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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야 보이는 풍경-고성혁 시인
2021년 10월 20일(수) 06:00
고성혁 시인
‘인간 극장’에서 봤다. 6년차 33세의 농부였는데 아내, 갓 태어난 아이와 함께 외딴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농약은 물론 농기계도, 비료도 없이 자신의 방식대로 농사를 지었다. 수로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규칙대로 도랑을 파던 그 사람은 자신의 방식을 우공이산(愚公移山)으로 설명했다. “내가 못하면 자식이 하고 자식이 못하면 손자가 대를 이어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자신이 경작하는 밭을 우공이산의 태행(太行)밭과 왕옥(王屋)밭이라고 부르며 날마다 땅을 팠다. 그의 스스럼없이 웃는 모습에 주변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생각건대 그는 실천하는 철학자였다. 그런 남편의 모습이 아기 눈 속에 또렷이 저장될 것이라고 말하는 젊은 아내를 보면서는 시대를 거슬러 오르는 듯한 경외감을 느꼈다.

때마침 우리 산골 옆집을 매입한 양반도 집터를 다지기 위해 경계 측량을 하고 있었다. 그 결과 짜기라도 한 듯 우리 마당 일부가 실은 그분 땅이고, 우리 텃밭의 일부를 그분 담장이 차지한 것으로 나왔다. 문득 그 젊은 철학자로부터 얻은 삶의 방식을 실천해 보고 싶어 그 새로운 경계에 하심(下心)과 정성으로 돌담을 쌓기로 했다. 길이는 대략 2m 정도. 비 오는 날 땀 흘리며 물길을 내던 그 젊은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주변의 허물어진 담벼락과 개천 바닥에서 며칠 동안이나 땡볕과 싸우며 돌들을 주워 모았다. 그리고 어깃장을 놓듯 가로로 큰 돌들을 쌓아 올리고 작은 돌멩이들을 중간의 빈틈에 밀어 넣었다. 모든 형태의 돌들은 제 생긴 모양대로 쓸모가 있었다. 공간에 따라 둥근 것은 둥근 대로, 네모난 건 네모난 대로, 길쭉한 돌은 길쭉한 대로. 모난 돌들도 모난 틈을 이용해 아귀를 맞추면 훌륭하게 모양을 내주었다.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다는 진실을 새기는 동안 일은 조금씩 진척되었고 드디어 우리 부부는 그 일을 마무리 지었다.

끝내고 멀리 서 우리 손으로 쌓아 올린 돌담을 보며 느꼈던 열락이라니. 일어서야 비로소 풍경이 보인다는 말, 이런 뜻이었을까. 사진을 찍고 손뼉을 치며 우리의 거사를 자축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외출했다. 그러나 외출에서 돌아온 우리는 뜻밖에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돌담의 돌들이 듬성듬성 빠져 영락없는 써레 이빨이었다. 터 닦기 공사가 한창인 옆집을 살펴봤다.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막 레미콘을 부어놓은 듯했는데 그 위 양생을 위해 덮은 비닐을 고정하고 있는 돌들이 아무래도 눈에 익었다. 돌 하나하나, 용도에 맞춰 고른 사람이 나였으니 그 돌들은 내가 가져온 게 분명했다.

대번에 속이 상한 나는 일하는 인부들에게 이 돌들이 왜 여기 있느냐고 따졌다. 한 사람이 어리벙벙해 나를 보더니 다른 사람을 통해 무슨 말인가 알아듣고는 당황한 채 멀찍이 서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추레한 작업복에 검게 탄, 키 작은 그 외국인에게 왜 당신 마음대로 남의 돌담을 망가뜨렸냐고 소리를 높였다. 그 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사람은 머뭇머뭇 양생이 끝나면 본래의 돌담 위에 올려놓을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나라가 다르니 문화도 다를 수밖에. 그의 말을 들으며 성마른 내가 또 우를 범한 것을 깨달았다.

내 고향 섬에서는 장례를 치르면서 죽은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함께 부대꼈던 이승에서의 삶을 추억하고 새로운 세상으로의 출발을 환송하는 것이다. 문득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섬을 방문했던 직장 동료들이 장구를 치며 노래 부르던 광경을 보고 놀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사과했지만 그이는 이미 상처를 받은 얼굴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필요한대로 들고 나는 물건이 아니니 당연한 게 아닌가.

밴댕이 같은 소갈머리. 그깟 돌덩이 몇 개에 심상한 내가 실망스러웠다. 그게 나의 방식이었다. 그들의 나라에서는 네 것 내 것 없이 가져다 쓰고 그 자리에 되돌려 주곤 한다고 했다. 돌담을 쌓겠다고 결심하며 새겼던 젊은 철학자의 경구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 외국인 근로자의 치열한 삶에 반의반도 미치지 못하면서 나는 왜 잦은 분노로 주변을 아프게 하는 걸까. 반성하는 게 인간이라지만 간데없이 이어지는 미숙함으로 나의 심연 또한 깊이 가라앉고 말았다. 부디 그 근로자가 원하는 꿈을 이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그 젊은 철학자의 성찰 또한 웅숭깊어져 이 사바세계의 어리석음이 썰물처럼 사라질 수 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