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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과 시지프스의 형벌
2019년 11월 29일(금) 04:50
[임형준 순천 빛보라교회 담임목사]
오늘은 세상과 인간의 부조리함을 일평생 탐구해 온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려고 한다.

시지프스는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와 그리스인의 시조인 헬렌 사이에서 태어났다. 시지프스는 엿듣기를 좋아하고 입이 싸고 교활할 뿐 아니라 신들을 우습게 여겨 일찍이 낙인찍힌 존재였다. 신들을 속여 괘씸죄에 걸린 시지프스는 사후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을 선고받았는데, 그에게 주어진 가혹한 형벌은 산기슭에 있는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것이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천천히 바위를 언덕 꼭대기까지 밀고 갔고 그러면 바위는 그의 손을 벗어나 제 무게 만큼의 속도로 사정 없이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린다. 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을 쉬지 않고 반복해야만 했다. 그는 절대로 바위를 언덕 정상 위로 올려놓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영원히 바위를 굴려야 했다. 결코 끝낼 수 없는 일을 영원히 되풀이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바위를 굴려 올려 정상에 가까워지면 그 돌은 다시 굴러 떨어지고 다음날 아침 굴러 떨어진 돌을 다시 밀어 올려야 하는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적 형벌에 대한 이 신화의 이야기는 희망 없는 노동을 반복해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고 매일 반복적인 삶을 살아간다. 바쁘게 오늘과 내일을 들락거리는 무기력한 일상의 밧줄이 모든 사람들을 꽁꽁 묶어 버렸다.

매일 노예처럼 바위를 굴리는 삶의 반복은 형벌이다. 이렇게 길들여진 인간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을 두려워하며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것을 회피한다. 매일 밥벌이에 눈치를 보며 꾸역꾸역 다시 굴러 떨어질 돌을 밀어 올리며 살아간다.

성경에서는 그 이유를 죄 때문이라고 말한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8-19) 맘껏 노래하고 뛰놀았던 자유의 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수고하여야 소산을 얻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간다. 죄로 인하여 자유를 박탈당한 인간의 일상은 노역이며 지옥의 고통이다.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사람마다 무겁고 두꺼운 고집이라는 성벽을 만들어 안정감을 누리고 그 안에서 에덴동산의 회복을 꿈꾼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집의 성벽을 자녀들과 다음 세상에 유산으로 남긴다. 그렇다면 노래가 절규로 변하고 기쁨이 슬픔으로 변해버린 고집스러운 삶을 과연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

자기의 판단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우겨서 습관이 되어 버린 고집과 맞서야 한다. 고집은 어떤 선택이나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절대 가치처럼 군림하며 왕 노릇을 한다.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고집은 생존의 본능처럼 강렬하여 자기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하다. 판에 박힌 생활을 계속 고집한다면 우리의 영혼과 마음은 새장에 갇혀 무기력과 낙담의 모이를 먹으며 쉬지 않고 형벌의 바위를 굴리며 침묵과 외면, 거짓과 속임, 퇴폐와 게으름의 알들을 낳을 것이다. 돌이 떨어진다면 이제 다시는 계곡 밑으로 내려가 돌을 굴려 올리지 않고 삶의 어디에서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음을 보여야 한다.

고집을 물리치면 바위가 멈춘다. 이윽고 우리를 지배하고 통제하던 시지프스의 신화는 파괴되고 자유의 몸으로 꿈과 현실 사이를 넘나들 것이다. 돈과 욕망의 쇠사슬에 묶여 있던 사지가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참 자유는 가치와 인간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이제 심장이 바르게 작동되고 몸이 반응하고 춤을 추고, 입술은 노래하고, 눈이 뜨여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