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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메콩강 돌고래와 전설
4부 캄보디아 편
2013년 06월 10일(월) 00:00
메콩(Mekong)강은 중국 티벳에서 발원해 미얀마·라오스·태국·캄보디아·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르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강이다. 캄보디아 중앙을 관통하는 메콩강은 캄보디아인에게는 생명의 젖줄이자 삶과 문화의 터전이다. 그만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도 많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차를 타고 메콩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6시간 가량 달리면 캄퐁참(Kampong Cham) 주(州)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15㎞를 더 가면 끄라체(kratie)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메콩강 주변에 있는 끄라체에서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돌고래인 이라와디 (Irrawaddy Dolphin)를 만날 수 있다.

3000년 전부터 라오스와 캄보디아 메콩강 일원에서 서식하고 있는 이라와디 돌고래는 두 가지 전설을 갖고 있다.

메콩강변 작은 마을에 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집은 가난했지만 미모는 아주 빼어났다. 이웃마을 부잣집 도련님은 그녀의 미모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오늘날 드라마의 줄거리로 많이 등장하는 것처럼 부잣집 도련님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사랑을 반대하고 다른 부잣집 딸과 결혼하기를 바란다.

소녀는 부잣집 도련님의 아이까지 갖게 되지만 결국은 버림받고 만다. 그녀는 도련님이 자신을 사랑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녀는 아이를 낳을 때가 다되어 부잣집 도련님을 찾아가지만 그는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다. 소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을 것을 결심한다. 머리에 무거운 항아리를 이고, 손에는 분향나무 세 가지를 들고, 물속으로 뛰어 든다. 다음 생애에서는 어떤 남자도 만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순간 갑자기 큰 물보라가 그녀를 삼켜버린다. 후에 그녀는 돌고래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작은 모터 보트를 타고 메콩강을 둘러보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배를 타려고 하는데 선주가 “이라와디는 착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만 모습을 보여준다”고 농담을 건넨다. 유유히 흐르는 메콩강물을 따라 한참을 둘러봤지만 이라와디 돌고래가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선주의 말이 다시 한번 머리를 스칠 무렵,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민 돌고래가 눈에 들어왔다.

3∼4마리가 무리를 지어 메콩강을 유영하다가 호흡을 위해 수면 위로 나온 것이었다. 행여나 돌고래가 달아날까봐 보트의 모터를 끄고, 기다렸다. 캄보디아의 따가운 햇빛이 드넓은 메콩강 물 위에 반사돼 이따금 떠오르는 이라와디 돌고래를 비추면서 장관을 이뤘다.

이라와디 돌고래는 ‘웃는 돌고래’로도 불린다. 둥그스름하고 선하게 생긴 머리에 작은 눈, 큰 입이 마치 웃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곳 사람들은 이라와디 돌고래의 머리가 둥근 이유가 전설 속 여인이 물 속으로 들어가면서 머리에 이고 있었던 둥근 항아리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이라와디 돌고래를 부활한 인간으로 신성하게 여긴다. 돌고래를 잡아서도 안될 뿐더러 그 고기를 먹으면 아주 긴 세월 악연으로 고통받는다는 것이다. 집에 나타난 구렁이는 잡아 먹지 않아야 한다는 한국의 미신과 같은 이치다.

선착장으로 향하면서 선주가 또 다른 돌고래 이야기를 해줬다.

옛날 끄라체에는 욕심이 많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부부는 많은 재물을 얻고 싶은 욕심에 딸을 신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부부는 욕심에 눈이 먼 나머지 뱀의 형상을 한 악마를 신으로 착각하고 말았다. 뱀은 결혼식을 치르고 첫날밤에 신부를 통째로 삼켜버린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메콩강 신’은 악마로부터 그녀를 구하기 위해 용감한 청년을 보낸다. 어부였던 그 청년은 사투 끝에 뱀의 배를 갈라 그녀를 구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부모님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선지 자신을 구해준 청년과 결혼할 줄 알았던 소녀는 물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때 메콩강 신이 소녀를 돌고래로 환생시켜 메콩강을 지키도록 해줬다는 것이다.

선주는 이야기 말미에 “저희 아버지가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만 하더라도 돌고래를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숫자가 20∼30여 마리에 불과하다”며 “10년 전부터 환경보호단체가 나서 돌고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좀처럼 그 숫자가 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수천마리의 돌고래들이 이곳은 물론 프놈펜과 폰레삽강까지 헤엄쳐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1975년 크메르루주 정권이 집권하면서 캄보디아 사람들의 신념과 믿음을 없애려고 무차별적으로 돌고래를 잡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기름을 전쟁에 사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