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극락왕생 빌며 헌정 … 자야바르만 7세의 孝心
[4부 캄보디아 편] (3)'따 프롬' 사원
참족 격파한 크메르 역사 ‘최고의 왕’
한센병 앓으며 힌두교 배척 불교 숭상
거대한 나무 뿌리 천년 사원과 한몸
‘툼 레이더’ 등 영화 촬영지로 각광
참족 격파한 크메르 역사 ‘최고의 왕’
한센병 앓으며 힌두교 배척 불교 숭상
거대한 나무 뿌리 천년 사원과 한몸
‘툼 레이더’ 등 영화 촬영지로 각광
![]()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 지은 따 프롬 사원은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와 지난 천년 세월을 함께 해왔다.
/캄보디아 앙코르 톰=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
‘나무의 정령들과 천년을 함께해온 따 프롬(Ta Prohm).’
앙코르 톰에서 약 1㎞ 떨어져 있는 따 프롬 사원을 만나기 위해서는 정글 같은 울창한 나무 숲을 한참 달려야 한다.
처음 만나는 따 프롬 사원은 폐허 그 자체였다. 하늘을 찌를듯한 스펑나무가 육중한 무게로 사원 지붕을 억누르고, 한편으로는 기둥이 되어 사원을 지탱하고 있었다. 거대한 거미줄 같은 뿌리는 벽을 파고들어 사원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사원 바닥에는 짙푸른 이끼가 양탄자처럼 깔려 있다. 불교적 색채가 강하게 묻어났다. 따 프롬은 안젤리나 졸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툼 레이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온갖 나무 때문에 혼란스럽지만 그래서 이곳은 오히려 더 신비롭고 매력적인 곳이다. 더구나 이 나무들의 숨통을 끊는 순간 따 프롬의 생명도 다한다고 한다. 지난 천년 유적 곳곳을 파고든 나무는 사원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지탱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돌과 나무가 만들어낸 연리지(連理枝)인 셈이다.
스펑나무는 본래 인도네시아에서 자란 나무다. 새가 사원을 지나가면서 스펑나무 씨앗이 섞인 배설물을 뿌려, 이곳에서 자라게 됐다는 것이 현지 사람들의 이야기다. 뿌리가 습기를 찾아가는 것이 특징인 이 나무가 물기를 머금고 있는 사암을 파고든다는 것이 학자들의 말이다. 스펑나무를 휘감고 있는 것은 나무를 먹고 사는 이엥나무다. 그래서 스펑나무가 죽으면 이엥나무도 함께 죽고, 사원도 천천히 허물어져 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폐허 같은 모습 때문에 다른 앙코르 유적보다 더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따 프롬은 건축물에 대한 아름다움 보다 자연에 순종하는 유적이라는 데서 독특한 신비로움을 선사하는 곳이다.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유적을 따라 웅장한 나무를 보면서 예전 화려했던 사원의 모습을 연상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이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헌정한 사원이다. 한때는 사원 중앙탑에 500㎏에 달하는 금과 35개의 다이아몬드, 4만여 개의 진주 등이 장식돼 있었다고 한다. 약탈로 모두 사라졌지만.
자야바르만 7세가 효심으로 지은 따 프롬 사원에는 ‘통곡의 방’이 있다. 생전에 효도를 하지 못한 자야바르만 7세가 가슴을 치며 한을 풀었다는 곳이다. 통곡의 방 한가운데서 가슴을 치면 ‘쿵∼’하는 소리가 무거운 울림을 선사한다. 일종의 공명현상이란다. 하지만, 그저 내뱉는 소리에는 어떠한 떨림도 없다.
자야바르만 7세는 여러 가지 신비에 싸여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한센병 환자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도 한센병 환자였다고 한다.
“왕이 행차를 하는데 한 승려가 엎드리기를 거부했다. 화가 난 왕이 그 승려를 죽였는데, 그때 승려의 침과 피가 왕에게 튀어 자야바르만 7세가 한센병에 걸렸다”라는 설화가 내려온다.
1296년 앙코르에 도착해 그곳에 1년간 머물며 캄보디아에 대한 기록을 남긴 원나라 사신 주달관은 ‘진랍풍토기’(진랍은 캄보디아를 가리키는 중국식 이름이다)에 이렇게 적었다.
“이 나라는 일반적으로 병이 많고, 많은 사람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목욕을 하며 빈번하게 머리를 감는다. 이것이 자연적으로 병을 옮기게 된다. 한센병을 앓는 자도 많고 수많은 환자가 도로 곳곳에서 누워 있다. 이들은 누운 채로 음식을 먹지만 감염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병을 크게 혐오하지 않는다. 이전 국왕도 나병을 앓았다고 한다.”
‘이전 국왕’이라면 시기적으로 자야바르만 7세를 일컫는다. 크메르 제국은 이전까지 힌두교를 숭상했다. 힌두교에서 왕은 곧 신이다. 자야바르만 7세는 신과 같은 자신이 한센병에 걸렸다는 사실로 인해 힌두교를 배척하고 대승불교를 따랐다는 속설도 있다.
그 때문인지 바야바르만 7세가 만든 앙코르 유적에는 부처상이 많이 등장한다. 자신이 신과 같은 관세음보살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자야바르만 7세가 건립한 각종 공공시설도 주목할 만하다. 수많은 병원을 건립했다고 하는데, 중부 라오스까지 뻗어나갔다. 따 프롬 비문에는 “이 치료시설은 모두 838개 마을 사람들에게 의료지원을 했다”고 적혀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캄보디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현재 중부 베트남에 해당하는 참파 왕국에 머물고 있었다. 1150년 수리야바르만이 죽자, 앙코르 왕국은 내전에 휩싸인다. 이 기회를 틈타 현재 베트남 남부에 있던 참족이 1177년 침공을 시작했다. 참족은 크메르 제국의 수도를 약탈하고, 왕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때 한 왕자가 가신들을 거느리고 참족을 물리친다. 그가 1181년 왕좌에 등극하는 자야바르만 7세다.
그가 앙코르 왕조에 올랐을 당시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동으로 베트남 중부의 참파 왕국을 정복해 바닷길을 열어놓고 중국과 조공무역까지 했다. 북쪽으로는 라오스의 브양트얀과 버마, 남쪽으로는 말레이반도 북단에 이르기까지 인도차이나 최대의 국가를 건설했다. 그의 죽음과 함께 크메르 제국도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앙코르 톰=김경인기자
앙코르 톰에서 약 1㎞ 떨어져 있는 따 프롬 사원을 만나기 위해서는 정글 같은 울창한 나무 숲을 한참 달려야 한다.
처음 만나는 따 프롬 사원은 폐허 그 자체였다. 하늘을 찌를듯한 스펑나무가 육중한 무게로 사원 지붕을 억누르고, 한편으로는 기둥이 되어 사원을 지탱하고 있었다. 거대한 거미줄 같은 뿌리는 벽을 파고들어 사원의 일부분처럼 보였다. 사원 바닥에는 짙푸른 이끼가 양탄자처럼 깔려 있다. 불교적 색채가 강하게 묻어났다. 따 프롬은 안젤리나 졸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툼 레이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이런 폐허 같은 모습 때문에 다른 앙코르 유적보다 더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따 프롬은 건축물에 대한 아름다움 보다 자연에 순종하는 유적이라는 데서 독특한 신비로움을 선사하는 곳이다.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유적을 따라 웅장한 나무를 보면서 예전 화려했던 사원의 모습을 연상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이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헌정한 사원이다. 한때는 사원 중앙탑에 500㎏에 달하는 금과 35개의 다이아몬드, 4만여 개의 진주 등이 장식돼 있었다고 한다. 약탈로 모두 사라졌지만.
자야바르만 7세가 효심으로 지은 따 프롬 사원에는 ‘통곡의 방’이 있다. 생전에 효도를 하지 못한 자야바르만 7세가 가슴을 치며 한을 풀었다는 곳이다. 통곡의 방 한가운데서 가슴을 치면 ‘쿵∼’하는 소리가 무거운 울림을 선사한다. 일종의 공명현상이란다. 하지만, 그저 내뱉는 소리에는 어떠한 떨림도 없다.
자야바르만 7세는 여러 가지 신비에 싸여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한센병 환자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도 한센병 환자였다고 한다.
“왕이 행차를 하는데 한 승려가 엎드리기를 거부했다. 화가 난 왕이 그 승려를 죽였는데, 그때 승려의 침과 피가 왕에게 튀어 자야바르만 7세가 한센병에 걸렸다”라는 설화가 내려온다.
1296년 앙코르에 도착해 그곳에 1년간 머물며 캄보디아에 대한 기록을 남긴 원나라 사신 주달관은 ‘진랍풍토기’(진랍은 캄보디아를 가리키는 중국식 이름이다)에 이렇게 적었다.
“이 나라는 일반적으로 병이 많고, 많은 사람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목욕을 하며 빈번하게 머리를 감는다. 이것이 자연적으로 병을 옮기게 된다. 한센병을 앓는 자도 많고 수많은 환자가 도로 곳곳에서 누워 있다. 이들은 누운 채로 음식을 먹지만 감염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병을 크게 혐오하지 않는다. 이전 국왕도 나병을 앓았다고 한다.”
‘이전 국왕’이라면 시기적으로 자야바르만 7세를 일컫는다. 크메르 제국은 이전까지 힌두교를 숭상했다. 힌두교에서 왕은 곧 신이다. 자야바르만 7세는 신과 같은 자신이 한센병에 걸렸다는 사실로 인해 힌두교를 배척하고 대승불교를 따랐다는 속설도 있다.
그 때문인지 바야바르만 7세가 만든 앙코르 유적에는 부처상이 많이 등장한다. 자신이 신과 같은 관세음보살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자야바르만 7세가 건립한 각종 공공시설도 주목할 만하다. 수많은 병원을 건립했다고 하는데, 중부 라오스까지 뻗어나갔다. 따 프롬 비문에는 “이 치료시설은 모두 838개 마을 사람들에게 의료지원을 했다”고 적혀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캄보디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현재 중부 베트남에 해당하는 참파 왕국에 머물고 있었다. 1150년 수리야바르만이 죽자, 앙코르 왕국은 내전에 휩싸인다. 이 기회를 틈타 현재 베트남 남부에 있던 참족이 1177년 침공을 시작했다. 참족은 크메르 제국의 수도를 약탈하고, 왕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때 한 왕자가 가신들을 거느리고 참족을 물리친다. 그가 1181년 왕좌에 등극하는 자야바르만 7세다.
그가 앙코르 왕조에 올랐을 당시 캄보디아는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동으로 베트남 중부의 참파 왕국을 정복해 바닷길을 열어놓고 중국과 조공무역까지 했다. 북쪽으로는 라오스의 브양트얀과 버마, 남쪽으로는 말레이반도 북단에 이르기까지 인도차이나 최대의 국가를 건설했다. 그의 죽음과 함께 크메르 제국도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앙코르 톰=김경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