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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50년 호남출신 간호사 인생스토리
[목포 김종숙씨] 점점이 재생되는 기억 … 영혼은 힘을 얻는다 |2016. 08.25

파독 간호사 김종숙(만 66세)의 서재에는 장영희와 공지영과 알랑드 보통이 꽂혀 있었다. 나는 알랑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지하철에 깜박 놓고 내린 후 뭔지 모를 찝찝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종숙은 선뜻 그들을 나에게 건네며 미련 없이 웃음을 지었다. ‘후’하고, 입으로 책의 먼지를 털어내는 종숙에게서 문학소녀의 향취가 났다. 책벌레 아버지의 영향이라고 …

[보성벌교 한도순씨] 아무도 찾지 않는 정신병동 … “내가 식구 돼 줄게” |2016. 08.11

해질 무렵 석양은 왜 그리 고즈넉하게 저무는지, 땅거미는 왜 한 순간 지면을 덮고 어둠을 흩뿌리는지 어린 도순은 동그란 눈을 반짝거렸다. 삶의 뒷자락을 들추다 배시시 미소가 지어지는 시절이 있다면 그건 순수의 계절일 때다. 그녀, 유년의 기억은 발이 부르트도록 산나물을 캐러갔던 일이며, 사촌오빠가 언덕 위에 만들어준 그네를 뛰는 것에서 비롯된다. 어머…

[광주 양림동 강경선씨] 안주하기 싫어 떠난 삶 ‘일장춘몽’ 같아 |2016. 07.28

장례식이 진행되는 내내 작은 촛불이 망자 곁에서 멍하니 타오르고 있었다. 촛불의 광채는 액자 속 망자의 얼굴을 넘나들고 다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생의 길에서 그가 만나온 존재들이 촛불 앞에서 어른거렸다. 그 옆에 검은 상복을 입은 여인, 단아한 모습의 미망인이 망자와의 기억을 더듬는 듯 흐느끼고 있었다. 어느새 땅거미가 깔리고 태양빛이 흩어지는 저녁이 되…

[광주 안덕례씨] 나를 지탱한 팔할은 뚝심이었다 |2016. 07.14

“나는 그래 생각한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기 참 다행이라꼬.” 영화 ‘국제시장’이 주는 혜안은 이 대사에 점철되어 있다.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의 부모와 조부모의 이야기다. 그들은 가난이라는 고통을 발효시켜 오늘의 새벽을 만들었다. 영화 속 덕수와 영자처럼 딱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이 있다. ‘국…

[순천 이영숙] 결혼 2년만에 아들·남편 하늘나라로 … 짧은 행복은 긴 슬픔을 낳고 |2016. 06.30

해방 후 한국사회는 질서를 찾지 못한 채 어리둥절해 있었다. 곧이은 6·25 전쟁은 가난의 누더기를 잔뜩 뒤집어쓴 잿더미의 한반도만 남겼다. 생존의 윤리가 최고의 가치였고, 삶의 공포에 짓눌려 절규했다. 그 시대를 거쳐온 이들은 폭격과 기아를 견디며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목격했다. 죽음에서 삶을 인지했고, 공포의 프리즘을 통해 현실을 보았다. 1947…

[광주 계림동 장현자] 동독 형무소 … 잃어버린 5년 |2016. 06.16

베를린 장벽 너머에는 그녀의 잃어버린 시간이 있다. 89년 11월, 동서독 철의 장벽은 무너졌지만 그녀 가슴 속 희미한 벽은 여전히 생채기로 남아 있다. 돌연 동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미간을 때렸다. 그 바람의 끝에 오랜 기억의 호출이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치열했던 회오리 속에서 그녀, 장현자는 동서독 분단의 생생한 증언자였다. 꽃잎이 세상을 물들이듯 …

[강진 윤승희] 포레스트 검프처럼 달린다, 딸과 함께 |2016. 06.02

아홉 번 꼬부라진 양의 창자보다 더 구불구불한 길도, 투명한 호수가 보이는 작은 오솔길도 그녀에겐 그저 벗이었다. 지난 기억의 무게가 어깨를 덮쳐 쓰러질 것 같아도 발걸음은 미풍보다 가벼웠다. 작지만 거인여자 윤승희는 그렇게 오늘 아침도 앞을 향해 달렸다. 타자(他者)들의 인식과 시선엔 아랑곳 하지 않고 그저 달릴 수 있는 것은, 내면에 꿈틀거리는 강한 모…

[장흥 정유선씨] 냄새난다며 할퀴던 독일 할머니 바꾼 건 사랑 |2016. 05.05

밤새 어머니는 고추장을 볶았고, 고추 부각을 튀겼다. 오랜만에 저녁 밥상에 유선이 좋아하는 계란말이가 올랐다. 동생들은 풍성해진 반찬에 잔치 날 같아 웃었고, 어머니는 이별의 아픔에 울었다. 그날 유선의 여행가방에는 양철통을 땜질해서 넣은 김치와 멸치튀김, 고추부각 등 먹거리가 풍성했다. 20kg 수하물에 15kg 이상이 음식이었다. 유선은 보물처럼 꽁꽁 …

[신안 나춘자씨] 애면글면하지 않고 순리대로 흘러갔다 |2016. 04.21

인생에서 뭔가 이루려고 애면글면할수록 엉뚱한 길로 들어설 때가 있다. 하지만 흘러가는 것들에 그저 삶을 맡겨도 우려할 만한 곁길로 가지는 않는다. 그건 자신의 운명에 대한 놀라운 신뢰가 내면에 있기 때문. 그래서 돌아보면 그럭저럭 살아왔다고 스스로 위안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선생의 아내가 꿈이었던 여자. 스물 네 살의 춘자는 결혼 적령기였다. 목포에…

[광양 출신 안영임] 미국 동경했던 양호교사, 독일 사회에 녹아들다 |2016. 04.07

차라투스트라는 여행자였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도시를 만나면 재빨리 스쳐지나갔다. 소소한 감정에 힘을 빼지 않는 거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보낼 풍경은 보내야 한다. 영임은 낙천적으로 삶의 순간순간을 받아들였고, 자기가 보낸 화살을 좇아 욕망에 이글거리는 활처럼 감정을 낭비하지 않았다. 인생은 현재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영임이 살았던 시대에 미…

[3.나주 박덕순씨] 노래로 운명을 이겨낸 그녀 … 유럽에 조국을 알리다 |2016. 03.17

시선의 이동은 고즈넉했다. 스무 살의 그녀는 무대의 동그란 조명 속 성악가의 얼굴로 파고들었다. 순천으로 지방공연을 온 음악가들의 무대를 보러 갔다가 운명적 순간을 만난다. 새로운 뷰포인트의 시작이다. 불안으로 가득한 삶 속에 열정이 스멀거렸다. 그녀의 심장은 며칠 동안 작은 새처럼 파닥파닥 뛰었다. “사실 간호학교를 다닐 때 음악시간에 ‘동심초’를 합창했…

[파독 50년 호남출신 간호사 인생스토리-박애자씨] 백인 우월주의 맞선 ‘파독 간호사 1호’ |2016. 03.03

‘사람은 누구나 몇 개의 상처를 몸에 새기지. 그 상처가 조금씩 아물 때쯤이면 어느새 생의 종착역에 다다르곤 하지.’ 애자 씨를 처음 만난 건 쓰디 쓴 에스프레소조차 달콤한, 베를린의 오래된 카페에서였다. 그 향이 그녀의 불행한 날의 기억을 잊게 하는 듯했다. 두 번째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는 두툼한 사진첩과 함께였다. 세월의 퇴적층이 쌓여 있는 오래된 앨…

[여수 노미자씨] 애국지사 셋째 딸 ‘거침없는 하이킥’ |2016. 02.18

이 여자의 속살을 봐버렸다. 실루엣이 드러난 웃음이 하얗다. 소녀처럼 날 것 그대로다. 여자와의 만남은 힘들었지만, 막상 멍석을 깔아주자 거침 없이 하이킥이다. 사실 인터뷰 날짜를 잡을 때마다 바람소리가 났다. 재빠르게 돌아가는 선풍기의 프로펠러를 바라보는 것처럼 눈이 빠질 뻔했다. 일흔이 넘은 이 여자, 파독 간호사 노미자(73세). 머언 먼 젊음의 …

영화배우·CF모델·호스피스 … 만화방 큰딸 영화 같은 삶 |2016. 02.04

독일로 오는 비행기는 알래스카를 경유했다. 눈 덮인 설경을 바라보면서 그제서야 자신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숙은 비행기가 데려다 줄 그곳이 안개 자욱한 길일지도 모른다고 미리 자신에게 속삭였다. 그것이 자신을 위로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비행기 안은 누군가의 울음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원인모를 시큼한 냄새로 가득했다. 은숙은 품에 …

[광주 출신 이묵순씨] 돈보다 자유를 택한 쿨∼했던 그녀 |2016. 01.14

60년대 식 cool은 무엇일까? 독일에 간 간호사들의 전형적인 대답이 ‘돈 벌기 위해서’라는 이유에 그야말로 반기를 든 여자. 이데올로기적 자유는 아니다. 그저 집에서 탈출을 꿈꿨던 그녀는 지금 시대말로 핫하고 쿨한 여자다. 그에 비해 가족과 사회는 그녀의 자유를 탐하고자 주변을 서성거렸다. 아버지는 과년한 딸 묵순에게 남동생이라는 프레임을 설치했다.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