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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시간속을 걷다] <13> 1973년 여수 '가나다 다실'
‘택시 운전사’ 생각하며 80년대 향수에 젖다
2017년 08월 17일(목) 00:00
영화 ‘택시운전사’가 촬영된 여수 가나다 다실 내부. 오른쪽 창가 자리가 힌츠페터 역을 맡은 토마스 크레취만이 앉은 곳이다.
“내뿜는 담배 연기 끝에/ 희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고요한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가만히 부르나 그리운 옛날을/ 부르누나 부르누나…”

가수 겸 작곡가 김해송이 1939년 11월 조명암의 노랫말에 곡을 붙인 블루스 스타일 가요 ‘다방의 푸른 꿈’이다. ‘목포의 눈물’로 널리 알려진 아내 이난영이 취입해 당시 큰 인기를 모았다. ‘유튜브’에서 가요를 찾아 들어보면 조선에 커피를 마시는 다방(茶房)이 생겨난 지 십수 년 만에 대중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를 잡은 것으로 여겨진다.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 황제가 커피를 처음 접한 이래 120여 년이 흐른 현재, 한국은 ‘커피 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변모했다. 성인 1명당 연간 커피 소비량이 377잔에 달한다. 다방은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커피 문화를 이끌어오는 공간이다. 원두커피와 커피 프랜차이즈가 범람하는 요즘에도 다방은 과거보다 위축되긴 했지만 여전히 독특한 매력으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15일 개봉 2주 만에 누적 관객 수 900만 명을 기록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촬영된 여수 ‘가나다 다실’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영화 속 다실 찾아오는 발길 이어져=“촬영 전에 장훈 감독과 스테프들이 여러 차례 다실을 찾아왔어요. 그리고 작년 8월 말에 하루 종일 찍었죠. 전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어요. 인터넷을 통해 여기서 영화가 촬영된 것을 알고 하루 몇 팀씩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고순애(62) 가나다 다실 사장의 설명이다. 영화 속에서 다실은 1980년 5월, 서울 어느 곳에 있는 것으로 두 차례 등장한다. 창가 자리에서 독일 공영방송 ARD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와 이 기자(정진영 분)가 만나 광주로 내려갈 교통편을 논의한다. 또 영화 뒷부분에서 계절이 바뀌어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안부를 묻는 장면이다. 제작진은 1980년이 시대배경인 영화와 어울리는 다방을 찾아 많은 발품을 팔아 여수까지 찾아오게 됐다.

다실은 진남관앞 중앙동 진남상가길 8번지 3층 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 상가에는 많은 브랜드 옷가게들이 많이 입점해 있어서 주민들은 ‘여수의 명동’, 또는 ‘메이커 골목’이라고 부른다. 신발가게 옆 계단을 올라가 2층 유리문을 열고 실내에 들어서자 가지런하게 놓인 탁자와 소파가 눈에 들어왔다. 다실 한쪽 구석에는 DJ박스가 여전히 남아있다.

다실 분위기는 영화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가 촬영된 자리는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창가 세 자리중 맨 오른쪽 테이블이다. 마침 자리에는 젊은 부부가 자녀와 함께 여수 관광지도를 탁자에 펼쳐놓고 행선지를 정하고 있었다. 인천에서 순천으로 2박3일간 가족여행을 왔다고 한다. 지난 2일 영화가 개봉된 후 일부러 다실을 찾아오는 젊은 세대들이 늘며 모처럼 다실에 활기가 돌고 있다.

◇44년 동안 지역민 ‘사랑방’ 역할=현재 건물에 가나다 다실이 문을 연때는 1973년 3월 29일이다. 이전에는 일본식 3층 건물 1층에 ‘가나다 제과’가 있었다. 경기도 하남시 태생인 고 사장은 결혼 이후 남편 고향인 여수로 내려와 집안 살림을 하며 육아에 전념했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부터 2년6개월간 봉산동 어항단지 인근에 있는 다방 주방에서 일을 하게 됐다. 이어 1996년 5월에 지금의 다실을 인수해 본격적인 운영에 나섰다. 상호도 그대로 사용했다. 올해로 다방을 시작한 지 꼭 22년째다.

“IMF전에는 장사가 잘됐죠. 계(契) 손님이 많았어요. 남자들은 커피 마시고, 여자들은 복숭아 주스, 딸기 주스… 비싼 것을 드셨어요. IMF때 계 손님이 끊겨버렸어요. 계가 깨진 거죠.”

시작때나 지금이나 종업원을 두지 않고 혼자 일하는데 영업이 잘 되던 시절에는 단체손님 76명을 한꺼번에 받은 적도 있다. 그런데 다실에서 가지고 있던 커피잔이 42개 뿐여서 나머지는 종이컵에 커피를 주었다고 한다.

그때는 커피 배달도 많았다. 하루 24곳에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배달했다. 금은방, 옷가게, 신발가게 등지에서 많이 주문했다. ㄱㄴㄷ 순으로 정리되는 전화번호부상에서 상호가 첫 머리에 올라 있어 114안내를 거쳐 받은 주문도 많았다. 그런데 주문자 위치가 다실과 동떨어져서 배달을 할 수가 없었단다.

이처럼 외래 문물인 커피가 급속하게 생활 속에 ‘국민 음료’로 자리 잡은 까닭은 뭘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 2005년 펴낸 ‘커피와 다방의 사회사-고종 스타벅스에 가다’에서 “한국이 기형적인 인스턴트 커피 대국이 된 건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그에 따른 초고속 압축성장의 상징이자 흔적”이라고 분석한다.

1923년 서울에, 1928년 광주에 처음 생겨난 다방에는 시대상과 물가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여수 출신 한 50대 직장인은 “(가나다 다실은) 친구들 1차 집결지이자 ‘사랑방’이었다. 고교·대학시절 미팅 장소이기도 했다”고 추억했다. 메뉴는 커피 외에도 계절주스, 쌍화차, 냉마차 등 28종에 달한다. 다실을 시작하던 20여 년 전 1000원이었던 커피 한잔 값은 현재 2000원으로 올랐다. 주스는 초창기에 1500원이었으나 현재는 4000원이다. 복숭아와 같은 계절 과일과 바나나, 인삼 등을 주스로 만들어 제공한다.

무엇보다 고 사장이 커피나 주스를 만들 때 염두에 두는 원칙은 ‘사람이 먹게끔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한다. 우연하게 고 사장 다실에 왔다 주스를 마셔보고 단골이 된 이들이 많다. 어항단지 인근 다방 주방에서 일할 때는 감초와 계피 등 7가지 재료를 넣어 12시간을 고아낸 ‘대추즙’이 인기 품목이었다.

◇커피소비 트렌드 변화 빨라=여수시 통계연보에 따르면 여수시 전체 다방 숫자는 462개소(1998년)→391개소(2005년)→135개소(2008년)→76개소(2012년)→61개소(2014년)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가나다 다실이 위치한 중앙동의 경우도 100개소(1998년)→60개(2005년)→26개(2008년)→19개소(2012년)→16개소(2014년)로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남상가 역시 상권이 바뀌었다. 의류점과 식당들이 문을 닫고, 젊은 층이 선호하는 핫도그와 떡볶이, 주스 전문점 10여 곳이 대신 들어왔다.

이처럼 다방 숫자가 줄어든 이유는 소비자들이 인스턴트 대신 원두커피를 선호하며 프랜차이즈 커피숍으로 옮겨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젊은 세대들의 외면으로 동네 사람들과 노년층, 주부 층이 주고객을 이루고 있다.

고 사장은 건강상 이유로 한때 다실 운영을 접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의사는 되려 우울증이 올 수 있다면서 만류했다. 요즘 워낙 경기가 나빠 한 달 수입에서 가게 세와 전기료를 내고 재료비를 감안하면 ‘용돈 버는 식’에 불과하단다. 고 사장의 바람은 한가지다.

“여기 (진남)상가가 살아나서 전체가 같이 잘 먹고 살았으면 해요. 서로 잘 돼야죠. (웃음)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여수=김창화기자 ch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