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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잎부터 남달랐던’ 봉준호 감독 단편 재조명
‘백색인’ ‘지리멸렬’…
뮤직비디오도 다시 주목
2020년 02월 17일(월) 00:00
오스카 트로피를 든 봉준호 감독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오스카상 4관왕을 휩쓸면서 그가 본격적으로 데뷔하기 전 찍은 단편 영화들도 주목받고 있다.풋풋한 20대 때 찍은 작품이지만 ‘기생충’에서 드러난 주제 의식과 날카로운 사회 인식, 풍자와 유머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떡잎’부터 남달랐음을 보여준다.

봉 감독이 ‘대외적으로’ 첫 단편영화로 꼽는 작품은 ‘백색인’(1993)이다. 연세대 재학 시절 제대 후 친구들과 만든 영화 연합 동아리 ‘노란문’ 활동 당시 연출했다. 주인공은 회사원 W. 출근길 주차장에 떨어져 있던 잘린 검지손가락을 발견한다. 그는 손가락을 주워 가죽으로 된 도장집 안에 넣은 뒤 출근하고 전화 버튼이나 TV 리모컨을 누를 때 사용하는 등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그러다 손가락을 잃은 노동자가 사장을 때려 체포됐다는 TV 뉴스를 본 뒤 다음 날 출근길에 손가락을 개에게 줘버린다.

1995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후 사실상 실업자였던 봉 감독은 제의를 수락하고 시나리오 85%까지 썼지만, 전체적인 구조를 짜는 데는 실패했고, 그 기획 자체도 엎어졌다.

봉 감독의 ‘인생을 바꿔 놓은’ 단편은 ‘지리멸렬’(1994)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으로, 30분짜리 옴니버스 형태다. 대학교수, 신문사 논설위원, 검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지도층’의 위선과 민낯을 풍자적으로 그린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바퀴벌레’. 도색잡지를 즐겨보던 대학교수가 학생에게 자신의 행적을 들키지 않으려 아슬아슬한 추적극을 벌이는 내용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골목 밖으로’)는 새벽마다 조깅하면서 남의 집 앞 우유를 몰래 마신 한 중년 남성 때문에 도둑으로 몰린 신문 배달 소년과 중년 남성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그린다.

세 번째 ‘고통의 밤’은 술에 취해 노상 방뇨를 하려다가 경비원에게 들키는 엘리트 검사 이야기다.

봉 감독이 2003년 선보인 ‘싱크 앤 라이즈’는 한국 영화 아카데미 20주년 기념으로 만든 6분짜리 단편이다. 한강 둔치 매점 주인이 딸과 함께 온 가난한 아버지와 ‘삶은 계란이 물에 뜨는지’를 놓고 내기를 벌이는 내용으로, 영화 ‘괴물’의 실마리가 된 작품이다.

2004년에는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중 한편인 ‘인플루엔자’를 선보였다. 러닝타임 30분짜리 이 영화는 한강 다리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남자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내리막길을 향해 달려가는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풍경을 무심한 CCTV 카메라를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실 이들 단편에 앞서 봉 감독 생애 첫 단편 데뷔작은 애니메이션 ‘룩킹 포 파라다이스’다. 동아리 노란문 활동 때 ‘백색인’보다 먼저 연출했다. 고릴라가 주인공인 20분짜리 인형 애니메이션으로, 아르바이트해서 산 캠코더를 이용해 고릴라 인형을 일일이 움직여가며 촬영했다.

봉 감독은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가수 한영애 팬이던 그는 2003년 ‘살인의 추억’ 이후 그해 9월 한영애 컴백곡 ‘외로운 가로등’ 뮤비 연출을 자청했다.

배우 류승범과 강혜정이 주연을 맡고 김뢰하, 박노식 등이 출연한 이 뮤비는 다양한 커플들이 골목길 가로등 아래서 키스하는 장면들로 이뤄졌는데, 흡연 장면 등이 문제가 돼 방송금지 판정을 받은 ‘비운의 뮤비’이기도 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