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여름 밤하늘을 수놓다
‘피터 비스펠베이 첼로 리사이틀’
풍부한 테크닉 감성적 표현 인상적
‘바티스타 과다니니 첼로’ 품격 더해
풍부한 테크닉 감성적 표현 인상적
‘바티스타 과다니니 첼로’ 품격 더해
![]() 지난 11일 광주 북구문화센터 공연장에서 ‘피터 비스펠베이 첼로 리사이틀’이 열렸다. |
첼리스트 피터 비스펠베이가 들려줄 곡은 협연악기 편성이 없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코다이 첼로 소나타’. 오직 첼로를 위한, 첼로에 의한 선율을 기대하며 객석은 숨죽였다.
서곡 프렐류드부터 경쾌한 춤곡 쿠랑트로 이어지는 흐름은 관객을 황홀경으로 인도했다. 바흐에 대해 이리 명확한 해석을 내놓다니,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 없이도 청중과 합일하는 미적 확신과 강단의 보잉(현악기 활을 쓰는 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지난 11일 광주 북구문화센터에서 펼쳐진 ‘피터 비스펠베이 첼로 리사이틀’은 바로크시대 절대음악의 미학과 독특한 리듬, 무반주 첼로곡의 매력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주)아이시루가 주최한 이번 공연은 첼리스트 최초로 네덜란드 여왕으로부터 ‘국가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그라모폰, 더 가디언, 뉴욕타임즈 등의 국제적 찬사를 받은 피터 비스펠베이의 내한 독주회였다. 이 밖에도 비스펠베이는 50여 장 앨범을 발매하고 엘리자베스 에버츠상을 수상하면서 음단의 주목을 받아 왔다.
비스펠베이는 공연에 앞서 “2019년 ACC에서 첼로 연주회를 진행했었는데 이후 광주 공연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준비해 왔다”며 “이번 리사이틀에는 2년 전 유명을 달리한 아들 ‘도리안 비스펠베이’를 추모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난 후, 공연 포스터와 기념품(커피)을 수놓은 ‘푸른 해바라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는 자신의 영향을 받아 예술가의 길을 걷던 죽은 아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안타까운 사연이 뇌리에 잔상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자전적 영상으로 시작된 공연은 ‘바흐 모음곡 1번 G장조, BWV 1007’의 밝고 낙관적인 악상으로 이어졌다. 클래식 첼리스트들의 바이블로 손꼽히는 이 곡은 여러 CF송으로 삽입돼 익숙하다.
바흐가 자신의 여섯 개 조곡 중에서도 이 작품을 1번으로 명명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풍부한 테크닉과 감성적 표현은 여섯 모음곡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첼로 한 대로 선율악기 고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반주까지 소화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가 묘사하는 주제부와 변주의 얽힘은 마치 ‘홀로 대화하는 느낌’을 줬는데, 방백이나 독백이라기보다 아들과 나누는 ‘음악적 대화’처럼 느껴졌다.
다음 곡 ‘바흐 모음곡 4번 E플랫장조, BWV 1010’이 울려 퍼지자 공연장 분위기는 일순 엄숙해졌다. 비스펠베이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아르페지오 음형들을 레가토(연음)와 상호작용시키며 낭비하는 음계 하나 없이 묘사했다. 중후한 첼로 음색은 공연장을 가득 채우면서 소리의 양감(量感)을 남겼다.
품에 안고 있는 첼로의 모습도 인상적. 2004년 과다니니 악기 사상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1760년산 지오바니 바티스타 과다니니 첼로’의 풍미는 오래된 와인처럼 공연의 품격을 더했다.
‘사라방드’에 이르러서는 과한 비브라토(떨림) 없이 미니멀한 선율을 들려줬다. 저음역 악기인 만큼 소리가 죽는 ‘울프톤’이나 ‘데스 스팟’을 찾아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첼로는 서양악기임이 분명하나 눈을 감고 있으면 동양의 찰현악기인 해금을 탄주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코다이의 ‘첼로 소나타 B단조, Op.8’도 레퍼토리에 있었다. 헝가리의 민속 음악을 수집하고 체계화하는데 평생을 바친 작곡가 코다이의 곡답게 토속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곡은 음단에서 “첼로의 모든 테크닉이 등장한다”고 평할 만큼 고난도 작품이지만 비스펠베이는 여유롭게 음계 위를 완상했다. 그가 국제무대는 물론 세계적인 레이블과 작업하고 시드니 심포니, 로테르담 필하모니, 플란더스 심포니 등과 함께 해온 시간이 가늠됐다.
대미를 장식한 곡은 바흐의 ‘모음곡 5번 C단조, BWV1011’. 모음곡 1번과 4번, 코다이 소나타의 변주를 거쳐 바흐 5번으로 되돌아오는 구성 자체부터 대위적으로 읽혔다. 이들은 넘버마다 분위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조성 등에 있어 하나의 조곡(組曲)으로 묶을 수 있을 만큼 짜임새가 있었다.
‘모음곡 5번’에는 인간의 휘몰아치는 격양-템페스트가 고스란히 투영돼 있었다. 에스파냐의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가 이 작품을 ‘격정적(tempestuous)’이라 평한대로 강렬한 페이소스가 전해졌다.
악곡은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 삽입되면서 한번 더 유명세를 치른 바 있다. 비스펠베이의 눈빛에는 센느 강의 아홉 번째 다리 퐁네프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 방황하던 주인공의 우수 같은 게 드리워져 있었다. 헌정의 의미를 담은 이날 공연의 피날레로 적절했다는 평가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서곡 프렐류드부터 경쾌한 춤곡 쿠랑트로 이어지는 흐름은 관객을 황홀경으로 인도했다. 바흐에 대해 이리 명확한 해석을 내놓다니,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 없이도 청중과 합일하는 미적 확신과 강단의 보잉(현악기 활을 쓰는 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주)아이시루가 주최한 이번 공연은 첼리스트 최초로 네덜란드 여왕으로부터 ‘국가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그라모폰, 더 가디언, 뉴욕타임즈 등의 국제적 찬사를 받은 피터 비스펠베이의 내한 독주회였다. 이 밖에도 비스펠베이는 50여 장 앨범을 발매하고 엘리자베스 에버츠상을 수상하면서 음단의 주목을 받아 왔다.
그의 말을 듣고 난 후, 공연 포스터와 기념품(커피)을 수놓은 ‘푸른 해바라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는 자신의 영향을 받아 예술가의 길을 걷던 죽은 아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안타까운 사연이 뇌리에 잔상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자전적 영상으로 시작된 공연은 ‘바흐 모음곡 1번 G장조, BWV 1007’의 밝고 낙관적인 악상으로 이어졌다. 클래식 첼리스트들의 바이블로 손꼽히는 이 곡은 여러 CF송으로 삽입돼 익숙하다.
바흐가 자신의 여섯 개 조곡 중에서도 이 작품을 1번으로 명명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풍부한 테크닉과 감성적 표현은 여섯 모음곡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첼로 한 대로 선율악기 고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반주까지 소화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가 묘사하는 주제부와 변주의 얽힘은 마치 ‘홀로 대화하는 느낌’을 줬는데, 방백이나 독백이라기보다 아들과 나누는 ‘음악적 대화’처럼 느껴졌다.
다음 곡 ‘바흐 모음곡 4번 E플랫장조, BWV 1010’이 울려 퍼지자 공연장 분위기는 일순 엄숙해졌다. 비스펠베이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아르페지오 음형들을 레가토(연음)와 상호작용시키며 낭비하는 음계 하나 없이 묘사했다. 중후한 첼로 음색은 공연장을 가득 채우면서 소리의 양감(量感)을 남겼다.
품에 안고 있는 첼로의 모습도 인상적. 2004년 과다니니 악기 사상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1760년산 지오바니 바티스타 과다니니 첼로’의 풍미는 오래된 와인처럼 공연의 품격을 더했다.
‘사라방드’에 이르러서는 과한 비브라토(떨림) 없이 미니멀한 선율을 들려줬다. 저음역 악기인 만큼 소리가 죽는 ‘울프톤’이나 ‘데스 스팟’을 찾아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첼로는 서양악기임이 분명하나 눈을 감고 있으면 동양의 찰현악기인 해금을 탄주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코다이의 ‘첼로 소나타 B단조, Op.8’도 레퍼토리에 있었다. 헝가리의 민속 음악을 수집하고 체계화하는데 평생을 바친 작곡가 코다이의 곡답게 토속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곡은 음단에서 “첼로의 모든 테크닉이 등장한다”고 평할 만큼 고난도 작품이지만 비스펠베이는 여유롭게 음계 위를 완상했다. 그가 국제무대는 물론 세계적인 레이블과 작업하고 시드니 심포니, 로테르담 필하모니, 플란더스 심포니 등과 함께 해온 시간이 가늠됐다.
대미를 장식한 곡은 바흐의 ‘모음곡 5번 C단조, BWV1011’. 모음곡 1번과 4번, 코다이 소나타의 변주를 거쳐 바흐 5번으로 되돌아오는 구성 자체부터 대위적으로 읽혔다. 이들은 넘버마다 분위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조성 등에 있어 하나의 조곡(組曲)으로 묶을 수 있을 만큼 짜임새가 있었다.
‘모음곡 5번’에는 인간의 휘몰아치는 격양-템페스트가 고스란히 투영돼 있었다. 에스파냐의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가 이 작품을 ‘격정적(tempestuous)’이라 평한대로 강렬한 페이소스가 전해졌다.
악곡은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 삽입되면서 한번 더 유명세를 치른 바 있다. 비스펠베이의 눈빛에는 센느 강의 아홉 번째 다리 퐁네프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 방황하던 주인공의 우수 같은 게 드리워져 있었다. 헌정의 의미를 담은 이날 공연의 피날레로 적절했다는 평가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