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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부 여행과 문학 ② 누정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한국가사문학관
촛불시위 현장에도 등장한 가사문학 … 향유 기회 늘려야
2017년 10월 17일(화) 00:00
면양정가
16세기 본격화된 사림정치와 함께 시작돼 면면히 이어져온 호남문화의 원류 중 하나가 바로 누정문화다. 가사문학권이라 불리는 광주-담양 쪽 무등산 자락에 자리한 누정들이 뚜렷한 자취다. 면앙정과 송강정, 소쇄원과 환벽당, 식영정 등이 바로 그 누정들이다.

이 누정과 연관된 문학들을 누정문학이라 통틀어 말할 수 있겠는데, 여기에는 누정제영과 같은 한시와 누정기 같은 한문 산문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면앙정과 송강정, 식영정 등 우리 지역의 대표 누정들과 짝하는 문학작품을 떠올릴 때 단연 사람들은 면앙정가,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의 가사작품을 꼽는다. 그런고로 이 지역을 통칭해서 누정·가사문화권이라 부르는데 시비하는 일이 많지 않은 것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가사만큼 대중적 인기를 누린 장르가 또 있었을까? 시기별로 다소간 주도적인 계층이 있긴 했지만 사대부로부터 서민과 부녀자, 승려나 천주교인, 풍류인이나 항일운동가에 이르기까지 가사는 그야말로 대중적인 문학 장르였다. 한국가사문학관에서 그동안 발굴한 가사 작품만도 1만5000여 편이다. 4000여 수의 시조에 비해서도 적지 않다.

갑오경장 이후로 전통 문학의 맥이 끊겼다고 여겨왔지만 발굴조사 결과 여성가사(규방가사) 분야에서 20세기 이후로 오늘날까지 줄기차게 가사는 창작·전승되고 향유됐음이 밝혀졌다. 많은 가사작품이 창작되고 향유되며 700여년의 흐름으로 면면히 이어져왔지만, 대표적 고전작품으로 첫손에 꼽히는 것으로는 송순의 ‘면앙정가’와 송강의 ‘사미인곡’·‘속미인곡’·‘관동별곡’ 등이다. 이런 평가는 조선 후기 문인들의 기록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대표적인 기록으로 김만중의 ‘서포만필’을 들 수 있다.

송강의 ‘관동별곡’과 ‘전후사미인가’는 우리나라의 ‘이소’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참된 문장은 오직 이 세 편뿐인데, 다시 이 세 편에 대해 논할 것 같으면, 그 중에서 ‘후미인곡’(곧 ‘속미인곡’)이 가장 뛰어나다.

이런 이유로 일동삼승이라 불리는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의 한 가운데 지점인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한국가사문학관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가사문학관이 건립될 무렵에 영남지방의 규방가사 연구자들이나 관련 문학단체들에서 아쉬운 항변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관련 전문가들이 담양 건립에 수긍한 내력에는 송순과 송강의 가사작품들이 가사문학사상 차지하는 위상 때문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듯하다.

한국가사문학관 건립으로부터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많은 일들을 해냈다. 전문가들은 가사문학학술진흥위원회를 설립해서 뒷받침함으로써 가사문학관 운영에 힘을 보탰다. 교육부 등의 지원을 받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가사작품을 발굴·정리했다. 한국가사문학대상을 마련해서 새로운 가사 창작을 통해 가사문학을 현재화 대중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12회째 가사낭송대회를 개최해서 보다 친숙한 가사문학을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2014년부터는 문학잡지 ‘오늘의 가사문학’을 계간으로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문학관과 주변의 누정들에서는 광주문화재단이 주관하는 풍류남도나들이 ‘누가풍류처사’와 같은 문화관광 프로그램이 관광객들에게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체험해보는 행사로 주말마다 인기리에 펼쳐지고 있다.

기초자치단체가 건립을 주도하고 교수·전문가들이 협업하여 운영해온 문학관으로서 부족한 예산과 인력으로 이만한 사업을 꾸준히 이어온 것은 적지 않은 성과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저간의 사정만으로 가사문학관을 정상화하고 활성화하는 노력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가사문학관은 전국의 문학관 가운데 고전문학 분야로는 아주 드물게 설립된 문학관이다. 최근에 개관한 익산의 시조문학관, 나주의 백호문학관을 빼고는 유일무이하다.

선편을 잡았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우선, 문학관학예사 도입이 시급하다. 건립초기부터 줄기차게 제기해온 문제다. 현재 가사문학관은 담양군의 6급 공무원이 관장을 맡고 회계를 총괄하는 공무원 외에는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직원 3∼4명이 인력의 전부다. 다른 문학관들도 사정이 비슷하겠지만 일반 국민의 문학교육 문학예술의 향유를 선도할 전문문화예술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태부족인 인력구조다.

마침 ‘문학진흥법’이 작년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그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문학진흥법의 골자는 문학 진흥을 위한 사업을 지원하고 이를 위해 문학관의 설립·운영 지원뿐 아니라 전문 인력의 양성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문학관을 통해 대중들과 호흡하는 문학,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학예술로서 문학을 향유하도록 안내하고 교육하는 문학관학예사를 본격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해야 하겠다.

가사문학은 오랜 역사와 함께 다양한 계층의 작가들이 함께했고, 삶의 전반에 걸친 다양한 주제를 품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는 기행가사가 역사자료와 함께 풍부하게 남아있다. 자서전처럼 인생을 돌아보는 가사, 선조의 제사에 제문처럼 활용할 제문 가사, 촛불 시위 현장에 등장한 4음보의 현실풍자 가사 등 현대적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다채로운 기획전시와 문화 프로그램으로 시끌벅적한 문화예술기관으로 사랑받는 가사문학관을 기대해본다.



* 국윤주 가사문학학술진흥위원회 위원

-가사문학학술진흥위원회 위원

-계간 ‘오늘의 가사문학’ 편집위원

-전남대 국문학과 박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