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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신이 필요하다
2019년 11월 22일(금) 04:50
[황성호 영암 신북성당 주임신부]
우리는 최근 ‘쇄신’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정성을 다해 노력한다는 분골쇄신(粉骨碎身)이라는 사자성어의 의미보다 ‘쇄신’(刷新)의 의미가 더 강할 것이다. 쇄신(刷新)은 ‘그릇된 것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함’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하며 ‘국정을 쇄신해야 한다’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 등으로 쓰인다. 쉽게 말해, ‘쇄신’을 주장하는 이들은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20년 전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당시 가톨릭교회의 수장이셨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참회 미사’를 거행했다. 하느님과 인류 앞에 과거 2000년 동안의 교회 역사 안에서 교회의 구성원들이 저지른 여러 가지 과오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했다. 당시 교황은 구체적으로 교회 분열, 중세 종교 재판, 십자군 원정, 유대인과 타 종교인들에 대한 박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원주민들에 대한 폭력,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대한 묵인 등에 대해 용서를 청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교회가 2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과거 잘못들을 인정하고 세상을 향해 용서를 청한 것이었다. 이처럼 교황의 세상을 향한 ‘참회’의 모습은 당시 획기적이고 겸허한 자세로 평가되었다.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우리 가톨릭교회가 시대에 역행하지 않고 여타의 종교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전인류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필요한 ‘쇄신’의 작업이었다.

지금 우리의 시대가 ‘쇄신’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적폐’를 청산하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과거의 방식이나 태도들은 오래 묵은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정치·사회·경제·문화·종교 등에서 ‘쇄신’의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 정치의 ‘쇄신’이 필요하다. 정치는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이는 곧 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우리의 정치인들이 행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의 ‘쇄신’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가 질서를 지켜 정의롭고 공평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가 정의롭고 공평한가? 우리 경제의 쇄신이 필요하다.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좀 더 성숙한 생산 활동과 소비를 인간답게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는 상생하고 있는가?

우리 문화의 쇄신이 필요하다. 문화의 쇄신은 이제 더 이상 단일 민족·한 핏줄이라는 배타적인 시각을 벗어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외국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올바르며, 다문화 가정을 우리 가족 공동체로 바라보고 있는가? 우리 종교의 쇄신이 필요하다. 우리 종교의 쇄신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참된 의미를 가르치고 함께 살아가려는 사회 통합의 기능, 곧 결속의 역할 수행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의 종교들이 소통과 통합이 아닌, 분열과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지 않는지? 참된 진리를 찾고 배우려는 이들에게 우리 종교들이 스스로 장애물을 쌓아 막고 있지는 않는지?

2000년 전 예수는 당시 시대의 정치·사회·경제·문화·종교 등의 모든 면에서 ‘쇄신’을 말씀하시고 실천하셨다. 정치·사회·경제·문화·종교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배제하고 정의하거나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는 기득권에 의해서 무너져 내렸고, 사회는 무질서를 조장했고, 경제는 점점 가난한 삶을 만들어 냈다. 문화는 타락했고, 급기야 종교까지도 세상의 물질주의에 휩싸여 종교의 본질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예수는 당시 ‘쇄신’을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인간을 짓밟는 정치·사회·경제·문화·종교는 그 존재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말씀이 떠오른다.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 6, 3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