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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구의 中國 인물 이야기
<179> 이상은, 애정·서정시 빼어난 晩唐 대표 시인 |2019. 04.30

이상은(李商隱, 813~858)의 자는 의산으로 회주 하내 출신이다. 두목과 더불어 만당(晩唐)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10세에 부친이 병사하자 장남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시인인 삼남서도절도사 영호초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변려체를 전수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영호초의 도움으로 25세에 진사에 급제했다. 교서랑, 동천절도 서기, 검교공…

<178> 두목, 이백·두보에 비견되는 빼어난 시인 |2019. 04.23

두목(杜牧. 803852)의 자는 목지로 경조 만년 출신이다. 통전을 저술한 재상 두우의 손자다. 이상은과 함께 만당 시대의 대표적 시인이다. 덕종 정원 19년(803) 명문 두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 두우 사촌형 두종 모두 재상을 역임했다. 어려서부터 시와 글을 잘 지었다. 태학박사 오무릉의 제자로 장안에서 공부했는데 그가 지은 아방궁부(阿房宮賦)로…

<177> 배휴, 당 왕조 멸망 늦춘 재정 전문가 |2019. 04.16

배휴(裴休, 791~864)의 자는 공미로 하남성 제원 출신이다. 당 선종때의 명 재상이다. 조운(漕運) 개혁 등 당말 재정 전문가로 활약했다. 하동배씨동권방(河東裵氏東眷房)에서 태어났으며 절동관찰사를 역임한 배숙의 차남이다. 어려서부터 품행이 바르고 정직하다는 평을 받았다. 경적, 시와 부를 열심히 공부했다. 목종 장경 연간 진사에 급제했다. 문종 대화…

<176> 영호도, 황제 금련촉 하사 깊은 신임 |2019. 04.09

영호도(795~879)는 섬서성 경조 화원 사람으로 자는 자직(子直)이다. 당 선종때 재상을 지냈다. 태위 영호초의 차남으로 830년 진사에 급제했다. 이후 홍문관교서랑, 좌습유를 거쳤다. 부친 사후 좌보궐, 호부원외랑, 우사랑중을 역임하였다. 845년 저장성 호주절도사가 되었다. 846년 무종이 죽자 황숙 이침이 선종으로 즉위했다. 841년 어느날 재상…

<175> 백민중, 황제의 뜻만 받든 ‘예스맨’ |2019. 04.02

백민중(白敏中, 792~861)의 자는 용회로 화주 하규 출신이다. 시인 백거인의 종제(從弟)로 선종과 의종 때 재상을 역임했다. 목종 장경 원년(821) 진사에 급제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하동, 정활, 반녕의 절도부에서 서기를 거쳐 대리사평사가 되었다. 833년 모친을 잃었다. 무종 회창 원년(841) 진중시어사를 거쳐 호부원외랑으로 임명되었다. 8…

<174> 백거이, 실천문학 선도한 中唐 대표 시인 |2019. 03.26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자는 낙천으로 낙양 인근 신정 출신이다. 중당(中唐) 시기의 대표적 시인이다. 소년 시절 가세가 기울어 어려움을 겪었다. 훗날 이 시기를 회상하며 “가련한 어린 시절, 곤궁한 시절이었네” (可憐少壯日 適在貧賤時)라는 시구를 남겼다. 800년 진사에 급제했다. 교서랑을 거쳐 현위로 근무하며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목격하고 마…

<173> 두우, 3대 걸쳐 재상…역사서 ‘통전’ 200권 서술 |2019. 03.19

두우(杜佑, 735~812)의 자는 군경이며 현 섬서성 시안시에 해당하는 경조부 만년현 출신이다. 덕종, 순종, 헌종 3대에 걸쳐 재상을 지냈다. 역사서인 통전(通典) 200권을 서술했다. 과거를 거치지 않고 문음(文蔭)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제남 참군, 섬현 현승을 거쳐 윤주자사 위원보의 참모가 되었다. 두우의 부친에게 은혜를 입은 위원보는 그를 …

<172> 선종, 헌종 이후 가장 뛰어난 군주 |2019. 03.12

선종(宣宗, 810~859)은 당의 제16대 황제로 이름은 이침이다. 헌종의 13황자로 목종의 동생이고 문종, 무종의 숙부다. 헌종 이후 가장 뛰어난 군주로 평가된다. 헌종과 귀비 정씨 사이에서 태어나 광왕으로 봉작되었다. 모친은 진해절도사 이기의 시첩 출신이다. 황족들의 거주지 십육택(十六宅)에서 어리석은 체 하며 살았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남다른 면이…

<171> 무종, 즉위 5년간 불교사원 4만여개 없애 |2019. 03.05

무종(武宗, 814~846)의 이름은 이전이다. 목종의 다섯째 아들로 문종의 아우다. 번진과의 전쟁과 강력한 불교 억압 정책을 폈다. 문종은 839년 형 경종의 여섯째 아들 진왕 성미를 태자로 책립했다. 그러나 환관 구사량과 어홍지는 태자가 어리다는 이유로 목종의 다섯째 아들 영왕 전을 황태제로 추대했다. 영왕이 즉위하니 무종이다. 무종은 즉위 당시 2…

<170> 이종민, 환관 세력과 손 잡고 재상 두번 지내 |2019. 02.26

이종민(李宗閔, ?~846)의 자는 손지로 농서 성기 출신이다. 문종때 두차례 재상을 역임했으며 우승유와 친해 이덕유와 정치적으로 크게 대립했다. 805년 진사 시험에 급제해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808년 헌종이 실시한 책시(策試)에서 우승유, 황보식과 함께 정치의 폐단을 꼬집었다. 황보식은 환관이 병권을 좌지우지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시험관 양우릉과 …

<169> 우승유, 이덕유와 벌인 ‘우이 당쟁’ 주역 |2019. 02.19

우승유(牛僧孺, 779~847)의 자는 사암으로 현 간쑤성 금태에 해당하는 안정 순고 출신이다. 당 후기 유력 정치인으로 이덕유와 벌인 우이(牛李) 당쟁의 주역이다. 805년 진사에 급제해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우승유·이종민·황보식은 808년 실시된 책시에서 조정의 폐단을 지적했는데 시험감독관 위관지가 이들을 장원으로 선발했다. 이를 못 마땅히 여긴 재상…

<168> 이덕유, 환관 세력 전횡에 맞선 당 후기 정치인 |2019. 02.12

이덕유(李德裕, 787~850)는 조군 출신으로 자는 문요다. 재상 이길보의 아들로 당 후기 대표적 정치인이다. 어려서부터 한서, 좌전을 즐겨 공부했다. 과거를 거치지 않고 목종 때 음서로 출사했다. 한림학사와 둔전원외랑을 거쳐 고공낭중이 되었다. 821년 평생의 정적 우승유와의 우이(牛李) 당쟁이 시작되었다. 그해 실시된 과거에서 서천절도사 단문창, 학…

<167> 구사량, 당 헌종~무종 5대 활약 실세 환관 |2019. 01.29

구사량(仇士良, 781~843)은 광동성 순주 흥녕 출신으로 당 헌종, 목종, 경종, 문종, 무종 5대에 걸쳐 활약한 실세 환관이었다. 순종 때 태자 이순을 보좌했다. 이순이 헌종으로 즉위하자 내급사가 되고 평로와 봉상의 군대를 감독했다. 환관 왕수징의 지휘를 받았지만 서로 앙숙이었다. 우신책 영군장군을 거쳐 좌신책군중위에 발탁되었다. 문종은 환관이 황제…

<166> 원진, 시인·정치인, 백거이와 시가 혁신 주도 |2019. 01.22

원진(元진, 779-831)의 자는 미지로 하남성 출신이다. 당 후기의 시인 겸 정치인으로 백거이와 함께 신악부(新樂府) 운동을 주도했다. 북위 선비족 탁발부 후예로 탁발 십익건의 14대 손이다. 일찍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따라 봉상 지역의 외숙에게 의지 하였다. 15세에 진사과에 합격했다. 21세에 하중부에 임명되고 22세에 산관장사랑으로 관직 생활을 …

<165> 유종원, 당후기 정치인·문인 영정혁신 주도 |2019. 01.15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자는 자후로 산서성 하동 출신이다. 당 후기의 정치인, 문인으로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의 일인이다. 순종 때 왕숙문 등과 함께 영정혁신을 주도했으나 실패했다. 고종 때 재상을 지낸 유석의 후손으로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했다. 특히 문장이 뛰어나 당시 사람들은 그의 문장을 보고 “정밀하게 다듬어지고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어…