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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바다’ 불멸의 약 구하려 손잡고 … 배반하고 … 신과 악마가 보여준 욕망
[4부 캄보디아 편](1) 힌두교 창세신화(1)
힌두교 숭배한 크메르 왕 바르만 2세
앙코르와트 유적 곳곳에 신화 부조
천국과 지옥·전투장면 등 전설 가득
2013년 04월 19일(금) 00:00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수리야바르만 2세가 즉위하면서 만들기 시작해 30년 넘어 완공한 사원이다. 다른 사원들과 달리 영혼이 출입하는 서쪽을 향해 오직 하나의 문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은 헬기에서 촬영한 밀림 속 앙코르와트. /캄보디아 씨엠립=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캄보디아 씨엠립(Siem Reap) 중심부에서 앙코르와트(Angkor wat) 입구까지는 차량으로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씨엠립 어디에서도 앙코르 유적보다 높은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해자(垓子·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이나 사원 주위에 둘러 판 못)가 사원 주위를 감싸고 있다고 해서 ‘물 위에 뜬 사원’이라고 불리는 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찾아온 이들은 대부분 사원 외벽을 지나면서 걸음을 멈췄다. 웅장하고, 정교했다. 태양이 떠오르는 곳, 동쪽을 향해 걸어 갈수록 사원은 더욱 장엄하게 다가왔다.

앙코르와트는 모두 3개 층으로 건축됐다. 광주일보 취재진을 안내한 캄보디아인 가이드는 “앙코르와트는 가장 위쪽을 1층이라고 하며, 1층은 신계, 2층은 인간계, 3층은 미물계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크룩셰트라(Kurukshetra) 전투, 라마야나의 주요 장면들, 앙코르와트를 만든 수리야바르만(Suryavarman) 2세의 전승, 천국과 지옥 등 4개의 벽화를 지나 ‘ㄷ’자로 꺾이는 1층 동쪽면 남측 회랑에서는 힌두교 창세신화인 ‘우유 바다 휘젓기’(Churning the Ocean of Milk) 부조를 만나게 된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스토리를 읽어 내려가는 벽화이기도 하다.

이 벽화는 크메르 문명과 앙코르와트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크메르 문명의 독자적인 창세신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부조는 높이 2m, 길이 50m, 상·중·하 3단으로 나눠져 있으며, 단일 부조로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작품으로 꼽힌다.

한 편의 길고 긴 신화가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표현된 이 부조는 마주 대하는 것만으로도 감탄하게 된다. 정교하게 새겨진 부조의 모티브들을 하나씩 살피며 전설을 되새기게끔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벽화에는 크메르 문화의 본류라고도 할 수 있는 서사시가 새겨져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선한 신 데바(Deva)의 왕 인드라(Indra)가 시바신의 화신인 두르바사(Durvasa)에게 선물 받은 스리(Sri·행운이 깃든 꽃다발)를 떨어뜨리고 만다. 그 꽃다발은 두르바사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인드라가 꽃다발을 떨어뜨린 사실을 안 두르바사는 저주를 퍼붓는다. “이제부터 모든 데바들은 힘을 잃을 것이다.”

결국 데바들은 힘을 잃었고, 급기야 악한 신인 아수라(Asura) 군단과의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몰살 위기에 처한다. 데바들은 힌두교 3대 신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 비슈누(Vishnu)에게 방법을 듣게 된다.

“천년 간 생명의 바다인 우유 바다를 휘저어라. 천년이 흐른 뒤 우유 바다에서 나오는 영생의 약 ‘암리타(Amrit)를 먹으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

데바들의 힘만으로는 우유 바다를 휘젓기에 역부족이었다. 아수라들에게 “영생하자”며 도움을 청했다.

아수라와 데바는 우선 신들이 사는 만다라(Mandara) 산을 뽑아 회전축으로 삼았다. 그리고 머리가 다섯 개 달린 나가(뱀) 바수키(Vasuki)로 만다라 산을 휘감았다. 비슈누는 거북이로 변해 바닷속에서 만다라 산을 떠받쳤다.

이들은 우유 바다를 휘젓고, 또 휘젓기 시작했다.

시바의 도움으로 데바들은 또다시 우유 바다를 휘젓기 시작한다. 생명의 바다에서는 흰 암소 수라비(Surabhi), 술의 여신 바루니(Varuni), 천국의 나무 파리자티(Parijati), 태양, 달 등이 태어나 크메르 문명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압사라(Apsara)도 여기에서 탄생한다.

천년의 시간이 흐르고 우유 바다에서 마침내 데바들의 의사 단반타리(Dhanvantari)가 불로장생의 영약 암리타를 가지고 나타난다. 데바들의 기쁨도 잠시, 아수라가 암리타를 빼앗아 가버린다.

비슈누는 꾀를 내었다. 절세 미모를 지닌 여인으로 변해 아수라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가장 늦게 눈을 뜨는 아수라하고 결혼하겠습니다.” 결국 꾀에 넘어간 아수라들은 암리타가 든 호리병을 빼앗긴다. 데바들은 불멸의 암리타를 나눠 마셨고, 기력을 회복해 아수라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벽화 하단에는 생명의 근원인 ‘우유 바다’에서 살고 있는 각종 생명체와 비슈누의 화신 거북이가, 중간 부분에는 머리가 5개 달린 뱀 나가와 양쪽으로 나가를 붙들고 흡사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선한 신과 악한 신, 그리고 나가의 허리께에 휘감긴 만다라 산 등이 새겨져 있다.

불거진 눈에 투구를 쓴 전사 모습의 아수라와 원추형 모자에 크메르인의 눈을 한 데바의 모습이 상반된다. 데바는 크메르인, 아수라는 크메르 제국을 침략했던 참족을 상징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상단에는 신들이 우유 바다를 휘젓어 탄생시킨 천상의 여신 압사라들이 다양한 형태로 반짝인다. 꼬리 부분에서는 상기된 표정으로 데바들을 응원하는 원숭이 하누만의 모습도 보인다.

태양이 사원을 지나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빛의 방향이 바뀜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는 벽화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사암으로 만들어 예전에는 은색으로 반짝였다는 벽면은 세월이 흐르면서 검게 변해 벽화의 윤곽을 더욱 여실하게 보여줬다.

왜 인도의 힌두교 창세신화가 캄보디아에 있을까? ‘도시사원’이라는 뜻의 앙코르와트는 힌두교를 숭배한 수리야바르만 2세가 12세기 중엽에 26만 명의 사람과 4만 마리의 코끼리를 동원해 37년에 걸쳐 완성한 사원이다. 수리야바르만 2세는 크메르 왕 중 유일하게 비슈누 신을 신봉했다. 그리고 크메르 문명의 원류인 힌두 신화들을 벽면 곳곳에 그려 넣었다.

신이 되고 싶었던 수리야바르만이 사원 입구를 죽음을 의미하는 서쪽으로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죽어서도 신으로 남고 싶었던 그의 마음의 표현이리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관리기관인 압사라(APSARA)의 참(44)씨는 “이 신화는 신과 악마도 우리 인간과 하나도 다를 것 없이 불사불멸의 욕망을 지닌 존재이며,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시기, 배반, 거짓말, 고자질 등 비도덕적 행위들마저 거리낌없이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그 때문에 캄보디아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감 있게 다가간다”며 “데바와 아수라를 본질적인 선, 악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보다는 우주를 구성하는 서로 상반되는 세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씨엠립=김경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