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대전] 도심 속 자연여행, 푸르른 마음풍경
둔산대공원에 자리잡은 한밭수목원
1787종 식물 식재·전시…국내 최대
탄소 저장소 ‘맹그로브’ 식물원 조성
솔바람길·은빛여울길·속삭임길 등
수목원 추천 5개 코스 산책로 인기
2020년 04월 30일(목) 00:00
대전 한밭수목원 동원을 찾은 시민들이 수변데크를 걷고 있다.
나의 이데올로기. 널 생각하면 가슴에 바람이 분다. 수천수만의 나무와 이름 모를 꽃들과 수풀 사이를 헤집고 마침내 불어 닥친다. 분주한 도심 한복판에서 이 청량한 바람이 일기까지 수 십 년 식물의 세월과 견고한 신념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나의 존엄은 너의 웅장한 위엄과 비례한다.

미로처럼 얽힌 길에서 아직 피지 않은 장미와 전설을 품은 소나무를 만나고 단풍나무는 수줍은 듯 가지를 늘어뜨린다. 하늘 향해 쭉 뻗은 졸참나무와 바람에 흐느끼는 버드나무는 빛깔 고운 원추리와 돌단풍, 가지복수초, 깽깽이풀, 노랑무늬붓꽃을 말없이 품는다. 그 뿌리의 깊이와 원대함을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심장은 뛰고 혈관에 피가 돈다. 좌심실·우심실 같은 너의 동원과 서원에서는 쉴 새 없이 맑은 산소를 내뿜는다. 물고기를 먹이고 키우며 태풍을 막아내는 맹그로브는 너의 너른 품안에서 열대의 꿈을 꾼다. 우리의 이념, 우리의 존엄, 우리의 심장 ‘한밭수목원’은 인위적으로 설계·제작된 가공품에서 본디 그대로의 태곳적 자연으로, 살아 숨 쉬는 원시의 생명체로 부활했다.



한밭수목원은 전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대 규모의 도심 속 수목원으로 유명하다.
◇어디에도 없는 도심속 수목원

대전의 중심 둔산대공원(서구 만년동)에 자리 잡고 있는 한밭수목원은 2000년 수목원 기본·실시계획을 시작으로 2001-2004년 서원, 2005-2009년 동원, 2009-2011년 열대식물원을 조성하는 것으로 10년에 걸친 건립 대장정을 마쳤다.

한밭수목원은 전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대 규모의 도심 속 수목원으로 국·시비 314억 원이 투입됐고 면적은 37만 1466㎡(11만 2000평)에 달한다.

무궁화원, 야생화원, 관목원, 목련원, 암석원 등 24개 주제별로 목본류 1105종, 초본류 682종 모두 1787종의 식물자원을 식재·전시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지구의 탄소 저장소’라고 불리는 맹그로브를 주제로 한 열대식물원도 조성했다.



한밭수목원 내 열대식물원. 맹그로브 주제원과 함께 야자원, 열대화목원, 열대우림원 등을 조성했다. <한밭수목원 제공>
◇대전시민이 지켜낸 한밭수목원

2020년 현재 연간 130만 명 넘는 대전시민들과 관광객이 몰려드는 지역명소로 거듭났지만 한밭수목원이 탄생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2009년 5월 한밭수목원 개원 당시 대전일보 보도를 보면 1980년대 말 대전 둔산지구 개발이 이뤄질 때 99만여㎡의 호수공원 조성계획이 마련됐으나 이후 추진 과정에서 공원 구역이 불과 10만여㎡로 축소되고 나머지는 택지로 변경됐다.

대전일보는 ‘토지공사가 정부대전청사 부지로 대규모 공공부지를 내놓으면서 손실분 보전을 위해 대규모 공원계획을 슬그머니 빠뜨린 것’이란 지적과 함께 특별취재반을 꾸려 집중보도에 들어갔고 시민들은 지역언론의 문제 제기에 응원을 보냈다.

결국 둔산대공원 계획은 지역 여론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56만 9000㎡를 살리는 것으로 결론 났다. 그렇게 되찾은 땅에 1997년 평송청소년문화센터, 1998년 대전시립미술관, 2003년 대전예술의전당, 2007년 이응노미술관 등 문화예술 공간이 속속 들어섰고 한밭수목원은 둔산대공원 조성 역사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한밭수목원 서원 소나무숲길에서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수풀이 속삭이는 한밭수목원 속으로

4월의 수목원은 온통 신록의 물결이다. ‘신록예찬’을 쓴 이양하 선생에게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가 있다면 대전시민에겐 한밭수목원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이 한밭수목원을 한가득 메우고 있다.

한밭수목원 측에서 추천하는 산책로는 5개 코스다.

‘솔바람길’은 동원 바닥분수-대전사랑동산-목련원-소나무원-암석원으로 이어진다. 소나무원에 대전의 시목(市木)인 소나무가 큰 숲을 이뤘다. 시화 백목련도 식재돼 있다. 백목련은 우아하고 품격 높은 시민정신을 상징한다.

‘은빛여울길’(동원 바닥분수-장미원-향기원-수변데크-화목정-수변데크-암석원)은 650m로 40분 정도 걷는다. 크고 작은 바위 사이에 숨은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암석원, 장미가 만발하는 장미원, 정자 화목정은 한밭수목원 방문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장수하늘길’(동원 바닥분수-약용식물원-특산식물원-천연기념물 후계목-식이식물원-암석원)에는 보은 속리 정이품송, 예천 천향리 석송령 등 35개 종목 후계목이 뿌리를 내렸다.

‘푸른숲길’은 소나무숲-침엽수원-참나무숲-서원입구를 잇는 가장 긴 1㎞ 산책로다. 한시간 가량 서원을 둘러가는 길에서 숲속 식물들이 만들어낸 살균성 물질 즉 피톤치드를 마시며 편안한 사색에 빠져 든다.

‘속삭임길’(서원입구-벚나무길-명상의숲-습지원-숲속문고-서측입구)은 30분 코스다. 자기사랑, 자존심, 고결이 꽃말인 수선화 군락, 잎이 지고 꽃이 피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뜻하는 상사화가 발길을 잡는다.

신록예찬에서 이른 대로 가장 연한 것에서 가장 짙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초록을 사랑하는 이라면, 한밭수목원 안내도를 들여다보기 전에 엑스포시민광장 양 옆으로 길을 낸 동원과 서원의 안채로 무작정 들어서길. 그 내밀한 정원 안에선 충남 청양 칠갑산 기슭에서 살다 칠갑저수지 건설로 수몰될 뻔한 소나무의 전설이 내를 이루고 너와집 지붕을 이는 굴참나무가 봄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글·사진=대전일보 문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