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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탄생 100주년] <4> 서울 윤동주문학관
별빛 내린 언덕 위 시인의 흔적 따라 걷는다
2017년 06월 12일(월) 00:00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한 윤동주문학관은 시인의 삶과 문학이 응결된 공간이다. /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자리한 윤동주문학관은 작고 아담하다. 뒤로는 인왕산 자락과 앞으로는 저만치 경복궁이 자리한다. 흰색 톤의 문학관은 윤동주 시인의 순절한 영혼을 떠올리게 한다. 소담하면서도 단촐한 조형미는 아마도 그의 시와 성정을 고려한 듯하다.

시인의 고향은 만주 북간도인데 왜 서울 종로구에 문학관이 있을까? 그것은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 문과를 졸업한 사실과 무관치 않다. 그는 대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의 소설가 김송(1909∼1988) 집에서 하숙을 했다. 당시 문우이자 후일 평론가로 문명을 날렸던 정병욱(1922∼1982·전 서울대국문과 교수)이 절친한 후배다.

“윤동주와 정병욱은 아침이면 인왕산 중턱까지 산책을 했답니다. 두 사람은 언덕을 오르며 식민지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아파하며 그럼에도 흔들림 없이 문학의 길을 가자는 결의를 다졌지요. 우리가 익히 아는 빛나는 시들이 이 시기에 창작됐답니다.”

윤동주문학관 문화해설사 한경자 씨의 설명이다. 그녀는 ‘별헤는 밤’, ‘자화상’, ‘쉽게 쓰여진 시’ 등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고 덧붙인다. 윤동주 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시들이 이곳을 기화로 형상화된 것은 공간과 예술의 상관성을 가늠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종로구는 지난 2012년 7월 인왕산 자락에 윤동주문학관을 세웠다. 원래 이곳은 청운수도가압장이 있던 자리다.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세차게 흐르도록 견인하는 장치가 바로 가압장이다. 한경자 해설사는 “세상에 지친 나머지 적당한 타협으로 비겁해지는 우리들에게 윤동주 시는 새롭게 시작하고 다잡을 수 있도록 자극을 준다”고 강조한다.

그럴 만도 하다.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은 이곳에 들러 영혼의 생명수를 공급받는다. 주말이면 1600명의 관람객들이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보고 느끼기 위해 방문한다.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시집이 팔리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순전한 영혼의 시인을 만나기 위한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윤동주는 종로구가 배출한 고품격 브랜드이자 세계 속에 자랑할 만한 문인이기 때문이다.

문학관은 모두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1전시실은 윤동주의 시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사진자료, 친필원고 영인본이 비치돼 있다. 눈에 띄는 자료 가운데 하나가 중앙에 놓여 있는 ‘우물틀’이다. 용정 생가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문인들이 가져온 것으로, 시 ‘자화상’의 모티프로 추정된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찿아가선”으로 시작되는 ‘자화상’은 윤동주의 시를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2전시실과 3전시실은 가압장 물탱크가 있던 공간을 개조한 곳이다. 각각 ‘열린 우물’ ‘닫힌 우물’을 상징하는 이곳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장소성과 아울러 침묵, 사색을 환기한다. ‘열린 우물’은 가압장의 물탱크 윗부분을 개방한 덕분에 천장이 없다. 이곳에선 계절의 변화와 4계의 풍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합니다”라는 ‘별 헤는 밤’의 싯구가 부지불식간에 연상된다. 그 뿐 아니다. 물탱크에 저장됐던 물의 흔적은 벽면에 특유의 물그림자를 새겨, 시인의 생과 작품의 의미를 가늠할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한다.

3전시실인 ‘닫힌 우물’은 물탱크 윗부분을 개방하지 않은 탓에 온전히 하나의 공간으로 이미지화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캄캄한 감옥의 이미지와 만날 수 있다. 윤동주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를 현실 속에서 재현한 것이다. 이곳에선 방문객들을 위해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소재로 한 다큐가 상영된다. 조국의 광복을 기원하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시심을 불태웠던 해환(海煥)의 넋을 잠시나마 만날 수 있다.

문학관을 나와 뒤편 ‘시인의 언덕’을 오른다. 따사로운 오뉴월 햇볕이 문학관 위로 들이친다. 한폭의 그림 같은 수려한 풍광이다. 좌로는 북악산이 펼쳐져 있고 앞으로는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로는 인왕산과 창의문(자하문)이 수도 ‘한양’의 위엄을 드러낸다. 여기에 서울 성곽의 흔적까지 남아 있어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할 수 있다.

풍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이에서도 명징하게 통용되나 보다. 윤동주는 이 언덕에서 별을 헤며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아파했던 고뇌에 찬 시인의 표정이 풍경과 오버랩된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중략)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별 헤는 밤’중에서)



이곳에선 매년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기리는 문학제가 열린다. 작년에도 추모콘서트, 시화전 등이 열렸다. 올해도 탄생 100주년을 맞아 9월 8일부터 10일까지 윤동주의 문학사상과 민족사상 정신을 기리는 윤동주 문학제를 개최한다.

문학관과 청운문학도서관, 시인의 언덕에서 펼쳐지는 이번 문학제는 제3회 윤동주 창작음악제 및 역대 수상팀 축하 공연을 비롯, 제4회 청소년 윤동주시화공모전 등이 예정돼 있다. 또한 윤동주 문학 관련 저명한 학자를 초청 문학 강연도 진행한다. (문의 02-6203-1155)

심정구 종로문화재단 담당자는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시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했다”며 “윤동주문학관 동영상 기념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그리고 윤동주’ DVD, USB를 찾는 시미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시인의 언덕을 둘러보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하늘과 바람과 별’이 깃들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한동안 시비 곁에 서서 시인을 기다린다. 그는 오지 않고 바람만 휑하니 분다. ‘그의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뿐이다’.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