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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KIA 투수 박지훈 “은퇴했지만 광주는 이제 고향입니다”
북구 용봉동서 야구 레슨장 운영하며 새 인생
2012년 대졸 신인으로 입단…팔꿈치 수술 후 재활 끝 2019년 은퇴
KIA 시절 좋은 기억 많아…고향 대구지만 다음달 결혼 ‘광주 사위’로
2021년 03월 24일(수) 01:00
지난 2012년 KIA 마운드에 ‘깜짝 스타’가 탄생했었다.

신인답지 않은 침착함과 위력적인 포크볼로 50경기에 나와 3승 3패 2세이브 10홀드를 기록한 대졸 신인 박지훈.

하지만 그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2013년 35경기에 나온 박지훈은 2승 1패 1세이브 4홀드를 기록했다. 경기 수와 홀드도 부족했고 3.38이었던 평균자책점은 10.92까지 치솟았다.

이어 2014년 팔꿈치 수술 후 군 복무까지 하느라 박지훈은 자취를 감췄다. 2017년 복귀에 성공했지만 이해 18경기를 끝으로 박지훈의 기록이 멈췄다. 오랜 재활 끝에 박지훈은 결국 2019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했다.

KIA와의 인연은 끝났지만 ‘대구 사나이’ 박지훈은 여전히 광주에서 살고 있다. 북구 용봉동에 ‘야구매니아’라는 레슨장을 열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4월 결혼식을 올리고 ‘광주 사위’가 된다.

박지훈은 “일찍 대구를 떠났고, 광주에 있던 기간도 10년 이상 되다 보니 이제는 광주 사람이다. 대구에 갔다 오는 게 더 불편하다(웃음)”며 “여기가 완전히 집이 됐고, 결혼도 여기에서 할 것이다. 편하다”고 웃었다.

KIA는 박지훈에게 운명이자 감사함이다.

박지훈은 “지명을 받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전면드래프트라서 연고가 없는 KIA에 1번으로 지명됐다. 정말 기분이 좋았는데 당시 표정 때문에 오해가 있었다(웃음)”며 “지명되고 어머니가 엄청 우셨다. 나도 울음이 터져서 화장실 갔다 왔는데 사진을 찍었다. 눈물 때문에 표정이 안 좋게 나와서 오해를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겁없이 마운드에 오르던 프로 첫해도 최고의 순간이다.

박지훈은 “신인이라 ‘이게 되네 되네’하면서 하루하루 지나다 보니까 어느 순간 그 위치에 있었다. 운도 많이 따랐다. 선동열 감독님, 코칭스태프, 선배님들의 많은 도움으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던 데뷔 시즌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언급했다.

그의 머릿속에 남은 또 한 장면은 ‘마지막 경기’다.

박지훈은 “사직 경기(2017년 5월27일)도 잊지 못한다. 팔이 너무 안 좋은데 던지고는 싶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라는 느낌을 받은 게 그 경기였다. 당시 결과가 안 좋았다. 마지막이라는 그런 느낌이 왔었다”고 돌아봤다.

재기를 위해 모든 노력을 했던 만큼 아쉬움은 없지만, 후회는 있다.

박지훈은 “두 번째 시즌 시작하면서 통증이 시작됐다. 재활을 반복하면서 경기도 뛰었다”며 “첫해 했던 것도 있고, 2년 차 징크스라는 말도 나오니까 욕심을 냈다. 아플 때 쉬어가야했는데 참으면서 계속 달렸다. 왜 그때 멈추지 않았을까, 후회하는 순간은 그 한 때 밖에 없다”고 돌아봤다.

‘야구매니아’라는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는 박지훈은 ‘건강한 야구’를 꿈꾼다.

박지훈은 “어린이들이 야구를 더 재미있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프로그램도 만들고, 야구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하고 싶다. 그게 한국야구 발전을 위한 것이다”며 “동네야구 하다가 너무 하고 싶어서 무작정 학교를 찾아가서 야구를 시작했었다. 우리 때는 야구 교실, 유소년 야구단 이런 게 아예 없었다. 학교 코치님들도 계시지만 조금 다르게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도 많이 하고 부상, 멘탈적인 부분을 알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회인 야구인들도 박지훈에게 큰 힘이다.

박지훈은 “선수 때 영상을 보고 질문도 해주시는데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 가르치면서 오히려 깨닫는 부분도 있어서 그걸 직접 해보고 접목해서 가르쳐 주기도 한다”며 “더 열심히 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싶다. 제2의 인생 한 번 더 응원해주시면 좋겠다. 박지훈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재활을 했던 선수가 아니라 한때 그래도 공 잘 던졌던 투수로 기억해주시면 좋겠다”고 웃었다.

/글·사진=김여울 기자 wo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