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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정의 독일이야기 ⑩ 다시 베를린에서 광주로
광주의 성장 예산 아닌 철학으로 이뤄야
2017년 09월 28일(목) 00:00
베를린 독일 오페라 건물 앞을 걷다가 무장경찰들이 한 청년을 거꾸로 바닥에 꽂는 청동부조를 본 적이 있다. 이한열의 죽음이 떠오르는 이 조형물은 1967년 경찰의 총에 머리를 맞고 사망한 베를린자유대학교 학생 오네조르크의 죽음을 묘사한 것이다. 끔찍한 2차 대전이 끝나자 독일의 젊은이들은 자유와 평화의 시대를 염원했다. 그들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와 연대를! 억압이 아니라 자유를 외쳤다. 필자가 머물던 베를린자유대학교는 그 중심이었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꿈꾸자!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건 혁명이 아니다! 당시 서베를린을 가득 메운 구호였다. 구호에서 보듯 68혁명은 기존의 혁명과 달랐다. 베트남전 반대, 나치청산, 권위주의 반대 등을 요구했지만 더 큰 요구는 ‘일상의 혁명’이었다. 한마디로 체제나 제도를 넘어 ‘나를 바꾸자, 우리를 바꾸자!’였다. 68운동의 뜨거운 기운이 독일사회를 흔들자 비로소 과거청산도 시작이 된다. 그때까지 독일사회는 아래로부터의 철저한 나치청산은 이뤄지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학교 졸업식장에서 권위적인 학사모를 벗어던지는 일상의 실천으로부터 나치의 권위적인 잔재를 털고 나선 것이다. 그것이 6.8운동이 가져온 변화다.

우리도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도입하고 두 번의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더딘 것은 일상의 민주주의자를 길러내는 일이었다. 그런데 촛불혁명 때 흔히 386으로 불려온 민주화운동 세대들이 민주화 운동의 DNA를 다시 들고 나왔다. 그들에게 키워진 아들딸들이 그 DNA로 함께 촛불을 들었다. 절망의 끝에서 다시 한 번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독일의 6.8세대가 사회의 중추로 섰듯 우리 내각과 청와대, 지방정부도 민주주의 DNA를 지닌 이들로 재편됐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독일의 6.8세대가 독일의 경제와 에너지, 복지와 교육을 새롭게 일으켜 독일사회의 새 희망을 만들어냈듯 한국사회에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킨 주역들이 다시 한 번 새로운 시민사회, 더 진화된 민주적 사회질서와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를 많은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정권교체를 넘어 정치적인 성공을 이뤄 우리사회가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되고, 더 나은 가치를 만드는 사회로 발전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가장 문화적이기에 가장 혁명적일 수 있었던 두 도시. 베를린의 뜨거운 역사는 광주와 닮아있다. 지난 역사에서 광주는 한국사회에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는데 앞장섰다. 가장 어려운 국면에서 광주시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대성회를 열었고,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뜨거운 선언과 실천을 했다. 지금 새 정부의 주역들은 바로 그 광주정신을 이어받아 민주화운동에 투신해온 세대들이다. 이는 광주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상황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민주혁명 도시 광주는 이제 가장 민주적인 교육과 복지의 도시로, 지속가능한 에너지, 미래와 이어지는 새로운 경제, 생산적인 도시문화로 확산되어야 한다.

백팩을 메고 베를린을 걷던 나는 베를린보다 뜨거운 광주의 구석구석을 걸으며 광주를 통해 시작된 내 정치의 길을 생각한다. 무등산과 금남로, 광주역을 걸으며 광주 내부동력이 모두 응집되어 울릴 광주의 맥박소리를 상상해본다. 열린 광주, 자유로운 광주, 꿈꿀 수 있는 광주. 그것은 정치공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늘 했던 방식으로 풀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광주의 성장은 예산이 아니라 철학이 먼저다. 어떤 도시를 향해 우리는 나아가야하는가 큰 그림이 먼저다. 그것은 내가, 그리고 광주시민이 목숨으로 지켜온 광주정신의 새로운 버전, 업그레이드 버전이 되어야한다.





*〈강기정의 독일이야기〉는 정치인 강기정이 12년의 의정활동을 잠시 멈추고, 베를린자유대학교(Free University of Berlin)에 방문학자(visiting scholar)로 머물며 기록한 독일의 industry4.0, 에너지, 경제, 정치 현장에 관한 총 10회 연재글로, 오늘이 마지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