 전남도립대 교수로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난데없이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멀리 이사를 가 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루아침에 홀로 남겨지고 만 것이다.
“삶의 의욕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교수도 그만두고, 가게도 닫았어요. 세상을 등질 생각도 했지만, 그 소식을 접할 아이 걱정에 죽을 수도 없었죠.”
아이에게서는 대학 등록금이나 입원비를 내 달라는 등 가끔씩 연락이 왔다. 이전에 벌었던 돈에서 떼어 송금을 해 주는 나날이 반복됐다. 지난 2017년께 아이가 거금이 드는 양악 수술을 앞두자, 텅 빈 잔고를 보고 안 대표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대로 돈을 소진해버리면, 전 아이에게 짐이 될 뿐이었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어요. 몸이 안 좋아 노동은 힘드니까, 떠드는 일과 책 읽고 쓰는 일이 어울렸죠. 2018년, 60세도 넘은 나이에 강사로서 다시 세상에 나섰습니다.”
안 대표는 밤낮으로 공부에 매진했다. 사회복지사, 한국어교원(2급), 인성심리상담사, 노후준비전문강사 등 자격증 공부에도 박차를 가했다. 안 대표에 따르면 그는 벌써 100여개가 넘는 자격증을 땄다. 회당 5만원을 받으며 시작한 강사 활동은 어느새 회당 수십만원으로 뛰고, 앙코르 요청은 물론 회사 전체 강의도 맡게 됐다.
“소통 강의와 인성교육 등을 주로 합니다. 지금은 행복누리연구소를 열고 강사 양성도 하고 있어요. 줌(zoom) 등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활용한 원격 강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돈 없어 서러웠던 지난 삶을 이겨내보자는 마음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어요.”
꿈도 생겼다. 원격 강연을 하는 강사들이 서울·경상·충청에 몰려 있는 현실을 극복하고 싶다는 것.
안 대표는 “우리 지역에서도 ‘디지털 노마드’(인터넷 세상에서 시공간 제약 없이 일을 하는 사람)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가 되고 싶다”며 “디지털 세계에 익숙한 광주·전남 청년들은 더 잘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