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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덜컹 6박7일 느낌표·쉼표 함께 달린다
⑤ 시베리아 횡단열차
2015년 09월 10일(목) 00:00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시베리아대평원을 가르며 달리고 있다. /시베리아=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많은 이들에게 일생일대의 로망이자 버킷리스트다. 7일동안 열악한 열차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탓에 망설이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여행을 해 본 경험자로서는 기회가 주어지면 꼭 가보라고 권한다. 물론 ‘반 거지 생활’은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수준이다.

특히, 대화가 없는 가족이라면 가족여행으로 강추한다. 6박7일동안 조그마한 열차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데다, 결정적으로 열차가 달리는 동안에는 인터넷과 카톡이 되지 않아 가족간 대화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88㎞를 달린다. 속도는 무궁화호와 비슷한 시속 80∼90㎞다. 6박7일을 쉬지 않고 달리는 특성상 식당차를 제외하면 모두 침대차다. 기관차는 디젤이 아니라 전동차다.

8월2일 오전 10시 시베리아 횡단열차 258호. 전남도교육청 독서토론 열차학교 참가자들이 열차에 탑승했다. 열차는 총 15량이었다. 맨 앞에 기관차가 있고, 이어 수하물차 2량, 침대차 6량, 침식당차 1량, 그리고 또 침대차 6량이다.

침대차 한 량엔 약 3㎡ 크기의 방 9개가 있다. 방은 2인실과 4인실로 나눠져 있다. 침대의 길이와 폭은 키 170㎝ 성인이 똑바로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짧고 좁다. 방에는 1층에 침대 2개, 2층에 침대 2개 등 총 4개의 침대가 있다. 1층 침대는 취침 때를 제외하고는 생활공간이 된다. 1층 침대에 앉아 식사 하고, 얘기꽃을 피운다. 또 이 열차는 학교인만큼 수업도 진행됐다.

열차 안은 ‘절대 구속 속의 자유의 공간’이다. 제한되고 밀폐된 공간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을 바라보며 자신의 꿈과 고민에 대해 자유롭게 나래를 펴고, I-Brand 주제에 대해 치열한 토의·토론이 전개된다.

기차에서는 작은 음악회도 열렸다. 악기 연주에 특기가 있는 학생들이 즉흥적으로 모여 작은 음악회를 연 것이다. 답답한 물리적 제약에 굴하지 않고 자유로움과 흥을 찾는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학생들의 생존 방식이다.

식당에서는 진로로드맵 수업이 진행됐다. 진로진학 전문가인 성태모 교사(능주고) 의 진로진학 특강은 물론 개별 상담이 이뤄졌다. 또 최광철 교사(순천복성고)의 철학토론, 신원호 교사(영광염산중)의 과학토론, 윤학근 교사(고흥고)의 인문학 수업도 반별로 진행됐다.

수업이 없을 때는 창밖을 보며 ‘멍’을 때린다. 누군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고 했다. 차창 밖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녹색평원에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와 무성한 수풀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선로 옆은 분홍과 노랑 등 각양각색의 꽃 잔치다.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시베리아 대평원을 지나다보면 한편으론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고 다른 한편으론 인간의 왜소함을 느끼고 된다.

너무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데다, 갈 곳 없는 열차 안이라 사색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기도 하다.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고, 가족 생각, 친구 생각, 동료 생각이 저절로 난다.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사는가’라며 스스로에게 묻기도 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자주 덜컹거린다. 옛날 완행열차를 탈 때가 연상된다.

열차는 4∼6시간을 달린 뒤 간이역에 멈춰 선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거치는 간이역은 60개 정도. 간이역에선 짧게는 2분, 길게는 40분을 쉰다. 워낙 긴 구간을 이동하는 만큼 중간중간 간이역에 멈춰 물을 보충하고 열차를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열차가 멈추면 승객들은 내리는 게 좋다. 스트레칭으로 뻐근한 몸을 풀고, 군것질을 하기 위해서다. 간이역에서의 군것질은 여행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열차가 멈추면 열차 안은 찜통이 되는 탓이다. 열차에 별도의 발전차가 없어 달릴 때만 냉난방이 공급되고 멈추면 끊긴다.

식사는 기본적으로 양식이다. 샐러드와 함께 감자, 돼지고기 등 메인 요리가 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식사 시간에 맞춰 식당차에 앉으면 직원들이 차례로 요리를 내온다.

방에서는 컵라면과 컵밥을 조리해 먹는다. 객차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큰 물탱크가 있어서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제일 어려운 점은 씻기다. 샤워실이 없고 1㎡ 크기의 화장실 세면대에서 물만 졸졸 나온다. 꼭지 아래에 달린 코크를 눌러 위로 올려야 물이 나온다. 화장실은 소변·대변을 그대로 선로에 버리는 방식이다. 그래서 열차가 역에 멈춰 서면 변기를 사용할 수 없다.

열차학교에 참가한 신민정 양은 “생각과 사고의 폭을 넓히고, 나 자신에 대해 여유를 갖고 바라볼 수 있었다”며 “열차학교는 느낌표와 쉼표가 공존했던 조화로운 여정이었다”고 말했다.

/시베리아=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