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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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음악회
2017년 04월 12일(수) 00:00
1992년 10월 5일 월요일 저녁 6시45분, 뉴욕링컨센터 에이버리 피셔홀(2800석). 평소 공연시간 보다 1시간이나 일찍 시작되는 음악회를 감상하기 위해 정장차림의 관객 25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인근 맨하튼의 사무실에서 ‘칼퇴근’하자 마자 링컨센터의 ‘깜짝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해 곧장 ‘달려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발길을 끌어 들인 건 ‘러시아워 콘서트’(Rush hour concert). 링컨센터의 상주단체인 뉴욕필하모니오케스트라(뉴욕필)가 관객창출의 일환으로 공연계의 관행(?)을 깬 파격적인 음악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반 관객들을 겨냥한 대부분의 음악회는 밤 8시에 개최됐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직장인들 사이에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악명높은 맨하튼의 교통체증을 뚫고 저녁식사까지 해결하려면 공연시간을 맞추기가 빠듯해서다. 이 때문에 일부 직장인들에겐 평일 저녁에 열리는 음악회는 ‘그림의 떡’이었다.

1991년 뉴욕필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독일 출신의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1927∼2015))는 바로 그 지점을 ‘공략’했다. 혼잡한 도로 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대신 콘서트를 관람하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자는 아이디어였다. 콘서트 티켓 역시 정규공연 보다 30∼40% 저렴한 5∼6만 원대의 착한 가격으로 책정했다.

쿠르트 마주어의 새로운 실험은 매진사례로 이어지는 대박을 냈다. ‘러시아워 콘서트’에 입문한 관객들은 음악의 매력에 빠져 뉴욕필의 단골 고객이 됐고 일부는 정기 후원자로 재정에 보탬을 주는 시너지 효과를 거뒀다. 이후 링컨센터의 ‘러시아워 콘서트’는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 신포니아의 ‘러시아워콘서트’, 버밍엄 심포니홀의 ‘러시아워 블루스’ 등 전 세계 아트센터의 벤치마킹사례가 됐다.

사무실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도 맨하튼과 마찬가지로 상습 정체구간이다. 퇴근시간대에는 차량 진행속도가 시속 10km 이하로 떨어질 만큼 혼잡하다. 테헤란로에 둥지를 튼 LG아트센터는 이런 장소성을 활용해 수년째 ‘러시아워 콘서트’(저녁 7시)를 열어 인기를 얻고 있다. 입장료 2만원만 내면 약 한시간 동안 자동차 운전석 대신 객석에서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재즈나 록밴드,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어서다. 게다가 공연장을 나설때 쯤이면 꽉 막혔던 도로도 뻥 뚫려있다.

그렇다고 너무 부러워 할 필요는 없다. 광주에서도 12일부터 6월7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로비에서 유사한 컨셉의 ‘ACC뮤직라운지’(매주 수요일·저녁 7시30분)가 무료로 진행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로비 공간에서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 되는 열린 콘서트다.

올해 첫번째 무대는 재즈기타리스트로 잘 알려진 ‘박윤우 트리오’의 감미로운 기타선율이 흐르는 재즈 공연이다. 특히 문화전당 인근의 직장인들에게는 일상의 피로도 풀어주고 교통체증 스트레스도 날려주는 ‘마법의 시간’이 될 듯 하다. 이제 매주 수요일 밤에는 문화전당에서 ‘퇴근길 음악회’를 즐기는 삶의 여유를 누리자.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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