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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죄할 때까지 남은 생도 쓰렵니다”
[일생 ‘징용 피해자 인권운동’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 유족회장]
1992년부터 일본-한국 80차례 오가며 소송 9건 주도
투쟁 20년만에 지난해 미쓰비시중공업 배상 판결
오늘 세계인권선언 71주년 기념식서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2019년 12월 10일(화) 00:40
“일본의 양심이 움직이도록 여생을 남김없이 쏟겠습니다.”

평생을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 촉구, 그리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운동에 헌신해 온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장 이금주(100) 할머니가 국민훈장을 수상한다.

내년이면 101세가 되는 이 할머니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인권회복 등을 위해 투쟁한 공로를 인정받아 10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인권선언 제 71주년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게 된다.

이 할머니가 태평양전쟁희생자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8년부터다.

일제 강점기 일본 해군에 강제징집된 남편을 잃은 이 할머니는 1988년 6월 항쟁 이후 결성된 태평양전쟁희생자 전국유족회 발족과 함께 주변의 추천을 받아 광주유족회장을 맡았다. 이 때 이 할머니의 나이는 예순 아홉.

이 할머니는 1992년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한 일명 ‘천인소송’을 시작으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일본 외무성 자료 정보공개 등 7건의 소송을 주도했으며, 국내에선 2건의 소송을 진행했다.

물론 소송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 할머니는 난방비도 내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소송 진행을 위해 고령에도 일본을 80여 차례 오갔고, 일본 법원으로부터 17차례나 기각을 당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에서의 연이은 패소에 낙담하는 피해자들을 “이 싸움을 포기해선 안된다”고 다독이며 법정투쟁을 이어갔다. 이 할머니는 회원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밤 이슬을 맞으며 도보행진을 하는 등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고독한 싸움도 지속했다.

2004년 이 할머니와 회원들에게도 한 줄기 빛이 찾아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한일협정 문서가 첫 공개되고 후속조치로 일제 강제동원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되는 등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한 진상규명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29일 대법원은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동원 된 피해자에게 미쓰비시중공업이 손해를 배상하라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1999년 3월 나고야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 지 19년 8개월 만의 일이었다. 주변에서는 이 할머니가 30년간 벌인 투쟁이 대법원 최종 승소 판결의 주춧돌이 됐다고 평가한다.

이 할머니는 전쟁피해자의 유족으로 평생을 한을 안고 살아왔음에도 개인의 아픔보다는 정의실현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피해보상을 위해 앞장섰다.

“남편의 유해가 어디 있는 지도 모릅니다. 가슴에 맺힌 한이 없었다면 저도 이 일을 못했을 거에요. 생의 마지마까지 일본의 양심이 움직이도록 남김 없이 쓰겠습니다.” 순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투병 중인 이 할머니의 다짐이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