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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권 한국학 체계화 첫 단추 … 전라도 천년 돌아보다
<36> 에필로그
2017년 12월 26일(화) 00:00
연중기획 ‘신호남지’는 전라도 천년을 앞두고 호남의 문화원류를 재조명하고자 마련됐다. 호남이 간직한 훌륭한 자산을 조사·수집·보존·연구하고, 여기에 스토리를 입혀 고부가가치 문화콘텐츠로 재창조하자는 바람이었다.

한국학호남진흥원에 따르면 호남권에 있는 고문서, 서화 등 한국학 관련 자료는 52만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방대한 자료가 훼손되거나 도난 위기에 처해 있고, 체계적으로 분류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신호남지’는 전라도에 산재한 한국학 자료들을 체계화하는 작업의 첫 단추이기를 자임했다. 지난 1년간 호남의 자연·문화를 시작으로 선사·고고, 민속·지리, 역사, 사상·종교, 정원·건축, 여행·문학, 미술 등을 다뤘다.





양대언 중국 연변대 교수는 “호남은 선주민인 한족이 자리잡은 지역에 예맥족이 대거 이주, 두 종족이 갈등과 융합하며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며 “융합 과정에서 만들어낸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환경적 여러 문제들이 폭 넓으면서 섬세하고 자상한 특색을 가져 호남은 물론 주변지역, 나아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강봉룡 목포대 교수는 지리학적으로 ‘섬’에 주목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전라도는 ‘섬의 왕국’”이라며 “특히 전남은 전국 섬의 65%를 보유하고, 전국 해역의 37%, 전국 갯벌의 42%, 전국 해안선의 45%를 보유하고 있는 해양자원의 중심지”라고 강조했다.

허민 전남대 교수는 보성에서 발견된 ‘코리아노사우루스’, 해남에서 발굴된 백악기 하늘의 지배자 ‘해남이크누스’ 등 공룡, 익룡, 새(조류) 화석들로 1억년전 전라도 이야기를 맛깔나게 소개했다. 정건재 전남과학대 교수는 호남에서 발굴된 옥문화를 통해 고대 한·중·일 문화교류 흐름을 밝혀냈다. 임영진 전남대 교수는 나주 반남고분 출토 100년을 맞아 백제와 구분되는 마한 독자적 문화를 국가정책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호남지’는 호남의 자연과 호남인의 삶이 어우러진 향토사에도 관심을 가졌다.

임광철 조선대 초빙객원교수는 “조선 최고의 명삼 ‘동복삼’이 거래된 화순 동복약초시장은 실학의 뿌리였다”면서 “청나라와의 정보 네트워크가 활발했던 이 곳에서 재야과학자 나경석이 홍대용과 함께 철제 혼천의를 만들었고, 하백원은 정약전·정약용 형제와 교류하며 자명종·방적기·자동양수기를 설계했다”고 전했다.

흑산도 홍어가 영산강을 거슬러 나주 영산포까지 건너와 서민 시름을 삭힌 사연, 지금은 매립돼 사라진 광주 계림동 경양방죽에 얽힌 전설·설화와 광주시민의 추억, 민족문화 역사성·정체성을 간직한 마을굿, 널따란 들녘을 밑천으로 남도의 큰 곳간을 채워주는 맏언니 같은 영산강과 그 강에 기대 삶을 일군 남도민 등을 되짚었다.

호남의 역사는 도전정신과 정의로 기록된다. 장보고의 도전·개척정신은 21세기에도 경영모델로 통하고 있다. 음악으로 편향된 성리학의 오류를 바로잡으려 한 위대한 음악학자 다산 정약용, 김천일·고경명·임계영·최경회·김덕령 등 임진왜란 7년 전쟁을 이견낸 호남의병, 3·1운동 키즈들의 항일투쟁이었던 광주학생독립운동 등 정의가 바로 서는 사회·국가를 갈망했던 호남인들의 정신을 오롯이 살려냈다.

호남 정신과 선비문화가 깃든 담양 소쇄원과 식영정, 장흥 탐진강변 8정 등은 최고 힐링체험 공간으로 현재에도 사랑받고 있다. 전남도는 ‘남도문예 르네상스’와 ‘숲속의 전남’ 시책을 연계해 ‘정원도시 전남’을 실현하고자 장대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고봉 기대승과 퇴계 이황이 주고받은 편지, 16세기 사림정치와 함께 시작돼 면면히 이어져온 호남문화의 원류 중 하나인 가사문학 등은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진 프로그램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해남 녹우당의 서책·서화를 보며 김정희 문하에서 그림 수업을 하며 호남 전통회화를 꽃피운 소치 허련과 이를 계승한 허형·허건·허백련의 남종문인화, 전통을 이으며 시대변화에 대응한 현대미술의 거장 오지호·김환기·천경자 등도 호남이 배출한 예술인들이다.

이번 기획에는 담지 못했지만 다도에 스며든 선비의 문화 향유, 공동체 속의 전라도 전통 김장문화, 정성스러운 손길로 빚은 종가음식과 전통 남도음식, 전라도 들녘에 핀 야생화, 평야와 집촌 지대에 묶인 민초의 생활 등 전라도 속살을 들여다 볼 소재들은 무궁무진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펴내 ‘문화유산 답사’ 붐을 일으켰던 유홍준(69) 명지대 석좌교수는 “처음 남도 땅을 밟았을 때, 나에게 다가온 가장 큰 감동은 남도의 포근한 들판과 느릿한 산등성이의 곡선, 그리고 저 황토의 붉은빛이었다”고 남도의 특성을 짚어냈다.

그리고 그는 강진과 해남을 ‘남도답사 일번지’라 부르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거기에는 뜻있게 살다간 사람들의 살을 베어내는 듯한 아픔과 그 아픔 속에서 키워낸 진주같은 무형의 문화유산이 있고, 저항과 항쟁과 유배의 땅에 서린 역사의 체취가 살아있으며, 이름없는 도공 이름없는 농투성이들이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꿋꿋함과 애잔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향토의 흙내음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조국강산의 아름다움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산과 바다와 들판이 있기에 나는 주저없이 ‘일번지’라는 제목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신호남지’에서 다루지 못한 전라도만이 지닌 맛과 멋과 흥, 유·무형의 문화유산 등은 새해 ‘전라도 천년’ 기획으로 가다듬어 선보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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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