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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안철수 대표를 위한 변명
논설고문
2014년 05월 09일(금) 00:00
두 달 전에 이미 예언한 바 있다. 합당의 최대 수혜자는 윤장현이 될 것이라고.(본보 3월7일 자 2면, ‘이홍재의 세상만사’) 그때만 해도 긴가민가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 예언은 적중했다. 이만하면 정치적 감각이 있는 건가. 스스로 기특하다. 그렇다고 해서 용한 점쟁이처럼 무슨 신통력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당시 전략공천이 언젠가 이뤄질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을 뿐이다.

이제 됐다. 재미있게 됐다. 광주시장 선거. 경선만 통과하면 본선은 묻지 마. 투표는 하나 마나. 개표도 하나 마나. 안 봐도 결과가 뻔한 선거. 그런 선거 피할 수 있게 됐다. 참 잘 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며칠 전 윤장현(전 YMCA 전국 연맹 이사장) 씨를 광주시장 후보로 확정했다. ‘광주의 박원순’을 기대한다며. 한밤에 기습적으로 이뤄진 전략공천이었다. 이는 물론 안심(安心)이, ‘철수 생각’이 작용된 것이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의 정치생명을 건 도박인 셈이다.

그의 도박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대박으로 이어질지 쪽박이 되고 말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논란은 피할 수 없다. 이해 당사자의 반발도 당연하다. 당장 강운태 광주시장과 이용섭 의원이 탈당과 함께 무소속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논란의 핵심은 전략공천이다. 이를 ‘폭거’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새 정치의 명분을 내세우면서 자기 사람을 챙기는 구태정치를 보였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선택권을 제한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다. 전략공천이란 말의 뜻부터 살펴보자. 전략공천은 통상 상대적으로 열세인 지역에 히든카드 형식으로 후보자를 내는 것이다. 신인들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서도 그렇게 한 적이 있다. 2년 전, 부산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문재인 후보의 대항마로 손수조 후보를 내보냈다. 85년생 애송이인 손 후보. 인지도나 경쟁력에서 한참 떨어졌다. 따라서 새누리당은 이기면 좋고 져도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였다. 결과적으로 성공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미지 쇄신의 효과는 톡톡히 봤다.

이번 광주시장 공천도 마찬가지다. 윤장현은 참신한 인물이다. 그러나 조직과 인지도에서는 열세를 면치 못해 왔다. 전략공천이 아니고는 해 볼 도리가 없다. 안 대표의 고민이 여기에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전국에서 자기 사람을 한 명도 건질 수 없게 될 판이었다. 그렇게 되면 ‘도로 민주당’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럴 바엔 뭐하러 합당했느냐는 따가운 시선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사실 그것은 안 대표의 고민만은 아니었다. 신당 통합으로 허탈감에 빠진 광주 시민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 허탈감은 시장 후보에 대한 복수 선택권을 박탈당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합당하기 이전으로 돌아갔다. 최소한 3명 이상의 다자 대결이 본선에서 이뤄지게 됐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전략공천이 시민들의 선택권을 제한했다는 비난도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다. 오히려 부정확한 여론조사 등을 통해 오로지 한 명의 후보자만을 결정하는 경선이야말로 전체 시민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 아닌가. 본선에서 나올 만한 후보들이 모두 맞붙게 될 경우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명분에도 어울린다.

전략공천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신진 인물 수혈, 소수자 배려, 경쟁력 있는 인물 배치 등의 장점이 있다. 1996년과 2000년 15·16대 총선에서 전략공천의 성공 사례를 볼 수 있다. 여권의 이명박·이회창·이재오·김문수·홍준표, 야권의 손학규·정세균·정동영·김한길·송영길 등이 그렇게 해서 여의도에 입성했다.

전략공천과 정략공천을 구별할 필요도 있겠다. 당이 정략(政略, 정치상의 책략)에 따라 ‘깜’도 되지 않은 인물을 내보내는 것이 정략공천이다. 이에 비해 아직은 힘이 약하지만 될성부른 인물을 천거하는 것이 전략공천이다. 심지어 ‘낙하산 인사’도 적합한 인물만 잘 고른다면 비난을 피할 수 있다. 과거 호남 사람들이 노무현을 택했던 것은 정략투표가 아닌 전략투표였음을 상기해도 되겠다.

시대를 앞서간 개혁가 조광조의 건의로 실시된 현량과(賢良科)는 조선시대의 전략공천이라 할 만하다. 공정경쟁을 해야 할 기존 과거제도가 세도가(勢道家) 자녀들의 출세 수단으로 전락했을 때 얘기다. 조광조는 숨은 인재를, 개혁적인 인물을 천거하여 조정을 충원했다. 일종의 엽관제(獵官制)다. 사람을 바꾸지 않는 한 새 정치는 불가능한 것. 전략공천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거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윤장현에 맞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두 후보로서는 불쾌할 수 있겠다. 너만 새 사람이냐? 우리는 뭐 완전히 때 묻은 사람이냐? 그렇게 외치고도 싶을 것이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강운태·이용섭 둘 다 훌륭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전략공천에 대한 이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볼 때 ‘그릇’이 좀 더 컸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가령 “오죽하면 전략공천을 했을까 이해된다. 본선에서 직접 시민들의 심판을 받아 보자”라고. “우리가 기호 2번을 못 받았다 해서 시민들의 선택까지 못 받을 정도로 약하진 않다”라고. 그렇게 성명을 냈더라면 우와! 우와! 시민들의 박수가 이어졌을 것 아닌가.

그러나 이들은 좀 더 ‘쉽게 갈 수도 있었던 길’을 놓치자 즉각 억울함을 토로했다. 물론 그 억울한 심정 충분히 이해는 한다. 하지만 ‘억울하면 출세하라’(최희준의 ‘회전의자’) 했던가. 아니다. 억울하면 출마를 할 일이다. 기왕에 출마한다고들 했으니 정정당당히 싸울 일이다.

하마터면 밋밋할 뻔했던 광주시장 선거에 생기가 돌고 있다. 각 후보 진영에는 갑자기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모두 윤장현에 대한 전략공천 여파다. 이제 둘이 나오든 셋이 나오든 ‘당겨진 활시위’처럼 선거구도가 팽팽하게 됐다.

결과야 아직 알 수 없다. 어찌 됐든 시장 선거,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아주 재미있게 됐다. 각기 장단점은 있지만 일단 모두 좋은 후보들. 시민들로서는 이 좋은 인물들 중 한 명만 선택하면 된다. 이제 그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다. 참 잘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