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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정신위에 지은 공간, 한국의 서원 김희곤 지음
서원, 문화재를 넘어 세계 유산…‘정신위에 지은’ 조선 인문학당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한 9개 서원 조명
선각자들의 혼 깃든 공간이자 자기자신을 찾는 위기지학 공간
각기 다른 건축구조와 공간 배치로 선현의 삶 공간에 녹여내
2019년 05월 17일(금) 00:00
“필암서원은 평지에 배치되어 외부에서는 내부의 공간 구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필암서원 배치의 가장 큰 특징은 누각과 강당이 남쪽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공간적으로 사당을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김인후 선생이 평소 주창한 예의 공간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누각은 들판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공간적으로는 사당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강당은 마당을 두고 사당으로 대청마루를 열어 존경을 표한다.”(본문 중에서)

최근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로부터 등재권고를 받았다. 오는 6월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서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실시된다.

세계유산은 국가문화재를 넘어 세계인의 유산이 된다는 의미다. 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 이념이 투영된 공간으로 특유의 건축 정형성을 갖췄다. 서원이 조선시대 향교나 성균관과 변별되는 점은 입신양명을 뛰어넘는 삶의 방식을 가르쳤다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제향자의 정신을 구현한 공간에서 선현들의 삶과 사상을 배우고 체험한다.

한국 서원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제시되는 것은 ‘정신 위에 지은 공간’의 가치가 그만큼 깊고 넓다는 의미다. 이번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신청한 9개의 서원은 전국에 분포한 600여 개의 서원 중에서도 제향자의 정신이 가장 잘 구현된 곳이다.

필암서원의 이름은 맥동마을 입구의 필암바위에서 유래했다.
한국의 서원을 조명한 책이 발간됐다. 문화 유적을 토대로 글쓰기를 하는 김희곤 작가가 펴낸 ‘정신 위에 지은 공간, 한국의 서원’은 장성 필암서원부터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을 다룬다. 저자의 사유는 한국의 서원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공간 인문학의 중심이라는 데 닿아 있다.

“한국의 서원만큼 빛과 그림자가 선명한 건축도 드물다. 그러나 그 빛은 그림자에 쌓여 있을 때 더욱 빛난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원에 제향된 아홉 명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암울한 시대에 민족의 방향을 제시한 선각자들이다. 안향, 이황, 류성룡, 정여창, 이언적, 김굉필, 김인후, 최치원, 김장생 등은 통일신라나 고려, 조선의 정치적 격변기에 우리 민족의 미래를 밝히기 위해 기꺼이 등불이 되길 자처했다.”

저자는 한국의 서원은 우리 민족의 열정으로 피워낸 꽃봉오리라고 단언한다. 소신과 가치를 지향했던 선각자들의 혼이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철학도 오롯이 품고 있다.

한국 서원의 다른 특징은 중국 백록동서원을 모델로 독자적인 양식으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그 예로 최초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꼽는다. 백운동서원은 소백산 비로봉 아래서 출발했는데, 저자는 이를 “소백산 계곡으로 안개구름이 내려앉는 백운동에서 중국의 주자학이 조선만의 독창적인 성리학으로 피어난 것”이라 설명한다.

또한 선현의 삶을 공간에 녹여낸 서원은 각기 다른 건축 구조와 공간 배치를 보인다. 경상도 서원은 산자락에 기대 있는데 반해 전라도와 충청도는 산이 끝나고 들이 시작되는 길목에 위치한다. 풍광이 아름답다는 공통점 외에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한다는 사상도 동일하다.

하서 김인후의 학문과 정신이 깃든 필암서원은 독특한 건축 미학을 지닌다. 사당이 강당보다 높아야 하는 전저후고(前低後高)의 원칙을 따를 수 없는 지형 탓에 모든 건물은 사당을 향하도록 배치했다. 대신 반대편은 판벽으로 막아 예를 표하게 했다.

필암서원은 남쪽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사당을 향해 열린 독특한 구조다. <미술문화 제공>
병산서원은 산의 살기를 막기 위해 누각이 병산을 품는 구조로 건립됐고, 옥산서원은 일부러 마당을 건물로 막아 강당의 대청에서 경관을 여는 듯한 효과를 노렸다.

다른 무엇보다 한국의 서원은 자기 자신을 찾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공간이다. 서원이 기본적인 배치와 구성 원칙을 따르지만 지형 조건과 제향자의 사상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유생들 역시 제향자 정신을 토대로 더 나은 자신으로 거듭나라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미술문화·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