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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시민과 함께한 미국평화봉사단원들 재조명해야
단원 4명 미 대사관 철수 명령 어기고 시민 돕고 참상 알리기 노력
부상자 이송·시신 수습에 외신기자 통역…美정부 시각 바꾸기 일조
美 국무부 기밀문서 5월 ‘어리석었다’→6월 ‘자랑스럽다’로 기록
2019년 05월 15일(수) 00:00
5·18민중항쟁 당시 광주에 머물며 광주의 참상을 외부로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미국 평화봉사단(Peace Corps) 단원<광주일보 2019년 5월 14일자 1·3면>들의 활동 과정을 재조명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인만으로 구성된 단원들은 당시 미국 정부의 철수명령을 따르지 않고, 시신 수습을 돕거나 외신기자 통역을 지원하며 끝까지 광주시민과 함께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활동은 당시 광주 상황을 폭동으로 봤던 미국 정부의 시각을 바꾸는 데도 일조했다는 게 5·18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14일 5·18기념재단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에 따르면 평화봉사단원 출신 팀 완버그(Tim Warnberg·1993년 작고)가 지난 1987년 작성한 논문 ‘광주항쟁: 목격자의 견해’(The Kwangju Uprising: An Inside View)는 5월 항쟁 당시 광주에 있었던 평화봉사단원 4명의 행적을 서술하고 있다.

1979년 입국한 평화봉사단원들은 1982년까지 광주, 나주, 목포 등지에서 장애인시설 봉사나 한국인 대상 영어교육, 외신기자 통역 분야에서 활동했다.

5·18 당시 광주에 있었던 단원들은 팀 완버그, 데이비드 돌린저(David Dolinger), 쥬디스 체임벌린(여·Judith Chamberlin), 폴 코트라이트(Paul Courtright) 등 4명이다.

단원들은 항쟁 초기만 해도 두려움 때문에 계엄군에게 구타당하고 목숨을 위협받는 광주시민을 제대로 돕지 못했으나, 피해자들이 갈수록 늘어나자 부상자 이송을 돕는 등 광주시민과 함께 항쟁에 참여했다.

팀 완버그와 쥬디스 체임벌린은 전남대병원과 기독병원, 보건소 등 의료시설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또 데이비드 돌린저와 폴 코트라이트는 미국 ‘타임지’의 로빈 모이어, AP통신의 테리 앤더스 기자 등과 함께 광주 곳곳을 다니며 광주 참상 취재를 지원했다.

당시 일부 광주시민은 이들에게 “미국이 광주 사람을 사살하는 것을 허가한 것이냐”고 항의하는 등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대다수의 시민들은 먹거리를 나눠주는 등 단원들을 보호해줬다고 한다.

광주시민의 깊은 정을 느낀 단원들은 5월25일 “즉시 광주를 떠나라”는 미국 대사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광주시민을 돕기로 결정했으며, 5월27일 오전 폴 코트라이트씨를 제외한 단원 3명은 피가 낭자한 도청에 들어가서 시신을 수습하는 등 끝까지 광주시민과 함께 했다. 당시 폴씨는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서울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찾아간 상태였다.

단원들에 대한 이야기는 미국 기밀문서에도 등장한다. 미국 국무부에서 1980년 5월25일 작성한 ‘한국 감시단 상황보고 제7호’(3급 비밀)에는 “광주 잔류 인원은 광주를 떠나라는 미국 대사의 강력한 경고를 어리석게도 무시하고 철수하라는 명령을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나와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이 1980년 6월10일 미국 국무부장관에게 보낸 ‘광주 소요(騷擾)에 대한 거주자의 견해’(3급 비밀)를 살펴보면 “월요일(5월 19일) 평화봉사단원들은 비폭력 개입을 통해 좋은 미국인의 이미지를 얻었음”이라며 “미국인으로서 우리는 평화봉사단원들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기록했다.

이 문서는 미 대사관이 ‘가장 균형 잡힌 5·18 기록이자 분석’이라고 평가한 자료다.

5·18연구자들은 “외신 기자뿐 아니라 평화봉사단원들도 참상을 알리고 광주를 돕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다”며 “평화봉사단원들이 모국에 남긴 자료와 증언 등을 확보하면 5·18진상규명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