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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빈 산악 사진전 “꿈·희망·열정…쉽지 않은 여정 보여주고 싶었죠”
[산 넘어 삶]
10월 25일까지 시립사진전시관
등반사진·등정기·장비 등도 전시
손가락 잃고 8천m급 13좌 등정
2020년 09월 24일(목) 00:00
광주시립사진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홍빈 산악사진전 ‘산 넘어 삶’ 전에서 포즈를 취한 장애인 산악인 김홍빈.
막 인터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몇 명이 수줍게 다가와 조심스레 사인을 청했다. 그는 흔쾌히 웃으며 입으로 싸인펜 뚜껑을 열고 사인을 했다. ‘꿈과 희망, 열정’이라는 글귀와 함께 그의 이름이 담겼다. 김홍빈.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열 손가락이 없는 장애인 산악인이다. 그는 “스스로 희망을 꿈꾸고,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과 꿈을 심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인할 때 쓰는 글귀라고 말했다.

광주시립미술관(관장 전승보)이 김홍빈 산악 사진전 ‘산 넘어 삶’을 오는 10월25일까지 시립사진전시관에서 열고 있다. 김홍빈은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 7대륙 최고봉과 파키스탄 낭가파르밧 등 8000m 13좌 완등 기록을 갖고 있다. 8000m급의 마지막 하나인 파키스탄 브로드피크를 올해 등정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19로 잠시 숨 고르기 중이다.

전시장에 펼쳐지는 건 감동의 휴먼 드라마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의 삶’을 오롯이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등반 관련 사진 120여점을 포함한 산악 사진과 등반기, 등산 장비 등 아카이빙 자료로 구성됐다.

이번 전시는 그가 올랐던 네팔 로체 등 거봉의 아우라를 보여주는 ‘산 넘어 산’, 불의의 사고를 겪었지만 이를 딛고 다시 산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담긴 ‘산 사람’, 대자연과 등반의 여정을 담은 ‘운명을 껴안다’, 장애인 스키 선수 등 등반 이외의 활동을 담은 ‘희망이라는 이름의 산’등으로 꾸며져 있다.

“저의 등반 기록을 사진이나 전시로 한 번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은 늘 했죠. 쉽지 않은 여정이었으니까요. 어렵고 험난했고, 때론 고통스러운 길이었지만, 저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큰 전시를 열게 돼 행복합니다.”

김홍빈이 등정 때 사용하는 등산복과 텐트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진들은 그와 등반대원, 셰르파 등이 찍은 사진이다.

구름이 잔뜩 낀 K2 정상, 거대한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에베레스트 남봉, 네팔의 칸첸중가 등 히말라야 높은 봉우리들의 눈과 빙하, 설원으로 가득한 풍경은 압도감을 준다. 무엇보다 그 거대함 속에서 묵묵히 산을 오르는 김홍빈을 비롯해 원정대원들의 모습은 감동을 전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크레바스,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눈 속을 뚫고 끝없이 오르는 인간 승리의 현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된 사진들은 전문 사진작가들의 작품처럼 고퀄리티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담지 못한,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관람객들이 가장 뭉클해 하는 공간은 아무래도 ‘사고’와 관련된 사진과 글이 전시된 장소다. 고흥 출신으로 대학시절부터 산악 유망주로 꼽혔던 그는 28세에 홀로 도전한 북미 매킨리(6194m)에서 사고를 당하고 열손가락을 절단하게 된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사진 속 그의 모습은 왠지 아련하고, 결국은 산으로 돌아와 붕대 감은 손으로 암벽 등반을 하는 모습 등은 감동을 전한다.

그는 1997년 유럽 최고봉인 엘부르즈(5642m)를 시작으로 7대륙 최고봉과 8000m급 14좌 도전이라는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딛었고 23년간 많은 선후배, 가족과도 같은 셰르파들의 도움으로 마지막 한 발만을 남겨두고 있다.

“사고를 당한 후 기어갈수만 있더라도 내 힘으로 산을 오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삶은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힘듦을 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에 오르는 건 언제나 위험을 동반하죠. 언제 나를 삼킬지 모르는 크레바스나 눈사태가 늘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방금까지 함께였던 동료를 잃을 때도 있죠. 함께 꿈을 꿨고, 산에 오른 이들의 몫까지 함께 하려 사진을 가슴에 품고 또 멈추지 않고 산에 오르는 거죠.”

전시장에 걸린 티벳의 ‘타르초’
그는 산에 오를 때 가장 중요한 게 판단력이라고 했다. “정상을 바로 앞에 두고, 내려와야만 하는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나쁜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웃음). 아무리 힘들었던 순간도 다 잊어버려요. 힘들었던 순간을 기억하기 보다는 더 어려운 곳이 어디일까 늘 생각했죠. 산에 오르며 그 다음 등반에 대한 계획을 세웁니다.”

전시장에는 베이스 캠프에 설치되는 티벳의 알록달록한 깃발 타르초가 전시돼 있으며 그가 등정할 때 입는 등산복과 텐트, 손가락을 잃은 그가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한 다양한 등산장비, 등정 과정을 담은 영상 작품도 만날 수 있다. 김 씨는 마지막 14좌 등반을 마무리하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트래킹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