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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실체 확인하려면 나주 죽설헌을 보라
내가 사랑한 공간들 - 윤광준 지음
2019년 11월 29일(금) 04:50
한국화가 박태후 작가가 머무는 나주 죽설헌(竹雪軒) 이야기를 또 접한다. 이번엔 책을 통해서다. 죽설헌은 올 초 KBS 신년특집 ‘다큐공감’의 ‘화가의 정원’편에 등장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었다. 1만2000평에 달하는 개인 정원인 죽설헌은 박 화백 혼자 47년간 가꾼 공간이다. 이 곳을 한번이라도 찾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계절 풍경을 모두 눈과 마음에 담고 싶어진다. 사시사철 변화하는 근사한 모습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이번에 ‘죽설헌’을 소개한 이는 사진작가 윤광준이다. ‘생활명품’을 통해 말 그대로 우리 곁에 늘상 존재하는 물건들을 ‘명품’ 대열에 올리고 소개해온, ‘눈 밝은’ 그가 알려주는 공간이니 더 마음이 간다. 그는 “죽설헌의 아름다움은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에서 온다”고 썼다. “당연한 자연의 조화를 제 공간에 펼쳐놓았을 뿐인데 이런 확신의 바탕엔 ‘전문성’이 있다”고도 말한다.

사진작가 윤광준이 신작 ‘내가 사랑한 공간들’을 펴냈다. 부제는 ‘삶의 안목을 높여주는 공간 큐레이션 20’이다. 전작 ‘심미안 수업’을 읽고 강의를 들은 독자들이 그에게 물었다. “아름다움의 실체를 확인하려면 어디로 가야하냐고”. 요즘 핫한 공간들은 검색만 하면 모두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과잉정보의 혼란과 신뢰의 강도가 떨어지면서’ 장소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 장소와 공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건 “우리의 욕망과 해소시킬 능력의 균형을 이제야 맞출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책에는 낡은 여관, 정원이 들어선 지하철역, 폐쇄된 쓰레기 소각장, 클래식 음반 가게, 공장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이 등장한다. 그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돌아볼 만한 곳’을 소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공공성’을 우선으로 두고 장소를 선정했다.

책은 ‘일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공간’, ‘그곳에서 쇼핑을 하면 즐거운 이유’, ‘작품 말고도 볼 것이 많은 예술공간’, ‘개인 취향과 사회 가치가 제대로 구현된 곳’, ‘보고 듣고 먹고 노는 사이 안목은 자란다’ 등 5개 카테고리로 나눠 공간들을 소개했다.

책에서는 쓰레기 소각장에서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부천아트벙커 B39, 낡은 여관 건물과 새 건물이 조화를 이룬 보안 1942, 안도 다다오의 손길이 미친 ‘뮤지엄 산’, 한 사람이 50년간 가꾼 세종시 베어트리 파크, 클래식 마니아들이 사랑하는 롯데 콘서트홀과 풍월당, 동네 분위기를 바꿔버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요리·음악·여행 등 다양한 주제로 운영되는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쇼핑 명소 스타필드등을 만날 수 있다.

또 ‘나의 화장실 순례기’는 어느 공간이든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어야하는 ‘화장실’에 대한 유쾌한 보고서다. 더 나은 사진의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책에 실린 사진은 일부러 모두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독자와 같이 편하게 공간을 즐기는 입장에 서보고 싶어서였다.

<을유문화사·1만69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