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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역사를 희망으로 채운 동명동의 시간
[문화로 피어나는 광주 동명동]
읍성 동문 밖 주거지로 형성
문화공간·카페거리·푸른 길 등 교차
독특한 인문·향토자산 찾는 탐방객 발길
2021년 03월 02일(화) 00:00
광주시 동구 동명동이 문화마을로 변화하고 있다. 오랜 시간 마을이 축적하고 품어온 시간과 역사를 바탕으로 카페와 식당, 공방, 동네책방 등 개성 있는 공간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동리단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동명동의 인문 문화자산들을 돌아보고, 동구청에서 추진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살펴본다.



◇시간의 역사 켜켜이 쌓인 골목길=“동명동은 광주읍성 동문(서원문) 밖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동밖에’, ‘동문외리’(東門外里), 또는 동계천 가에 있다해서 ‘동계리’(東溪里)라고 불렸습니다.”

광주시 동구 ‘동명동애(愛) 마을해설사로(路) 동명알음단’으로 활동하는 박종윤·김영희(65) 부부의 설명이다.현재 동명동 일대에 남겨진 일제 강점기 흔적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동명동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인문·향토자산은 광주를 찾는 탐방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부부 마을해설사와 동행해 걸어서 동명호텔 옛터→경열사 옛터→옛 금호문화회관→전남도 공립 사범학교 터(현 중앙도서관)→고택(박옥수 가옥)→농장다리→동밖에 마실골목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동명호텔은 광주 최초의 호텔이었습니다. 해방 이후에 광주를 방문한 귀빈들은 이곳에서 묵었습니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 1960년 장면 박사도 이곳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동명호텔 옛터(동구 동명로 14번길 9)에는 5층 높이의 금석 그린빌라가 자리하고 있다. 부지 오른편에 세워진 ‘동명호텔 옛터’라는 작은 표지판만이 과거를 대변하는 듯하다. 동명호텔 건립자는 일제 강점기에 현 황금주차빌딩 자리에서 요릿집 ‘춘목암’(春木庵)을 운영해 부를 축적했던 사업가 조성순이었다. 그는 1940년 동명동에 한옥과 양옥 스타일을 섞은 개인주택을 신축했는데 해방된 후 주택을 수리해 호텔을 열었다. 그러나 광주 시내에 현대식 호텔이 들어서면서 동명호텔은 결국 문을 닫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경열사(景烈祠) 옛터(동명로 14번길 19-4)는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려 말 정지(1347~1391) 장군을 기리던 사당이 있었던 장소다. 사당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1871년 헐렸는데 1893년 그 자리에 유허비(遺墟碑)가 세워졌다. 정지장군 유적보존회에서 발 벗고 나서 1981년 장군의 묘소가 있는 망월동에 사당을 복원했다.

옛 금호문화회관
옛 금호문화회관(동명로 20번길 17)은 본래 화천기공 설립자인 고(故) 권승관 회장이 1970년대 초반에 지은 개인주택이다. 그런데 호화주택이라며 허가가 나지 않으면서 금호그룹에 매각돼 월간 ‘금호문화’ 편집실과 문화공연장 등 문화공간으로 활용됐다. 2001년 금호그룹의 경영악화로 다시 일신건설에 매각돼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옥 추녀의 곡선미가 절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5·18 민중항쟁을 소재로 지난 2012년 개봉한 영화 ‘26년’(감독 조근현)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동명동 고택
◇다양한 건축양식 적용한 고택 활용 기대= “여기 대문을 보세요. 얼마나 아름답나요!”

김영희 마을해설사가 옛 금호문화회관 인근에 자리한 한 개인주택 앞에서 손짓을 한다. 대문이 예쁜 집으로 유명하단다. 일명 ‘꽃바람 대문’이다. 조광석 조각가가 디자인한 대문은 나무를 세로로 켠 형태를 그대로 살렸는데 투박한 듯 하면서도 조형적이다. 특히 담장너머로 가지를 뻗은 은목서·금목서가 이채롭다. 꽃이 만발하는 늦가을이면 꽃향기가 온동네에 퍼진다고 한다.

동명동 주택가를 도보로 투어할 때 눈길을 끄는 것은 근사한 집집마다 정성들여 가꾼 나무들의 존재다. 높은 담장 너머로 머리를 내민 은목서와 향나무, 소나무, 감나무, 석류나무, 종려나무 등 수종도 다채롭다. 특히 ‘여행자 플랫폼 오아시타’(동명로 20번길 20)와 ‘꽃이 있는 향기로운 집 희재가’(喜才家·동명로 20번길 5)는 정원이 아름답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광주 중앙도서관(장동로 23-16) 입구 화단에는 ‘전라남도 공립 사범학교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당시 일제에 의해 폐교된 이유는 전남 공립 사범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광주 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전남사범학교 비밀결사 모임인 ‘독서회’에서 활동한 회원 25명이 투옥됐고, 38명이 퇴학당했다. 그 가운데 독립운동가이자 인권변호사인 이덕우(1911~1950)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광주형무소에 갇혀서도 틈틈이 법을 공부했고 27세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항일운동가와 노동·농민 운동가들을 변호했다.

어느새 ‘카페의 거리’를 거쳐 ‘박옥수 가옥’(동계천로 168-5)에 이르렀다. 지난해 초 동구청에서 매입한 후 ‘보존이냐, 철거냐’ 논쟁을 불러일으킨 고택이다. 광주 서석교회(옛 동명여중 터) 동쪽 주차장 모퉁이, 창억떡집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외부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왼편은 경사진 뾰족지붕을 한 서양풍 건물이고, 오른편은 겉보기에 전통 한옥인데 기와와 창문 등은 일본식으로 마무리를 했다. 자칫 철거될 뻔했던 화양식(和洋式·일본과 서양의 건축양식을 혼합한 건물) 고택이 앞으로 리모델링을 거친 후 어떻게 ‘건축학적 가치’를 보존하면서 동명동의 정체성을 살리는 문화자산으로 활용될지 기대를 모은다.



동밖에 마실골목
◇정겨운 벽화 장식된 ‘동밖에 마실골목’= “농장다리는 광주교도소 모범수들이 교도소 농장(현 법원자리)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오갈 때 건너던 다리입니다. 복역수와 주민들 간에 농작물과 담배를 교환하는 밀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고택을 나서면 폐선된 경전선 철길을 이용해 만든 ‘푸른 길’로 곧장 이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폐선부지 공원인 ‘푸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농장다리’에 닿는다. 남광주역과 광주역을 연결하던 옛 경전선을 가로지르는 동지교(東芝橋)는 제 이름 대신 ‘농장다리’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현재 ‘광주폴리Ⅰ-푸른 길 문화쉼터’(작가 승효상)로 조성돼 있다.

‘농장다리’에서 얼마안가면 ‘동밖에 마실골목’이다. 골목길에는 ‘행복한 창조마을 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조성한 9개의 ‘스토리 벽화’와 9개의 ‘환경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아빠 닭이 차를 막는 동안 엄마 닭이 병아리들을 데리고 길을 건너 나들이를 한다는 실제 이야기를 담은 ‘수탉가족’을 비롯해 제기차기·공기놀이 벽화 등이 이어진다. 현재 사용하지 않는 마을우물 터에는 당시의 우물가 정경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특히 재봉질하는 어머니를 묘사한 ‘재봉틀 벽화’앞에서 절로 발걸음이 멈춰진다. ‘조각보처럼 가족을 이어주던 어머니’라는 문구가 정겹다.

좁은 골목길은 ‘대한민국 미용명장 1호’인 김진숙 원장이 운영하는 ‘한울이 미용실’과 동네책방 ‘심가네 박씨’가 자리한 동명로 67번길로 이어진다. 광주역이 현재 동부소방서 자리에 있던 시절, 광주역~남광주역을 오가던 경전선 철길이 놓였던 자리다. 그 길은 대인시장앞 계림오거리로 연결되는데 과거에 송정리역에서 광주 역을 거쳐 담양으로 가던 광주선(1944년 폐지)과 경전선(1969년 이설)의 분기점이었다. 나무꾼들이 땔감을 팔던 ‘나무전 거리’는 문짝거리로 변했지만 여전히 나무와의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동밖에 마을’, 동명동 골목마다 근대기에서 오늘에 이르는 장구한 시간이 만들어낸 나이테가 겹겹이 쌓여있다. 여기에 카페와 식당, 공방 등 청년세대의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적이고, 새로운 공간이 창출되고 있다. 오늘도 동명동 인문·문화의 꽃망울은 계속 피어난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