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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실미도’와 웰 메이드 영화
잘 만든 상업영화 천만 관객 시대를 열다
분단·민족 소재 ‘실미도’ ‘태극기를 휘날리며’ 폭발적 인기
봉준호·박찬욱·김지운·최동훈 감독, 한국영화 다양성 확장
흥행성에 작품성까지 갖춘 ‘웰 메이드’ 영화 속속 등장
세계 3대 영화제서 잇따라 수상…해외 무대에 예술성 입증
조 대 영 광주독립영화관 프로그래머
2019년 12월 18일(수) 04:50
‘쉬리’(1999)의 성공사례를 보고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 우후죽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들 영화들의 연이은 실패는 단순히 큰 구경거리를 보여주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제작비 회수를 위해서는 폭넓은 대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 것이다. 이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분단이나 민족 혹은 국가와 관련된 소재와 주제를 탐구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영화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였고, 두 편 다 천만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실미도’(2003)는 한국현대사에서 묻힐 뻔한 실화를 발굴해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것은 물론, 박진감 넘치는 영상을 창조해내며 한국영화 최초로 천만관객영화가 되었다. 국가에 의해 소모품으로 전락했던 인물들의 비극적인 사건을 조명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여 낸 것이 주효한 결과였다. ‘공공의 적’(2001)으로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던 강우석 감독과 설경구가 다시 만났고, 국민배우 안성기를 비롯해 허준호, 정재영, 강신일 등이 탄탄한 연기력으로 뒷받침하며 ‘실미도’는 한국영화 최초의 천만 영화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영화는 3개월 뒤에 ‘태극기 휘날리며’(2004·강제규)가 천만 영화로 등극하며 본격적인 천만 관객시대를 열었고, ‘왕의 남자’(2005·이준익), ‘괴물’(2006·봉준호)등이 연이어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천만관객이 연속해서 나오게 되자 1000여 개에도 미치지 못하던 전국의 스크린 수도 멀티플렉스의 확대와 함께 2000여 개에 달하는 외적 성장세를 보였다.

이 시기 한국영화는 천만 영화가 매년 나오기도 했지만 잘 만든 상업영화를 뜻하는 웰 메이드(well-made) 영화가 속속 등장하며 한국영화에 중흥기가 도래했음을 실감케 했다.

웰 메이드 영화는 감독들의 창의적인 개성을 견지해내며 대중의 호응까지 얻어낸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를 일컫는 말로, 흥행성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 두루 만족시키자 언론에서 만들어 낸 말이었다. 그러니까 공들여 잘 만든 작품들이 비평에서도 좋은 평가를 얻고 흥행에도 성공함으로써 영화제작의 모범답안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게 웰 메이드 영화는 실패가 더 많았던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를 대체하며 한국영화산업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 선두에는 봉준호가 있었다. ‘플란다스의 개’(2000)로 데뷔한 봉준호는 두 번째 작품인 ‘살인의 추억’(2003)으로 흥행은 물론 평단의 호평을 끌어내며, 웰 메이드 영화의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봉준호는 차기작들에서도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를 잡겠다는 자신의 방법론을 관철시켰다.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는 그 결과물들이다. 그리고 봉준호는 웰 메이드 영화의 정점이라고 할만한 ‘기생충’(2019)으로 세계 최고권위의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아내며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였다.



박찬욱도 2000년대 활발한 활동을 펼친 감독이다.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1992)과 두 번째 영화 ‘3인조’(1997) 모두 흥행에 참패했지만,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상업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으며 기사회생했다. 그리고 박찬욱은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등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복수 3부작을 내놓으며 자신의 영화적 개성을 뽐냈다.

이밖에도 이 시기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웰 메이드 영화를 내놓은 감독들로는 김지운과 최동훈을 꼽을 수 있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2003)은 괴이한 집안의 분위기와 계모(염정아)와 두 딸들(임수정, 문근영)간의 대립구도가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며 청소년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달콤한 인생’(2005)은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고품격 느와르영화를 선보이며 영화팬들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최동훈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2004)과 ‘타짜’(2006)로 한국대중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러니까 이 시기에 활동한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최동훈 등은 대중성을 담보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색깔과 개성을 확보해내며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확장시켰다.

이 시기에 나온 영화 중 주목할 만한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2003)라고 할 수 있다. 장준환 감독은 이 영화에서 기발하고도 창의적인 스토리와 연출력으로 자신의 영화적인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눈 밝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수의 관객들에게는 철저하게 외면 받으며 저주받은 걸작으로 남았다.

이 시기 한국영화는 세계무대에서도 환영받았다.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2002)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었고,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2004)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이창동 감독역시 ‘오아시스’(2002)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밀양’(2007)은 전도연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김기덕 감독은 2004년 한 해에만 두 개의 감독상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사마리아’(2003)로, 베니스영화제에서는 ‘빈 집’(2004)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홍상수 감독은 만드는 작품들마다 칸영화제의 초청을 받았고, 결국 ‘하하하’(2009)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했다.

이렇듯 2000년대 초중반의 한국영화는, 천만관객 영화가 나오며 시장의 파이가 커지기 시작했고, 웰 메이드 영화가 속속 등장하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잇달아 수상하며 한국영화가 예술성에 있어서도 결코 뒤지지 않음을 입증시켰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한국영화는 상업주의 획일화 속에서 활력을 잃어갔다. 그러니까 군부정권 시기의 한국영화가 정치적인 검열로 신음했다면, 최근 10년여 간의 한국영화는 자본이 영화를 검열함으로써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자본의 회수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영화들에만 투자가 이루어지다보니 스토리는 평균화 되었고, 스타가 캐스팅되어야 투자가 되는 등 한국영화는 기성품을 양산해내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