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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과 공유 - 황성호 신부
2021년 09월 30일(목) 23:10
황성호 신부,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독점과 공유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단어들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엄청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또 그 가능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많다. 독점과 공유의 가능성은 거시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분열시키기도 하고 우리의 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시키기도 한다. 또한 독점과 공유는 불평등을 만들기도 하고 모두에게 공평한 삶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우리의 존재가 이 독점과 공유를 통해 차별받기도 하고 존중받기도 한다. 독점과 공유는 미시적으로, 개인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자기 삶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는 너무나도 다를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어떤 정보나 물건의 독점은 이기적인 개인의 이익 추구처럼 쾌락으로 끝나버리지만, 공유는 분배와 공동선의 실현으로 그 가치를 더 확장시킨다. 독점은 불로소득을 통해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분열과 차별의 폭력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공유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희망의 사회, 곧 통합된 사회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혹자는 ‘다 부자일 수 없고, 다 가난할 수도 없다’라고 말하며 다 똑같을 수 없다는 논리로 독점이라는 쉬운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은 서로를 살리는 공유가 답이며, 중요한 것은 어떻게 공유할 것이며 어떻게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공유를 실현할 것인가이다.

마르코 복음 9장 38절에서 제자들이 예수께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고 말씀하셨다.

권한을 받았던 제자들이 해야 할 사명은 이 모든 것을 무상으로 받았으니 무상으로 주라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들만의 전유물인양 권한을 독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스승이신 예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데,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독점이 아닌 공유를 위해 자신을 버린 것이다. 그래서 자주 예수는 제자들에게 탐욕을 경계하고, 공유하지 않고 독점하여 자신의 힘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자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라는 말을 하면서 예수로부터 받았던 그 모든 권한을 공유하지 않고 독점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누가 더 높은지에 대한 제자들의 다툼에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결국 독점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야심과 탐욕이 그 뿌리에 자리하고 있어 불평등과 차별 그리고 폭력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공유는 우리가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보편적 성장을 위한 기회를 서로에게 열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독점을 통해 얻으려는 인생의 단편적 쾌락에 주저앉지 말고 공유를 통해 후회하지 않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더 나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 안에서 수많은 교훈을 얻었다. 종교 개혁, 시민 혁명, 세계 전쟁에서 독점과 공유의 사이를 오가며 겪어야 했던 고통과 죽음의 역사에서 결코 독점이 아닌 공유야 말로 우리를 서로 살리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껴 왔었다. 독점과 공유의 결과는 분명하다. 독점의 결과는 서로의 삶을 파멸할 것이고 공유의 결과는 서로의 삶을 보호하고 창조 질서를 이어갈 것이다. 그런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부분에서 독점을 향한 기득권의 폭력은 여전하고, 이러한 독점에 의해 발생되는 폭력과 차별을 막기 위하여 공유하려는 사람들의 정의로운 싸움은 여전하다. 그래서 독점과 공유의 싸움은 아직도 진행형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싸움에서 어느 쪽에 내 삶의 가치관을 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