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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재앙의 시작
2020년 09월 15일(화) 00:00
임혁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4년
한 해 동안 사용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대략 33억 개로 추산된다. 이것을 하나 둘 쌓다 보면 지구에서 달까지 닿을 정도로 높이 쌓을 수 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건 33억 개가 전 세계서 소비되는 양이 아니라 오직 한국 내에서만 소비되는 양이라는 것이다. 5천만 인구가 매년 66개의 플라스틱 컵을 소비하고 있다.

몇 개월 전 텀블러를 하나 구입했다. 대개의 일이 그렇듯 텀블러 구입 계기는 단순했다. 게으른 성격 탓에 다 마신 플라스틱 커피 잔을 독서실 책상 위에 올려 두곤 했다. 그렇게 하나 둘 쌓이는 커피 잔들이 마치 출석 도장처럼 보여 아예 본격적으로 모았다. 쌓아 놓은 도장이 오히려 공부를 방해하게 돼서야 그것들을 버리게 되었다. 커피 잔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온갖 브랜드가 적힌 플라스틱 컵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매일 아침 쓰레기통을 비우는 분들의 수고스러움에도 이 만큼의 플라스틱이 매일 쌓인다고 생각하니 출석 도장 같던 컵들이 부끄러웠다. 나는 고작 두 달 사이에 앉은키를 넘길 정도로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고 있었다.

내 딴에는 플라스틱 컵을 조금이나마 줄이겠다고 열심히 텀블러를 들고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찮게 길바닥에 버려진 마스크들이 눈에 들어왔다. 커피가 우리의 주식이 된 것처럼 상의나 하의같이 취급된 것이 마스크인지라 신기할 게 하나 없었다. 그럼에도 길바닥에 버려진 마스크는 꽤나 이질적이었다. 분명 길 위의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집에 들어갈 때까지 벗지 않을 텐데 도대체 누가 그렇게 많은 마스크들을 바닥에 버리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 마스크들이 어디서 왔는지가 무에 중요하겠냐마는 걱정이 되는 건 몇 번의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갔다는 것이다. 태풍이 불면 분명 거리 위 쓰레기들, 특히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가벼운 일회용 마스크는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산이고 바다에 안착한다. 실제로 전 세계서 일회용 마스크가 매월 1290억 개씩 버려지고 있고, 그중 상당수가 바다를 떠다니고 있다. 영국의 연구진들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된다면 위생 장갑이나 일회용 마스크 사용이 증가하면서 작년 대비 6만t 이상의 플라스틱(일회용) 쓰레기가 늘어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바다에 떠다니는 마스크의 모습은 해양 생물뿐 아니라 해파리와 착각할 정도로 그 모양새가 유사하다. 즉 마스크의 바다 유입은 해양 생물들의 생명을 노리는 새로운 위협이 될 것이다. 작년 6월 해양수산부는 수족관에서 전시용으로 사육되고 있는 국제 보호종 붉은 바다거북을 제주 앞바다에 방류했다. 그 붉은바다거북이 다시 발견된 곳은 방류한 날로부터 11일이 지난 부산 앞바다였다. 40㎝ 남짓한 몸에 220여 개의 플라스틱 조각을 품고 죽은 채 말이다. 버려지는 일회용 마스크가 늘어날수록 부산 앞바다에서 죽어간 붉은바다거북들은 더 늘어날 우려가 있다.

이제는 주식이 되어버린 커피를 하루아침에 포기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생명과 직결된 마스크 사용을 줄이는 건 더 더욱 어렵다. 하지만 한 명이 갖고 있는 텀블러 하나가 잠재적으로 매년 66개의 플라스틱 컵을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일회용 마스크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면 마스크는 일회용 마스크의 좋은 대체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발표한 필터 장착 수제 마스크와 보건용 마스크의 방역 효과를 비교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정전기 필터가 장착 가능한 이중 수제 면 마스크 경우 KF80 보건용 마스크와 비슷한 방역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누군가의 편의를 위한 플라스틱 컵과 서로의 생명을 위한 마스크가 어딘가의 다른 생명을 불편하게 만들고 나아가 생명까지 위협하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터스텔라’의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대사처럼 코로나19 극복과 더불어 모든 생명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