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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왕흠약 북송 진종·인종때 재상…대표적 간신
2019년 11월 05일(화) 04:50
<초당대총장>
왕흠약(王欽若, 962~1025)의 자는 정국(定國)이며 현재의 강서성 신연에 해당하는 신유 출신이다. 북송 진종과 인종때 두 번 재상을 역임한 대표적 간신이다.

순화 3년(992년) 진사 갑과에 합격해 공직에 나아갔다. 교서랑, 태상승, 좌간의대부, 참지정사, 형부시랑 등을 역임하였다. 1001년 부재상인 참지정사가 되었다. 경덕 원년(1004년) 요의 성종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남침했다. 조정은 화의론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는 진종에게 금릉으로 천도할 것을 건의했다. 재상 구준이 강력히 반대했다. 그는 말하기를 “폐하를 위해 이런 헌책을 한 자가 누구냐. 그 죄 마땅히 주살에 해당한다. 황제께서 친정하면 적은 마땅히 자진 후퇴할 것이다.” 친정이 이루어졌고 양측은 ‘전연의 맹’이라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구준과 라이벌인 왕흠약은 전연의 맹약을 국가의 치욕이라고 구준을 모략했다. “전연의 맹약을 성하(城下)에서 맺었는데 춘추(春秋)에서는 성 아래에서 맹약을 맺는 것을 수치로 여겼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진종은 구준을 멀리해 왕단을 재상으로 기용했다.

왕흠약은 성격이 괴팍하고 모사를 잘 꾸몄다. 하루는 진종이 희설시(喜雪詩)를 지어 몇몇 중신에게 하사했다. 글자 하나를 잘못 쓴 것을 재상 왕단이 발견하고 황제에게 이를 알리려 하였다. 왕흠약은 “천자의 시를 어찌 예부에서 교정할 수 있다는 말이요”라며 반대했다. 정작 본인은 사석에서 진종에게 은밀히 틀린 부분을 알려주었다. 진종은 조회에서 웃으며 재상과 추밀사에게 말하기를 “지난번 과인이 쓴 시를 왕흠약이 지적해주지 않았으면 웃음거리가 될 뻔 했소.”

요와 불평등한 강화조약을 맺은 것을 명예롭지 않게 생각한 진종은 황제의 위엄을 회복할 계책을 왕흠약에게 물었다. 그는 건의하기를 “황제께서 요나라가 장악하고 있는 유주와 계주를 다시 빼앗아 오면 치욕을 씻을 수 있습니다.” 전쟁을 극력 꺼리는 진종은 답하기를 “백성들이 이제야 전쟁 없이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그들을 다시 사지에 몰아넣을 수는 없다.” 그는 재차 건의하기를 “출병이 꺼려지시면 대신 큰 업적을 세우셔야 합니다.” 큰 업적이 뭐냐는 하문에 봉선(封禪)이라고 답했다. 봉선은 태산(泰山)에 가서 제사지내는 것으로 일대 국사였다. 그는 황제에게 계책을 알려주었다. 진종은 어느날 조정 대신들을 불러 과인이 하늘로부터 천서(天書)가 내려온 꿈을 꾸었다고 말하였다. 이에 왕단, 왕흠약이 만세를 부르며 천서의 강림을 축하하였다. 봉선이 이루어졌고 공으로 다음해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과거시험을 주관했는데 친한 승려 혜진을 중간에 세워 수험생에게 350냥의 뇌물을 받고 합격시켰다. 이 일이 사후에 발각되자 어사중승 조창언이 황제에게 처벌을 요청했다. 그러나 재상의 자리를 이용해 교묘히 위기를 벗어났다. 태상승, 판삼사 재직시 탁지판관 무빈고가 그에게 말하기를 “백성들이 세금을 독촉 받았지만 납부할 수 없었던 것은 너무 가난해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황제에게 상소를 올려 밀린 전량을 면제해 달라고 하겠다.”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상소를 올렸다. 상소문을 본 진종은 깜짝 놀라 그를 불러서 묻기를 “선제께서 이러한 사실을 몰랐단 말이요?” 그는 답하기를 “선제께서 이미 알고 계셨지만 일부러 황제에게 남겨 처리토록 하신 것 같습니다.” 진종은 이를 듣고 기뻐하며 체납된 전량을 감면해 주었다. 이일을 계기로 신임이 커져 요직인 한림학사에 발탁되었다.

왕단이 재상으로 있을 때 이종악을 참지정사로 추천할 생각이었다. 왕흠약이 이를 시기해 의견을 묻는 왕단에게 좋은 생각이라 찬성한 후 진종을 찾아가 둘을 모함했다. 이종악이 왕단에게 삼천만전을 빚지고 있어 그를 참지정사로 추천하는 것은 자신의 돈을 받아낼 생각 때문이라고 헐뜯었다. 결국 황제는 왕단의 추천을 거부했다.

1019년 재상에서 파직된 후 인종 원년 다시 재상으로 기용되었지만 크게 신임을 받지는 못했다. 술수가 뛰어나 정위, 임특, 진팽년, 유승규와 함께 오귀(五鬼)로 불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