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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멸망으로 이끈 사랑 … 베트남의 낙랑공주
④ 꼬로아성 미쩌우와 쫑투이의 사랑
적국의 왕자와 결혼한 미쩌우 공주
남편에 국가 기밀 넘기고 비극적 최후
베트남 교과서 등장 … 대중적 사랑
2013년 07월 08일(월) 00:00
수도 하노이에서 20㎞ 떨어진 꼬로아성은 베트남 두번째 고대국가 중심부로 예전에는 9개의 원형 성곽이 나선형을 이루고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이후 전쟁 등으로 대부분 파괴돼 사당 형태만 남아 있다. /베트남 꼬로아성=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나는 그 옛날 미 쩌우 이야기를 말 하려네/ 심장이 잘못하여 머리 위에 놓이니/ 어처구니없게도 신의 석궁이 적의 손에 넘어가/ 국가의 사명이 바다 속 깊이 가라앉았네.”(베트남의 한 시인)

이 시의 배경은 공주 미 쩌우(My Chau)와 왕자 쫑 투이(Trong Thuy)의 사랑 이야기다. 전쟁과 음모에서 비롯된 비극적인 전설이다.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당한 아내, 그녀가 죽은 후에야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한 남자의 숙명이 스토리의 중심이다. ‘적과의 사랑’이 빚어낸 비극이라는 점에서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 ‘로미오와 줄리엣’과도 닮았다.

두 남녀의 사랑을 이어주면서 또 갈라놓는 소재로 사용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의 ‘자명고’와 미 쩌우와 쫑 투이 전설 속 ‘신의 석궁’모두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도구라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이 이야기는 베트남 교과서에도 등장할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둘의 비극은 ‘신의 석궁’과 이를 노린 다른 나라 왕의 욕심에서 시작된다. 왕은 아들을 이용해 신의 석궁을 얻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전부인 아들을 잃고 만다.

이야기의 배경은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20㎞ 떨어진 ‘꼬 로아성’(Co Loa Citadel)이다. 꼬 로아성은 베트남 두 번째 고대국가 수도로 새로운 역사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 깊은 곳이다.

하노이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꼬 로아성은 성이라기보다는 사당에 가까웠다. 웅장한 성곽을 중심으로 그 안을 장식하고 있는 고대국가 모습 등 역사적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적지 앞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 규모의 연못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가 한적한 사찰을 연상케 했다. 이곳을 상징하기도 하는 금 거북이 기념품과 향(香) 등을 파는 노점상이 입구에 있었다. 오늘날 꼬 로아 유적지에는 어우 락국의 왕인 ‘안 즈엉 브엉(An Duong Voung) 사당’과 그의 딸인 ‘미 쩌우 사당’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인근에서는 구리와 청동으로 만들어진 화살촉 등 당시의 무기제작 방식을 알 수 있는 수많은 역사적 사료들이 출토되고 있다고 한다. 5∼6개의 화살촉을 한꺼번에 만들 수 있도록 고안된 화살촉 틀은 중국보다 더 빠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얼굴 없는 미 쩌우 신상, 사당 한가운데를 차지한 황금 거북이, 작은 연못 가운데 선 석궁을 쏘는 장군상이었다.

미 쩌우와 쫑 투이의 비극은 이 세 가지 소재가 중심을 이룬다. 어우 락국을 세운 안 즈엉 브엉은 백성들의 풍요를 위해 수도를 산악지대에서 평야지대인 꼬 로아로 옮기게 된다. 꼬 로아는 홍강이 빚어낸 비옥한 삼각주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지인 탓에 적의 침입을 막을 난공불락의 요새가 필요했다.

안 즈엉 브엉은 모든 것을 동원해 성을 축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번번이 성벽이 무너져 내렸고 왕은 상심에 빠졌다. 그러던 찰나 황금 거북신 ‘낌 꾸이’(Kim Quy)가 왕을 찾아와 해답을 가르쳐줬다. 성을 쌓는 것을 방해하는 요괴들이 문제였다. 안 즈엉 브엉은 황금 거북신의 도움으로 튼튼한 성을 짓고, 선물까지 얻는다. 그것이 바로 낌 꾸이가 준 발톱으로 만든 석궁이었다. 이 불가사의한 석궁은 한 번에 여러발의 화살이 나가고, 화살이 떨어지는 자리는 땅이 요동치고, 핏물이 그 사이를 흘렀다고 한다. 결국 어우 락국은 이 석궁으로 수많은 침략군을 물리치게 된다.

남 비엣국의 왕 찌에우 다(Trieu Da)도 그중 한 명이었다. 수차례 침략을 시도했지만 군사의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한 가지 계략을 꾸민다. 비극의 시작인 셈이다.

찌에우 다는 안 즈엉 브엉에게 자신의 아들 쫑 투이를 사위로 받아줄 것을 요청한다. 안 즈엉 브엉의 딸 미 쩌우도 결국 쫑 투이에게 반하게 되고, 둘은 꼬 로아성에서 살게 된다. 하지만 쫑 투이는 신의 석궁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첩자였다. 미 쩌우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남편을 믿고, 신의 석궁을 건네주며 무기에 담긴 상세한 기술과 꼬 로아 성의 방어 태세, 지형을 가르쳐준다. 결국 어우 락국은 찌에우 다의 침략을 받고, 안 즈엉 브엉은 미 쩌우를 등 뒤에 태우고 동해 바다로 도망치게 된다. 미 쩌우는 사랑하는 남편이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길목마다 거위 깃털을 하나씩 뿌렸다.

마침내 바닷가에 이른 왕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자 절망에 빠져 이렇게 부르짖었다.

“황금 거북신이여, 어서 나를 구해다오.” “왕이시여, 왕의 적은 바로 당신의 등 뒤에 있다는 것을 왜 모르시나요?”

왕은 미 쩌우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단칼에 공주의 목을 베어버린다. 공주의 피는 바다로 흘러들었고, 바다의 조개들이 그 물을 마시자 피는 진주로 변했다고 한다. 깃털을 쫓아간 쫑 투이는 죽은 아내를 발견하고, 오열한다. 미 쩌우 시신을 모시고 꼬로아에 도착한 그는 그제야 아내의 사랑을 저버린 자신을 그릇됨을 뼈저리게 느끼고, 호수에 몸을 던진다.

전설 속 꼬 로아성은 한마디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거북이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이 성은 소라껍데기를 엎어 높은 형태의 나선형 모양으로 축조 됐었다. ‘꼬’는 ‘오래된 성’이란 뜻이고, ‘로아’는 ‘나선형 모양’을 뜻한다. 원래는 9개의 원형 성벽으로 이뤄졌으나 지금은 3개만이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꼬로아성=김경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