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된 지 17일 만에…버스기사 죽음 내몬 ‘갑의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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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된 지 17일 만에…버스기사 죽음 내몬 ‘갑의 횡포’
회사측 교통사고 피해보상 책임 요구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
“대출 받아 동료기사에 돈 줬다” 녹취록 확보…동료·간부는 부인
2021년 06월 23일(수) 00:00
시내버스 운행중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보상 책임을 감당하는 문제로 힘들어하던 시내버스 기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토록 바라던 정규직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됐지만 회사측의 부당한 요구를 버텨내지 못했다는 게 유족들 하소연이다.

해당 시내버스 기사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 회사 간부에게 돈을 건넸고 운행중 발생한 교통사고 피해보상 책임까지 떠안아야 하는 등 심적 부담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회사측이 ‘갑(甲)의 횡포’를 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노동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22일 광주서부경찰에 따르면 광주 모 시내버스 기사 A씨는 지난 18일 오후 나주시 남평읍 한 모텔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A씨는 회사측의 부당한 요구에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휴대전화 속 메모장에는 “미안해, 힘들어서 못 하겠어,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 여보 정말 사랑합니다.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습니다”라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A씨의 부인은 “그렇게 바라던 정규직 기사가 됐는데…”라며 “남편이 너무 불쌍하다”고 한탄했다.

A씨는 버스회사에 입사한 지 2년 만인 지난 2일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고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것에 비해 급여도 더 받을 수 있는데다, 중형버스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점에서 정규직 기사가 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했다는 게 유족들 얘기다. 중형버스의 경우 좁은 골목길을 지나다니며 운행 거리도 길어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A씨는 그토록 꿈꾸던 정규직 기사로 전환됐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A씨는 정규직 버스기사가 된 지 17일 만에 삶을 등져야 했다.

유족들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카드로 대출까지 받아 회사 간부에게 줬고 운행 중 발생한 교통사고를 스스로 책임져야하는 상황에 몰리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했다”고 했다.

A씨와 부인의 통화 내역에는 A씨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이들 부부 간 통화에는 “돈 있어?”,“없지 왜?”,“정규직이 되려면 350만원이 필요하다는데…”, “대출받아야지, 그런데 그걸 주면 정규직이 될 수 있어?”,“다들 그렇게 한데….”라는 통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A씨는 이후 350만원을 카드로 대출받았고 정규직 회사 동료기사 B씨를 통해 간부 C씨에게 전달했다는 게 유족들 주장이다.

A씨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에는 B씨와 나눈 대화도 담겨 있다. A씨가 “300만원을 나눠 갖는 건가요”라고 묻자 B씨는 “혼자 다 갖지는 않지, 내가 회사 발전기금이라 안했냐”고 말한 대화가 담겨 있다. A씨가 “300만원 돌려준다고 해도 다시 갖고 오지 마요. 나는 이제 모르는 일”이라고 하자 B씨는 “누가 물어보면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하면서 모른 척 해”라고 나눈 대화 내용도 들어있다. B씨가 “(돈)밀어 넣었다. 계속 끝까지 안받겠다고 해, 내가 술 도 많이 먹었고 (결국) 돈 넣어 놓고 왔다”는 대화도 담겨있다.

A씨는 이후 5월 11일 회사로부터 정규직 전환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B씨와 C씨는 이같은 내용에 대해 “사실 무근”, “전혀 알지 못한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거나 돈을 받아 건넨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시내버스 회사의 사고 처리 떠넘기기 행태에 대한 고민도 담겨있다. A씨는 버스 운행 중 지난 10일과 11일 3차례의 교통사고를 냈다. 두 차례는 차고지, 한 차례는 운행 중 정차중인 차량을 들이받았다.

회사측은 A씨의 사고를 모두 회사 보험으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 발생 직후인 지난 11일 A씨가 동료기사와 통화한 내용은 달랐다.

A씨는 이날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교통사고가 났다. 회사에서 해결하라고 하네, 합의금 명목으로 300만원을 주기로 했고 승객에게는 20만원을 주기로 했다”고 말한 내용이 담겨 있다. 노동계에서는 시내버스 운송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고질적인 사고처리 떠넘기기 행태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광석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 광주·전남지부장은 “광주지역 일부 운수회사에서 입사시 또는 정규직 전환시 돈을 요구해 이를 받은 임원이 해고 되거나 운수회사관계자가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된 경우가 있었다”면서 “광주시도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회사 경영상의 문제라 관여할 수 없다고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지역 비정규직 버스기사는 804명으로 전체(2468명)의 32.57%에 달한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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