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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과거사 정리로 본 5·18의 과제] <11> 프랑코 흔적 지우기
“기억하기 싫은 학살자” … 동상 등 프랑코 기념물 철거
2018년 10월 25일(목) 00:00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 인근에 자리한 오리엔테 광장.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전 총리가 사람들을 불러모아 선동하던 곳으로 스페인 우파와 좌파 모두에게 상징적인 공간이다.
광주에서는 ‘상무대 호국의 종’(일명 전두환 범종) 처리를 놓고 존재가 처음 알려진 2003년 이후 15년이 흐른 현재까지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범종은 전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이후인 1981년 광주를 방문할 당시 상무대 내 군 법당인 법무사(현 무각사)에 기증한 것이다.

이 범종의 정확한 명칭은 ‘상무대 호국의 종’이지만, 세로로 ‘대통령 전두환 각하’가 새겨져 있어 ‘전두환 범종’으로 불리고 있다.

5월단체는 학살자의 이름이 새겨진 범종이라며 파종 등을 주장하고 있으며, 지난 2006년 범종은 장성 상무대 내 무각사로 옮겨졌다.

광주시와 5월 단체는 현재 전두환 범종을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5·18과 관련이 있는 만큼 직접 관리하며 교육, 전시자료로 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계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다. 범종은 불교 성물인 만큼 정치적인 시각을 배제하고 ‘부처님의 목소리’를 뜻하는 원래의 의미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5·18구묘역(광주시 북구 망월동) 입구 바닥에는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 마을’이 써진 비석이 박혀 있다.

지난 1982년 3월10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담양을 방문했을 때 묵었던 민박집에 세웠던 비석이다. 광주·전남민주동지회 회원들이 1989년 1월13일 비석을 통째로 뽑아온 뒤 5월 희생자 영령의 한을 조금이나마 달래보자는 의미를 담아 구묘역 참배객이 밟고 지날수 있도록 바닥에 박아놨다.

오리엔테 광장에서 연설하는 독재자 프랑코


또 지난 5월17일 경기도 포천군에서는 진보성향 시민단체 회원들이 축석고개 입구에 있는 ‘호국로(護國路) 기념비’(높이 5m)를 흰천으로 덮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1987년 세워진 이 비석에 한문으로 써있는 ‘호국로’는 전 전 대통령의 친필 글씨다. 참가자들은 비석 앞에는 ‘학살자 전두환 죄악 증거비’라고 적힌 현수막을 달고, 비석을 당장 철거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과는 다르게 스페인에서는 40여년 전부터 프랑코 전 총리의 흔적 제거 작업이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전몰자의 계곡’에서 프랑코의 유해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일부 보수 정당과 유족의 반발이 있지만 스페인 국민들 대부분은 프랑크 흔적 지우기 작업에 동의하고 있다.

지난 6일 방문한 스페인 마드리드의 오리엔테 광장(Plaza de Oriente)은 주말 오후 여유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작가들은 캔버스를 펼쳐놓고 저마다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고 하얀 전통옷을 곱게 차려 입은 중남미 무희들은 곳곳에서 공연을 펼치며 흥겨움을 더하고 있었다.

오리엔테 광장은 마드리드왕궁과 길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으며 왕립극장, 박물관, 호텔 등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광장 중심에는 펠리페 4세(1621~1665 재위)의 기마상과 분수가 있고 그외 역대 스페인 왕들의 조각상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곳은 프랑코 전 총리가 생전 연설장소로 자주 사용하던 장소다. 프랑코는 왕궁과 광장에 사람들을 불러모아 선동을 하기도 했고 반대로 시위대들이 모여 독재에 항거했던 곳이다.

정치적 의미가 깊은 곳이지만 프랑코가 세상을 떠난 지 40여년이 흐른 지금,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2005년 3월17일 새벽. 마드리드시에 남아 있던 독재자 프랑코 장군의 마지막 동상이 철거됐다.


스페인 곳곳에서 오리엔터 광장과 같이 프랑코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이 많지만, 정부에서 흔적 지우기에 나서면서 거의 모든 기념비 등이 철거됐다.

쿠데타를 통해 1936년 10월 총통에 취임하며 정권을 잡은 프랑코는 모든 독재자들이 그렇듯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했다. 작업은 그가 세상을 떠난 1975년까지 40여년간 계속됐다.

이 기간 수도 마드리드에만 238개의 프랑코 기념물이 건립됐다. 1년마다 평균 6개씩 만든 것이다.

1937년 10월 왕궁과 맞닿아 있는 살라망카 마요르광장에 흉상을 세운 데 이어 1942년 교육부 산하 ‘라미로 데 마에스투연구소’ 입구에, 1948년 육군사관학교 내에 기마상 등을 세웠다.

가장 대표적인 기념물는 ‘전몰자 계곡’이다.

1940년 4월1일 내전 승전 1주년을 기념해 프랑코가 직접 감독했다. 공사는 1942년에 시작해 1959년 4월 1일에 끝났다. 전쟁포로와 정치범 등 노동자 2만여명이 동원됐다. 계곡 위에는 높이 150미터와 무게 20만t 규모의 거대한 십자가도 세웠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십자가다. 또 거리나 지역에 자신이나 지인의 이름을 담기 시작했다.

세비야시의 ‘비야프랑코 델 과달키비르’, 살라망카의 ‘아게다 델 카우디요’, 카세레스의 ‘알발라 델 카우디요’ 등이다. ‘카우디요’(Caudillo)는 총통이란 말로 프랑코를 지칭하는 용어다.

그 외에도 바야돌리드의 ‘킨타니야 데 오네시모’, 소리아의 ‘산 레오나르도’ 등 내전 때 자신의 함께 싸운 장군들의 이름을 넣는 경우도 많았다.

열정적으로 자신을 기념하는 작업을 했지만 프랑코 사후 정세는 급변했다.

1979년 4월 3일 지방선거가 치러지면서 동상과 거리 명칭, 기념물 등을 처리할 권한이 지방 정부에 부여됐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세비야 등 주요 도시의 단체장이 진보성향으로 교체됐으며, 이후 거리 명칭을 개명하거나 기념물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프랑코가 태어난 페롤시는 지난 2002년 야외에 서있던 프랑코 기마동상을 박물관 내부로 옮기기도 했다.

급기야 2007년 제정된 ‘역사기억법’에는 프랑코 정권의 기념조형물은 철거할 수 있는 조항이 담겼다. 국민들 이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인물의 동상을 바라보기 싫다는 이유였다.

지난 2016년 마드리드시는 프랑코 기념물을 기습철거했다. 시는 “독재정권과 관련 있는 기념물이기 때문에 철거해야 한다”며 “기념물이 시 소유물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우파들의 반발도 거셌다. 국민당 시의원들은 해당 기념물은 프랑코 총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며 불법 철거라고 맞섰다.

이 같은 스페인의 청산 작업에 대해 광주의 한 5·18연구자는 “스페인의 과거사 청산은 미흡한 점이 있지만 독재자의 흔적을 지울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규정해 놓은 점은 우리나라에서도 참고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kimyh@kwangju.co.kr

스페인 = 글 김용희·사진 김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