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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꿈을 쏘다 <5> 시인 최지안
“고통의 편린 조립이 詩…끝없이 ‘노오력’ 하겠다”
공대생 시절 ‘글아치’ 기획·창간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 최연소 선정
올해 새 창작집 출간 예정
타 장르 예술가들과 협업도
2020년 01월 22일(수) 00:00
“‘노력’은 세태 속에서 ‘노오력’으로 희화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한편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말이기에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정진할 거예요. 언젠가 멋진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에 서면 사랑하는 그들의 이름을, 아주 지루하게 나열할 겁니다.”

최지안 시인(28). 일반에게는 ‘공대생 시인’으로 알려진 그는 현재 대학원 국문과(고려대)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전남대 생물공학과 재학시절, ‘장미 氏, 정오에 피어줄 수 있나요’를 출간해 지역 문단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시에 대한 사유가 깊었다. 시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창작에 대한 관점도 열려 있었다. 그는 “펜을 잡는 동안 한 사람은 거친 세계에 대한 수전증이 잠깐 멎는 것이며 독자는 이 ‘보이지 않는 진동’에 공감해줄 뿐”이라고 했다.

“삶이 나를 밀어낸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시를 썼어요. 혼곤한 삶을 품 안으로 당겨오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 같아요. 시인은 창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위무한다고 생각되지만, 실상은 양방향이죠. 뭐랄까, 시를 통해 가장 위로받는 사람은 시인이며, 그 다음이 독자입니다.”

조금은 앳돼 보이는 인상이지만, 그의 내면에 자리한 시인의 존재는 사뭇 어른스러웠다. 문학 담당 기자가 짜릿한 보람을 맛보는 순간은 기존의 문법과는 다른 작품을 만날 때나, 기성의 문인과는 다른 감성의 글쟁이를 만나는 때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문인들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최 시인은 보석과도 같은 존재다. 그는 자신의 길이라는 확신이 들면 이것저것 재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길을 가는 스타일이었다. 유해 보이는 인상 이면에 드리워진 굳은 심지는 무엇으로부터 연유한 것일까.

“시란 저를 어두운 방에 누워있게 하지만, 동시에 방문을 박차고 나가게 하는 복잡한 ‘정동’이지요. 창작은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저는 자주 어두운 굴속에 들어갑니다. 그 속에서 상상 속 동굴 벽을 손톱으로 긁고 뜯어내면 기어코 벽화 같은 게 나타납니다.”

‘공대생 출신 시인’의 표현과 수사는 일련의 인문학 전공 시인들과는 궤가 달랐다. 아마도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어 사유와 창작이 전개되기 때문인지 몰랐다.

그는 전남대 생물학과 재학 중에 학생문예지 ‘글아치’를 기획, 창간했다. 2018년에는 문화예술위원회와 광주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지역문화예술육성 지원사업’ 공모에 최연소로 선정돼 지원금을 받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문화메세나 프로젝트 일환으로 새 창작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흔히 문학사에서 불안사조의 한 양태로 일컬어지는 퇴폐와 데카당스적 감각”에 초점을 맞춘 시집이라고 한다. 인위적 작풍 속에서 현란한 기교보다 “마음이 기우는 방향으로, 청년예술인으로서 느낀 감정의 수기를 치밀하게 써 온 시집”이라고 정의했다.

생물학 전공자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기에는 적잖은 어려움이 있겠다는 물음에 그는 “주위에서도 이색적으로 본다”며 웃었다. “그저 제가 좋아하는 습작을 지속적으로 했을 뿐”이라는 말에서 창작은 전공과는 무관한 방향과 시선이라는 말이 오버랩됐다.

현재 최 시인은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공부와 창작,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주말에는 마트에서 바코드를 찍는다”는데 더러 “생활과 시의 균형감각을 이뤄가는 것이 지난하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젊은 예술가가 생계와 이상의 균형을 조율하지 않는다면 현실 배반”이라며 “문학으로 세상을 조우하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의 기대와 바람을 외면하는 것은 이상론자”라고 말했다.

확실히 그는 고전적인 시인의 상(像)과는 결이 달랐다. ‘현실과 타협한다’는 그의 말은 자신의 문학적 진로와 작품의 방향을 양보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바쁜 시간이 될 것 같다.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학업을 지속해야 하고 다른 장르 예술가들과 협업도 할 계획이다. 지난해에 이어 작은 서점 지원사업과 연관된 강의도 기회가 되면 다시 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득문득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좋은 시 한편이라도 쓸 수 있다면 밤새 벤치에 앉아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말은 “더 좋은 시인이 된다면 어떤 고통도 감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올해의 계획을 물었더니 다분히 시적인 표현이 돌아온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가 많은 이들에게 의미 있는 시인으로 기억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2020이라는 숫자 자체도 구조적으로 무언가 단단해 보이고, 비릿하지만 강하던 스물의 패기를 두 번 떠올리는 숫자로 다가오거든요. 고통스러운 세계 인식과 미학적 승화는 시인에게 필수불가결한 요인이라고 봅니다. 언제까지나 고통의 편린을 주워다 절실하게 조립한 것이 제게는 시이죠.”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