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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장준, 금군 남침 막은 남송의 4대 명장
2020년 06월 16일(화) 00:00
<초당대총장>
장준(張俊, 1086~1154)의 자는 백영(伯英)으로 현 간쑤성 성기 출신이다. 악비, 한세충, 한기와 함께 남송의 4대 명장으로 평가된다. 악비 처형에 관련되어 명성에 큰 오점을 남겼다.

마술과 궁술에 뛰어나 16세에 삼양궁전수가 되었다. 금군의 남침으로 북송의 수도 개봉이 함락되고 북송 왕조가 붕괴되는 정강의 난이 일어났다. 강왕 조구 아래서 근왕군에 참여했다. 강왕에게 개봉으로 돌아오라는 비밀서한이 도착하자 그에게 대책을 물었다. 그는 답하기를 “이는 오랑캐들의 속임수입니다. 지금 왕께서 바깥에 계신데 이는 하늘이 내린 행운입니다. 가서 저들에게 붙잡혀서야 되겠습니까?” 개봉이 함락되자 조왕에게 황제 등극을 권했다. 눈물을 흘리며 거절하자 거듭 주장하기를 “왕께서는 황제의 친동생이시고 민심이 우러러 봅니다. 빨리 허락하지 않으시면 어떻게 천하의 뜻에 부응할 수 있겠습니까?” 응천부에서 즉위하니 남송 고종이다.

1129년 명주(明州)를 지키고 있는데 금군이 침공했다. 명주 전투는 고종이 해상을 통해 남으로 피신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금군의 남하를 저지한 중요한 전투였다. “황제께서 바다로 피난 중이시다. 앞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큰 상을 줄 것이고 나아가지 않는 자는 용서치 않겠다”는 불퇴전의 각오로 싸움을 독려해 승리했다. 강회토초사로 임명되어 반란을 일으킨 이성 토벌에 참여했다. “장준의 군대가 매우 기강이 엄정합니다”라는 보고를 받자 고종이 말하기를 “장준은 심성이 충성스럽지만 관직을 탐하는 결점이 있소. 반드시 이를 고려해 기용해야 하오” 고종이 일찍부터 장준의 탐욕을 경계했음을 알 수 있다.

일선 근무를 마치고 건강으로 돌아와 고종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동료 장군 유광세가 유유자적하며 신선처럼 산다고 부러워했다. 고종이 말하기를 “지금은 부귀가 넘칠 정도인데 이것이 다 어디에서 왔소?” “모두 폐하께서 내려주신 겁니다” 고종이 재차 말하기를 “경이 그것을 안다면 마땅히 은혜에 보답할 생각을 해야지 어찌 유광세를 부러워하오” 장준이 눈물을 흘리며 죽음으로 보답하겠다고 맹세했다. 소흥 10년(1140) 금이 남송간의 화의를 무시하고 다시 남침하였다. 그는 안휘성 숙주와 박주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부장인 왕덕의 지모와 용맹이 큰 힘이 되었다.

입조해 황제 고종을 알현하자 황제는 당나라 안사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곽자의전(郭子儀傳)을 읽어 보았는지 하문했다. 잘 알지 못한다고 답하자 고종이 말하기를 “경이 곽자의처럼 조정을 받든다면 그대 자신과 자손들이 곽자의처럼 번성할 것이오. 만약 군대의 힘을 믿고 조정을 무시하면 자손들이 복을 누리지 못하고 그대 또한 화를 입을 것이오. 이를 명심하시오.”

금군과의 싸움에서 여러번 승리하여 군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금군과의 순창 싸움에서 유기가 대승하자 전공을 시기해 불편한 사이가 되었다. 또한 맹장 악비와도 여러번 군략을 둘러싼 이견으로 사이가 나빠졌다. 악비가 여러번 편지를 보내 겸양의 뜻을 나타냈지만 틀어진 사이가 회복되지 않았다.

재상 진회는 군권을 견제하기 위해 한세충, 악비, 장준에게 추밀원 관직을 주는 대신 군권을 회수토록 하였다. 그는 추밀사에 임명되었다. 진화와 뜻을 같이해 대금 화의를 지지한 장준은 스스로 먼저 휘하의 군대 통솔권을 조정에 바쳤다. 상주하여 “신은 이미 추밀원에 와서 업무를 보고 있으니 과거 신이 관할하던 군대를 모두 조정에 귀속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악비를 제거하기 위해 악비의 부장인 왕귀와 왕준을 꼬드겨 악비가 군권을 다시 장악하려 한다는 음모를 꾸몄다. 모진 고문을 가해 악비와 그의 아들 악운, 부장 장헌의 자백을 받아냈다. 1141년 악비는 사형에 처해졌고 재산은 몰수되었다. 유족은 지방에 유배되었다. 추밀사의 직위에서 물러날 뜻을 보이지 않자 재상 진회는 장준의 퇴직을 추진하였으나 고종이 불허하였다. 관리들이 계속 장준의 허물을 공격하자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1142년 삼진절도사로 옮겼고 청하군왕에 봉해졌다. 사후 충열(忠烈)의 시호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